갈 5:13-15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늘 수군거림과 뒷담화가 있기 마련이다.
"얘가 이래서 이렇쿵 저렇쿵. 쟤가 저래서 이렇쿵 저렇쿵"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서로 상처주고. 토라지기 마련이다.
작은 불씨가 서로를 향한. 원망/시비거리가 되기도 하고.
그렇게 서로 당을 짓고. 패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 시빗거리와 싸움거리가 있는가.
그래서 교회는. 서로 쪼개지고 나뉘어져 왔다.
초대교회. 하나였던 교회는. 동로마 교회와. 서로마 교회로 구분되게 되었고.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개신교회가 분리되고.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개신교 안에서도. 수많은 분파/교단이 나뉘게 되었고.
한국 교회 안에서도. 374개의 교단이 존재한다고 한다(2018년 통계).
그러니 이런 상황 속에서.
서로를 구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처음에는. 다 필요가 있어서.. 이유가 있어서 나눠졌겠지만.
되돌아 보면.. 생각해 보면.. 참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사도 바울이.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고 하였지만.
서로 으르렁거리고. 이빨을 드러내는 모습이 말이다.
오늘 우리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서로 사랑하고. 하나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라고 했지만.
우리 안에. 작은 불씨와 원망의 대상들이 있다.
때로는 그것이. 세대의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지방회와 지방회의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중앙회와 지방회의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때. 우리 공동체가 정말 시끄럽고 어려웠을 때에 비한다면.
조금 나아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 안에. 갈등과 긴장이 있다.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언제쯤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 내 것을 내어줄 수 있을까?
언제쯤 우리는.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조화롭고. 하나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언제쯤 우리는. 서로의 약함과 부족함을 끌어안고.
서로를 위해 중보하며. 서로를 보듬어 안아 줄 수 있을까?
아직은 그 길이. 멀고 요원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감사함과 인내함으로 이 길을 걸어가야겠다.
사랑이 부족한 나에게. 주께서 사랑을 더하시며.
인내가 부족한 나에게. 주께서 인내를 더하시며.
오래참기를 더디하는 나에게. 주께서 오래참음을 더하시며.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부족한 나에게.
주께서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더하여 주시기를 소망하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오늘 아침. 사도 바울이 건내는 말이.
내 마음의 기도가 되고. 내 마음의 소망이 되는 것 같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하면. 피차 멸망하고 말 터이니.
조심하십시오"
그런 측면에서.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이 말씀을 따라 살아가길 소원한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내 마음의 욕망과. 내 마음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도구/구실로 삼지 않으며.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섬기는.
그런 자유와 그런 도구로 삼길 원한다.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으르렁거리며. 서로 삼키려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는. 그런 공동체 되길 원한다.
우리 안에. 다툼과 깨어짐과 나눠짐과 분열의 마음이 사라지고.
서로를 헤아리고. 서로를 위하는 공동체 되길 원하며.
우리 안에. 참된 자유와 회복이 있는.
그런 공동체 되고. 그런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을 드리길 원한다.
"삶의 작은 일에도. 그 맘을 알기 원하네.
그 길. 그 좁은 길로 가기 원해.
나의 작음을 알고. 그분의 크심을 알며.
소망. 그 깊은 길로 가기 원하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내 가는 길만 비추기 보다는.
누군가의 길을 비춰준다면.
내가 노래하듯이. 또 내가 얘기하듯이.
살길. 나 그렇게 죽기 원하네.
삶의 한 절이라도. 그분을 닮기 원하네.
사랑. 그 높은 길로 가기 원하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자비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소원(삶의 작은 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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