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9:16-27

이스라엘이 기브아 주민과 화친을 맺은 후.
사흘이 지났다.
그리고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은. "이 사람들이.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이곳 사람들. 히위 족속이라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난리가 났다.
백성이 찾아와 항변을 한다.
그들 중에는. 전에 문제제기를 했던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다.
여호수아 9장 7절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 거주하는 듯 하니.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조약을 맺을 수 있으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을 보아.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이미 문제 제기를 하고. 의심쩍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근데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을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을 받아주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한발 물러서고. 뒤로 빼는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근데 오늘 본문에서.
"그들이 가나안 일곱 족속 가운데 한 무리"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들 입장에선 이 일이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졌을까.

아마도 처음부터 문제 제기를 했던 사람들은.
"왜 내 얘기를 듣지 않았냐"고 항변했을 것 같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몰래 입장을 바꾸고. 은근슬쩍 그들의 얘기에 편승했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회중이 다 족장들을 원망하니"라고 되어 있는데.
이스라엘은 이 일로 인하여. 심각한 내홍/어려움을 겪었을 것 같다.


여호수아의 리더십 또한 위기다.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잘 이끌어 왔는데.
여기서 그의 잘못된 판단과 분별로 인해.
이스라엘 공동체가. 모두 쑥대밭이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함과 두려움도 몰려왔을 것 같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 했던 것처럼.
오늘 나의 잘못된 판단과 분별력이. 이스라엘을 위험에 빠뜨린 것 같은.
자책감과 두려운 마음이. 그의 마음에 엄슴해 왔던 것 같고.
이 일을 함께 책임지고 결정했던.
이스라엘 족장들도. 같은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다.


근데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이 지혜로운 말을 한다.
오늘 본문 19절부터 21절까지가. 바로 그 내용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 19절을 보면.
"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고 얘기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을 하고. 맹세>를 했는데.
여기서 만약 우리가 뒤로 무르고. 약속을 깨게 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그의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삼가고. 조심해야겠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용기 있는 태도다.
"기브아 주민이 잘못했으니. 기브아 주민에게 모든 것을 덤탱이 씌우는 게 아니라.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기가 용서를 구하고.
이 일에 대한 책임과 댓가를 치르겠다"고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용감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인가.

그렇기에 그들은. 화나 있는 민심을 달래고.
그들에게 적절한 대안. 수용 가능한 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를 패는 자가 되며. 물 긷는 자가 되게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브아 주민/사람들이.
우리 가운데 그냥 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를 위해. 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한 자리/역할을 주도록 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기브온 주민을 불러다가.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속였냐(22절)"고. 항변하고 따지는 모습이 나오는데.
여호수아의 얘기는 여기서 끝이 나지 않는다.
"너희가 우리를 속여.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니.
이 일에 대한 책임/댓가로. 너희가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는 자가 되고. 물 긷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고 얘기한다.

한순간/일순간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대대손손 그렇게 해야하겠다고 얘기한다.

이 얘기에 대해. 기브아 주민들이.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얘기하는데.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안에 있던 어려움/심각한 갈등이.
정리되고 해결 국면으로 들어가게 된다.


얼마나 다행인가.
자칫. 여호수아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이렇게 갈등이 종료되고.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 끝에는. 자기의 행동과 결정에 대해서.
"나 몰라라" 하고. 꽁무니 빼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책임지고. 결자해지" 하는 책임감 있는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닭 잡아 먹고. 오리발 내미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잘못을 이실직고 하고. 솔직히 고백하는.
기브온 주민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 단계로. 다음 스테이지로 겨우 넘어가게 되는데.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모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오늘 이 땅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어찌. 한번도 넘어지지 않고. 한번도 실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때마다. 잘못된 실수/판단을 할 때도 있고.
우리는 때마다. 잘못된 생각과 계획을 할 때도 더러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넘어지고 쓰러지기 마련이데.
그때 중요한 것은. <인정하고. 책임지고. 용서를 구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다른 사람에게 덤탱이 씌우고.
꼬리 자르기 하고.
이 일에 대해서. 나 몰라라 하고. 뒤로 물러서는 것은.
오늘 우리 공동체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아무런 해결도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흠이 없는 리더. 완벽한 리더. 조금의 모자람도 없고.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리더"를 원치 않으시고.
"자기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자기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할 줄 알며.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또 형제자매들 앞에서 겸손한"
그런 사람을 부르시고. 그런 사람을 택하시는 게 아닐까 싶다.

세상에 완벽한 리더/사람은 없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몸부림치고. 또 갈망하는 사람.
주님은 그런 사람을 찾으시고. 또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또 간구하는 것은.
오늘 나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겸손히 구하며. 회개하고 돌이킬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오늘 나의 생각과 주장을. 끝까지 고수하고.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 자매의 생각과 그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이며.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끝임없이 성숙해가고. 연단해 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데.
이 찬양의 고백이 계속 생각나는 것 같다.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내 안에 있는 십자가. 내 안에 있는 연약함을. 정직히 마주보고 대면할 수 있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끊잆없이 자라가며. 끊임없이 성숙해 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간절히 기도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는. 나와 우리 공동체 되길 바란다.

(feat. 십자가를 질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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