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9:1-15
하나님의 힘을 입은. 이스라엘이 진격하자.
가나안 백성들이. 하나둘 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산 왕 옥과. 헤스본 왕 시혼에게 행한 일이.
그냥 헛된 소문이 아니었다.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이 무너졌다는 소식에.
가나안 백성들은. 불안해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하나로 연합/단결하기 시작했다.
오늘 본문 1절과 2절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 일 후에. 요단 서쪽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 연안에 있는 사람들.
곧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이.
이 일을 듣고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려 하더니…"
그들은 자기 목숨을 건지기 위해. 여호수아와 맞서 싸우기로 결단하였고.
어떻게든 자기 영토를 지키고. 자기 영역을 고수하려 하였다.
불안함이 두려움을 낳고.
그 두려움이. 외부를 향한. 강한 연대와 결속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근데 오늘 본문을 보면. 재밌는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기브온 주민들이. 이스라엘과 화친하려 나아온 것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그들이)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긴 가죽 부대를 신고.
낡은 옷과. 곰팡이가 난 떡을 들고. 이스라엘로 나아간다."
그리고 하는 말이.
"우리는 저 먼나라에서 왔는데.
이스라엘과 화친하고. 그들과 하나되고 싶다"고 말한다.
아마도. 신명기 20장에 기록된 말씀을 알았나 보다.
모세가 말하기를. 어떤 성읍과 전쟁을 할 경우.
"그들에게 먼저 화친을 제안할 것을 말하라"고 되어 있는데.
이렇게 하면. 자기들과 싸우지 않고. 자기들을 받아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냥 허술하게 준비한 것도 아니다.
꼼꼼하게. 세밀하게 준비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가나안 일곱 족속과 화친하지 말고.
어떤 언약도 맺지 말라고 하신 것까지 알았기 때문이다(신 7장).
그래서 그들은. 먼 나라에서 온 것처럼. 변장/치장을 하였고.
자기가 이 땅 백성/주민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낡은 옷을 입고. 찢겨진 신을 신고.
곰팡이가 난 떡과. 낡은 전대를 메고. 이스라엘로 행렬하는데"
이 모습이 얼마나 깜쪽 같은지.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속게 된 것이다.
분명 이곳 주민 같은데…
뭔가 확실한 물증과 증거가 없다 보니.
그들의 얘기를 듣고. 그냥 그들을 받아주게 된 것이다.
이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 여호와께 묻지 않았다(14절)"고 얘기하는데.
이 일로 그들은. 멸망을 당하지 않고. 이스라엘로 편입/스며들게 되었다.
거짓말을 하고. 이스라엘을 속인 것은 잘못이나.
그들의 열심과 진심을. 하나님이 받아준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과 맞서 싸우고. 그분께 대들다 보면.
오늘 우리 목숨이. 파리 목숨이라"는 것을.
그들이 알고.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기브온 주민의 모습은.
마치 야곱을 생각나게 하는 것 같다.
형의 장자권을 뺏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외면하지 않던 야곱.
팥죽을 써서 형의 장자권을 빼앗고.
가죽 털옷과 맛난 음식/별미를 통해.
형의 축복권을 빼앗고. 하나님 나라를 승계하려 했던 야곱.
그런 야곱의 모습과.
오늘 기브온 주민의 모습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주님은. 그들의 모습과 삶의 태도가 비록 바른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열심과 진정성만은 받아주고 싶었다.
"니들이. 그렇게 해서라도. 내 백성이 되고. 내 자녀가 되고 싶다면.
내가 너희의 열심을 봐서라도. 너희를 받아주고. 너희를 용납해 주겠다"고.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고. 오늘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신 것이다.
그렇기에. 말씀을 읽으며.
오늘 나의 삶과 사역을 함께 되돌아 보게 된다.
"나에게는. 이런 열심과 특심이 있을까?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고 싶은 열심에.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주님의 백성이 되고.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과 소망을 가지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기브온 주민을 손가락질하고. 정죄하기 바쁠 수 있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그러기 이전에.
오늘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열심/특심이 있는지. 다시 한번 물어보시는 것 같다.
기브온 주민은.
"여호와의 전에서.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자가 된다 하더라도.
주님 곁에 머무르고. 주님 곁에 살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오늘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모습. 그와 같은 마음이 있는지"
물어보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오늘 아침 말씀을 보는데.
이 찬양의 고백이 계속 생각나는 것 같다.
"주의 장막에서 한 날이. 궁전에서 천 날보다. 좋사오니.
주의 성산에서 한 날이. 궁궐에서 천 날보다. 좋사오니.
나의 영혼. 주님을 기뻐해.
주의 사랑 날 완전케 하네. 주의 사랑 날 새롭게 하네.
끝이 없는. 주의 사랑만이. 내 영혼 자유케 하시네.
주 영광 위해. 주 나라 위해. 나 사용하소서"
바라기는.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의 장막에서 한 날이. 궁궐에서 천 날보다 좋사오니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런 나와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고백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시 84:10).
그래서. 오늘 주께서 우리의 삶을 보시며.
칭찬하고. 기뻐하시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열심과. 주를 향한 욕망이.
더욱 커져가고. 더욱 깊어져 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열심. 이와 같은 소망 더해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하길 원한다.
(feat. 주의 궁전에서 한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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