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7:16-26

아이성 전투를 패하고.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이렇게 물어봤다.

"하나님. 어찌하여 이 백성에게.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시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에 살았으면 좋았겠나이다.
이스라엘이 저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좋으리이까.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이 소식을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여. 이제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으리이까(수 7:7-9)"

이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죄가 있음을 말씀해 주시는데.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여호와께 바친 물건을 도둑질하고. 속이고 그것을 감추었다(수 7:11)"고 말씀해 주신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제비뽑기 할 것을 말씀해 주시는데.
오늘 본문 16절부터 18절까지가. 바로 그 얘기다.

그래서. 오늘 본문 16절부터 18절까지를 보면. 성경이 이렇게 기록한다.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했더니.
유다 지파가 뽑히게 되었고.
유다 족속을 가까이 오게 했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을 가까이 오게 했더니. 삽디가 뽑혔고.
삽디의 가족들을 가까이 오게 했더니. 아간이 뽑혔는데…"

이 일을 보면서. 아간의 마음이. 얼마나 콩닥콩닥 거렸을까.
아마도 아간 입장에서는.
이 화살이. 자기를 빗겨나고. 정말 수십번/수백번 기도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 한번만 용서해 주시면. 내가 다시는! 절대로! 그러지 않겠습니다."
"제발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이번 한번만 눈감아 주십시오!"

근데. 하나님의 화살은. 여지 없이 아간에게 꽃히게 되었다.
그러자 아간은 그제서야. 자기의 잘못을. 이실직고/솔직하게 고백하게 된다.

"내가 시날 산 외투를 보고. 눈이 돌았습니다.
내가 은 200세겔을 보고. 눈이 돌았습니다.
내가 50세겔이나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눈이 돌았고.
그것을 <보고. 탐내어.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아간의 모습인.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된다.
신명기 말씀을 보면.
"40년 동안. 우리의 옷이 낡지 않고. 40년 동안 우리의 신발이 해어지지 않았다(신 29:5)"고 하지만.
매일 같은 옷. 같은 음식. 같은 신발을 신으며.
얼마나 지겹고 단순한 삶을 살았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시날 산 외투를 보고. 눈이 뒤집히는. 아간의 마음이.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쓸 수도 없고. 그것을 입을 수도 없고.
그것을 사용할 수도 없는데. 왜 그걸 가져왔단 말인가.

그 옷을 입고 나가면. 사람들이 "그 옷 어디서 났냐?"고 당장 물어볼 텐데.
왜 그걸 가져왔단 말인가.

은 200세겔. 금덩이 하나를 가져오면 뭐한단 말인가.
그것을 쓸 데도 없고. 그것을 사용할 데도 없고. 그것을 투자할 데도 없는데.
왜 그것을 가져오고. 그것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게 된단 말인가.


근데 참 슬프게도.
그것이 인간이 가진 죄악/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기도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여서.
내가 그것을. 보고 탐내어 가졌는데"
오늘 아간도. 똑같은 짓을 저질렀다.

다윗도 마찬가지다.
"왕들이 출전할 때에.
다윗은 혼자 궁위를 거닐며. 혼자 노닥거리게 되는데.
그때 다윗의 눈에 밧세바가 들어오게 되었다.
그래서 다윗은. <보고 탐내어 그를 가지게> 되는데.
이로 인해 다윗과 그의 백성 또한. 모두 심각한 화를 당하게 되었으며.

신약에 와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런 행동/잘못을 저지르게 되었다.
아나니아와 삽리라가. 땅을 팔아 얻게 된 돈의 일부를. 아까워 숨겨두게 되었는데.
이 일로 인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기의 목숨을 잃지 않던가.
가만히 있었으면 중간이라도 갔을 것을.
왜 <보고. 탐내어. 가짐으로> 인해서. 죄를 짓고. 자신의 목숨을 그 댓가로 내어놓는단 말인가.


근데 참 슬프게도. 그게 인간의 죄성/우리의 본성인 것 같다.

1) 눈앞에 놓여 있는 즐거움 때문에.
한순간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그에 대한 엄청난 댓가를 치르기도 하고.
2) 무언가를 갖고 싶어서. 아무도 몰래 그것을  꿈춰두기도 하고.
3)그렇게 사람들을 속이고. 자기의 잘못을 숨기려는 사람들의 본성.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바르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

1) 눈에 보이는 현실과. 눈에 보이는 유혹 앞에.
현혹되고 어지러워지기를 원치 않으시며.
2) 오늘 우리가. "의와 공도"를 행하며.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주의 거룩한 자녀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길 원하며.
3) 보아도. 탐심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탐심이 들어도. 그것을 가지지 않으며.
그렇게 절제하며. 하나님 앞에. 자족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길/주님의 뜻인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 앞에. 두려움과 떨림으로 서길 원한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빛을 받고. 그분의 성품 가운데 나아가길 원하며.
오늘도 주께서 우리 가운데. 어두움을 몰아내시고. 빛을 비춰주시길 간구한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빛 가운데 나아가며.
오늘 우리가. 주님의 빛 가운데 살아가며.
오늘 우리가. 주님의 빛 가운데 행하며.
오늘 우리가. 주님의 빛 가운데 거닐길 소망하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빛 되신 주. 어둠 가운데 비추사. 내 눈 보게 하소서.
예배하는 선한 마음주시고. 산 소망이 되시네.
나 주를 경배하리. 엎드려 절하며. 고백해 주 나의 하나님.
오 사랑스런 주님. 존귀한 예수님. 아름답고 놀라운신 주.

만유의 높임을 받으소서. 영광 중에 계신 주.
겸손하게 이 땅에 임하신 주. 높여 찬양하리라.
나 주를 경배하리. 엎드려 절하며. 고백해 주 나의 하나님.
오 사랑스런 주님. 존귀한 예수님. 아릅다고 놀라우신 주"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님의 빛 가운데 나아가며. 주와 동행하는.
그런 하루 되길 소망하며.

오늘 우리 가운데 있는 탐심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고.
주와 더불어 살며. 주와 동행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주님 앞에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하길 원한다.

(feat. 빛 되신 주)

 

https://youtu.be/2PMQ4pdxXKw?si=3PRHwXlf8-P9Jl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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