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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9:1-23
소수 지파의 땅 분배가 이어진다.
오늘은 특별히. 시므온과 스불론과 잇사갈 지파의 땅 분배가 이어지는데.
시므온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땅을 분배받은 지파였다.
야곱의 예언이 성취된 까닭이다.
디나가 세겜의 아들 하몰에게 성폭력을 당했을 때.
시므온과 레위가 쳐들어 가는데.
이 일 때문에. 시므온과 레위는. 축복 아닌 축복을 받게 되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창 49:5)"라고 얘기하면서.
"그들이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혈기대로 소의 발목을 끊었으니.
그들이 저주를 받고. 이스라엘 가운데 흩어질 것이라(창 49:6-7)"라고 얘기하는데.
이 일 때문에. 그들은 이스라엘 안에서 소수 지파로 남게 되었다.
광야에서는 더한 일이 벌어졌다(민 25장).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는 동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 시작했는데.
이 일 때문에. 이스라엘 가운데. 2만 4천명의 사람이 죽게 되었다.
근데 그 중에 리더가 누구였냐면?
살루의 아들이었던. '시므리'다.
그는 '시므온 지파의 한 리더'였으며.
그로 인해 이스라엘 가운데. 죄가 들어오고. 심각한 폐해를 입게 되었다.
하지만 레위 지파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하나님을 향한 열심/질투심으로.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그들을 책망하게 되는데.
이 일로 인해. 레위 지파는. "평화의 언약/영원한 제사장의 직분" 얻게 되었다.
참 재밌는 일이다.
한 사람으로 인해. 어떤 지파는. 하나님께 복을 얻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면.
어떤 지파는. 한 사람으로 인해. 죄가 더 깊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땅을 분배할 때 보면.
레위 지파는. 하나님을 유업으로 얻고. 그를 기업으로 얻게 되었다면.
시므온 지파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가장 작은 땅을 받고.
소수 민족으로/유다 지파에 흡수되게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 사람"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한 사람으로 인해. 복이 들어오게 되기도 하고.
한 사람으로 인해. 저주가 들어오게 되기도 하는데.
오늘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바라기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안에서 복을 얻고. 그 복을 나눌 수 있는.
복의 통로/은혜의 통로로 살아가면 좋겠다.
아담으로 인해. 이 땅 가운데. 사망이 들어왔다면.
우리 주님으로 인해. 이 땅 가운데. 생명이 들어왔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복의 통로가 되며. 생명의 문이 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특별히 구정 연휴를 맞아.
가족/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될 텐데.
바라기는 오늘 우리 가운데.
주께서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고. 힘 주시길 소원한다.
오늘 우리 가운데. 믿지 않는 자가 있다면.
오늘 우리의 삶과 사역이. 오늘 우리 가정 가운데.
복의 통로/구원의 문이 되길 소망하며.
여호와의 언약궤로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에. 하나님의 복이 거하고. 그분의 영이 충만하였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하나님 앞에 그렇게 쓰임받고.
주님 앞에 그렇게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내가 엄마 품 속에서. 고통 중에 태어났지만.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날 택하시고 존귀케 하셨네.
내 평생에 여호와를. 섬기며 그 말씀만.
따라 살아가리. 주의 집에 나 항상 거하리니.
원컨대 주께서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님 안에서. 복의 통로로 쓰임 받으며.
주의 거룩한 도구. 주의 아름다운 향기가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야베스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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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8:1-28
우리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지파의 땅 분배에 대해 살펴보았다.
요단강 동쪽에 있던.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유업 분배를 살펴보았고.
요단강 서쪽에서는. 유다와 에브라임. 므낫세 지파의 유업 분배를 살펴보았다.
총 다섯 지파다.
다섯 지파의 분배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데.
오늘 본문을 보면. 느닷없이 하나님이 혼내시는 장면을 보게 된다.
실제로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너희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언제까지 지체하겠느냐?(3절)"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안에 있던. 게으름과 나태함을 꾸짖은 것이다.
왜 지체하고 있었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1) 이미 얻었기 때문에. 내 땅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2) 아니면. 아직도 애굽 땅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남았던 것일까?
3) 그들의 선조가 그랬던 것처럼. 아낙 자손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기 때문일까?
어떤 이유인지. 성경이 정확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미적거리고 미온적인 태도로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께서. 각 지파별로 세 명씩 뽑아서.
그 땅을 두루다니며. 너희가 쓸 땅을 그려오라고 말하는데.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은. 그제서야 움직이기 시작한다.
천만다행이다.
움직이지 않는 것보단. 움직이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주께서 우리에게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면. 그들이 먼저 움직이면 좋을 것은.
그들은 왜 이렇게 밍기적거리고. 꿈틀거리고 있었을까?
밥상을 차려주는 것만으론 모자라서. 입에 넣어주고. 씹어주기까지 바랐던 것일까?
여러모로 아쉽고. 참 속상한 것 같다.
근데 생각해 보면.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경우가 더러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오늘날 예배의 풍경/모습을 보면.
우리는 참 편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PPT에 모든 것을 다 담아주기 시작하고.
그러다 보니. 성경을 갖고 오거나. 성경책을 찾는 경우도 드물어지는 것 같다.
예배 PPT에 모든 것이 다 나오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몇 장 몇 절" 하면. PPT에 성경 본문이 쭉 나오고.
예배당을 찾아가지 않아도. 집에서 언제든지 편하게. 말씀을 들을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예배의 편리성/편리함은 높아진 것 같은데.
그만큼 오늘 우리의 근육이 약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 자체가 느슨해진다.
"교회 가면 어차피. 찬양부터 축도까지 모든 것이 PPT에 다 나올 텐데.
내가 뭐하려고. 무거운 성경책을 들고 교회를 가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교회를 가기 전 우리 마음도 해이해지고.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 준비도 없이 교회를 갈 때도 더러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올해를 시작하며. 중고등부 친구들에게.
"성경책을 가져오게 하고. 예배 때 설교 본문을 PPT에 싣는 것을 멈추도록" 했는데.
학생들이 어떤 생각/마음을 갖는지 모르겠다.
"전에는 그냥 아무런 문제 없이 넘어갔는데. 왜 이렇게 불편하게 하나?"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고.
이 일이. 피곤하고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은 분명하다.
편리함이. 예배의 유익을 가져다 주는 것만은 아니다.
편리함이. 우리를 익숙하게 만들고. 우리를 종으로 만들 수도 있다.
예배는. 서비스/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소비자로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는. 주체로 예배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오늘 우리의 몸과 마음을 쳐서. 하나님 앞에 복종하게 해야 하는데.
나는 오늘 이것이. 영성 훈련에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우리 믿음이. 수동적으로/소비의 영성에 길들여져 가고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주체적으로/하나님 앞에 스스로 서고. 독립할 수 있도록.
오늘 우리의 믿음을 훈련하고 익혀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는 것 같다.
"너희가 언제까지.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너희는 각 지파에 사람을 보내서. 세 사람씩 선정하도록 하여라.
내가 그들을 보내리니.
너희는 일어나서. 직접 그 땅을 두루 다니며. 그림을 그리거라.
스스로 땅을 밟고. 스스로 일어서도록 하여라.
그러고 나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제비를 뽑으리니.
그 땅이 너희의 땅이 되리라"
그런 측면에서. 오늘 이 말씀이.
오늘 우리의 부르심이 되고.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되길 원한다.
오늘 우리가. 언제까지.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전락해 있을 것인가.
나이가 들면. 철이 들고 성숙해가야 하건만.
오늘 우리는. 언제까지 어린 아이처럼 지내며. 젖만 먹는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
주님은 오늘 우리가. 그 삶을 청산하길 원하시며.
무릎에 힘을 주고. 손에 힘을 주길 원하신다.
이제는 주께서 우리에게.
우리가 스스로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을 떠먹을 수 있는.
그런 힘을 기르길 원하시며.
오늘 우리가. 어린 아이의 모습을 떠나. 장성한 분량으로 서길 원하시는 것 같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하길 원한다.
"주님. 오늘 우리에게.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오늘 우리가. 넘어지길 두려워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오늘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런 죄를 범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님 앞에서. 꿈틀거리고. 요동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을 신고. 땅을 밟으며.
가나안 땅을 돌아다니며. 직접 그림을 그려왔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은 살게 하여 주시고.
오늘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메뚜기 컴플렉스/자기 연민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움켜쥐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저의 삶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은혜. 이와 같은 믿음 더해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feat. 너 결코 용기 잃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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