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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06 :: 2025.01.06(월) 수 5:1-12
수 5:13-6:7
‘신을 벗는다’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주인 앞에 납작 엎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근동 지방에선. 노예들이 신을 신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당신의 종이며.
내가 당신 앞에. 온전히/완벽히 순복할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고 순복하는 기도를 드리게 된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납작 엎드리고. 겸손히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의 행동도 마찬가지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의 신을 벗으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여호수아는 납작 엎드리고. 그분의 말씀을 듣게 된다.
‘여리고 성 전투’를 앞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함인데…
나는 말씀을 보다가.
이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의 위치와. 그분의 시점이 눈에 들어왔다.
쉽게 설명하면 이런 것이다.
여호수아 1장 5절에서.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여호수아는 이미 요단강 사건을 통해.
‘모세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이미 경험하였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의 사자가. 모세를 죽이고. 그를 제거하려는 것을 보고.
십보라가 그의 아들에게 할례를 행했던 것처럼.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에서 할례를 하게 되었고.
오늘은 모세가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것처럼.
오늘 여호수아도 여리고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경험하게 되었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 비슷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이 일들을 겪으며. 여호수아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아마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계셨던 것처럼. 나와도 함께 계심”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호렙산’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오늘 이 곳’에도. 계심을 믿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어느 특정한 지역에. 어떤 특정한 시점에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은 온천하를 두루 살피시며 돌보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고.
그분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영원토록 운행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고 경험하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리게 되는데.
이것이 여리고 성 전투를 치르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이. 오늘도 이곳에서 운행하고 계시니.
오늘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염려한단 말인가.
그런 측면에서. 오늘 이 말씀은.
나에게도 큰 위로와 힘이 되는 것 같다.
실제로 내일(7일) 아침이면.
이제 이삿짐을 꾸려 전주로 떠나게 되는데.
주께서 이 모든 일 가운데. 함께 계시고 동행하심을 믿기 원하시는 것 같다.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돌보고 계심을 믿기 원하시는 것 같고.
‘여기서도’ 오늘 내 삶을 돌보시고. 책임지신 하나님이.
‘전주에서도’ 나의 삶을 붙드시고. 책임지심을. 믿고 경험하기 원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주님은.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시는데.
오늘 나와 우리 집이. 하나님 앞에서.
이 말씀에 ‘아멘’으로. ‘기쁨’으로 순종하길 원한다.
내가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눈 앞에 서 있음을. 기억하고 소중히 여기는.
그런 나와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삶과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 한분만 영광 받으시고. 그분의 거룩하심이 드러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주님이 주신 땅으로. 한걸음씩 나아갈 때에.
수많은 적들과 견고한 성이. 우릴 두렵게 하지만.
주님을 신뢰함으로. 주님을 의지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담대함으로. 큰 소리 외치며 나아가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그날에 주께서 말씀하신.
이제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그 땅을 취하리니.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그날에 주께서 말씀하신.
이제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그 땅을 취하리니”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님이 주시는 땅으로. 한걸음씩 담대히. 또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나아가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님이 주신 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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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5:1-12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넜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두려워 떨기 시작한다.
그럴만도 한 것이. 이스라엘이 그냥 요단을 건넌 게 아니지 않은가.
여호와의 언약궤를 맨 제사장이. 요단에 발을 딛자.
그 즉시 요단물이 멈추기 시작했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 땅 위로. 마른 땅 위로 걷기 시작했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듣도 보지도 못한 일이다.
한번이면 우연이라고 하겠지만. 한번도 아닌 두번이지 않은가.
홍해 바다를 건너고. 또 요단강을 건너고.
그래서 이 소식을 들은. 가나안 백성들은.
불안함과 두려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이 쳐들어 오면 어떻게 될까?”
“저들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이쯤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진으로 그대로 뛰어들면 될 것 같은데.
주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브레이크’를 거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받고.
하나님 앞에서 언약식을 치를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다.
지난 40년 동안 할례를 받지 않았는데.
하루 이틀 늦어진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또 할례를 받고 나면. 전투력 제로인 상태로 돌변하게 되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적군이 쳐들어 오면.
우린 그야말로 개죽음 당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싸움에 있어서 ‘기세’라는 것이 있는데.
그 기세를 꺾어버리고. 오히려 찬물을 끼얹고 있으니.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기가 찬 노릇이었을테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변함없이 할례를 명하신다.
다른 어떤 것보다. 이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호수아 1장에서.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내리실 때.
제일 처음으로 하신 말씀도 이것이지 않은가.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하나님은 이 전쟁이. 인간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손에 주어져 있음을 계속 말씀하고 계신다.
인간의 어떤 노력과 계획으로. 우리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따르고. 주의 법을 지키는 것이.
오늘 우리 인생에.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법임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명하시는데.
이스라엘은 그것을 계기로. 주님 앞에 유월절을 지키기 시작했다.
주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끌어내던 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그들을 구출하였던 일.
그날을 기억하고 지키길 바랐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만약 할례가 아니었다면.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그냥 잊고 망각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유월절을 지킬 때가 아니라. 전쟁을 할 때고.
그렇게 하나 둘 양보하고 타협하다 보면.
어느새 가나안에 물들어 가고. 타락해 갈 것은.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멈춤”은.
뒤로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멈춤이 있어야 돌아봄이 있고.
멈춤이 있어야 생명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어리석고 미련하다 말할 지 몰라도.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간다.
주께서 안식일을 지으시고.
그 시간을 거룩하고 복되게 한 것처럼.
오늘 우리도. 안식의 공간/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임재 속에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멈추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눈에 보이는 상황과. 요동치는 환경 속에서.
일희일비 하며. 뒤로 물러서는. 그런 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주님의 임재 속에 거하고. 주님의 뜻하심과 통치 가운데 살아가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 아침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이 찬양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서길 원한다.
“주님의 시간에. 그의 뜻 이뤄지리. 기다려.
하루 하루 살 동안. 주님 인도하시니.
주 뜻 이룰 때까지. 기다려.
기다려. 그 때를. 그의 뜻 이뤄지리. 기다려.
주의 뜻 이뤄질 때. 우리 들의 모든 것.
아름답게 변하리. 기다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며. 주의 뜻 가운데 기다리며.
오늘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나타나고. 온전히 실현되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하길 원한다.
(Feat. 주님의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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