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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0:1-15

기브온 주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모리 사람들이. 분노한다.

두 가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1) 먼저는 괘씸한 마음이다.
전에 우리가 분명. 이스라엘과 맞서 싸우기로 약속했는데.
오늘 기브온 사람들이 배신한 것이. 못내 섭섭하고 서운했던 것 같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하는데…
아모리 사람들 입장에선. 이스라엘이. 괘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2) 또 한편으론.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브온은. 왕이 있는 큰 도성이었고.
그 규모와 전투력에 있어서도. 아이보다 크고 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이스라엘 때문에 신경이 쓰였는데.
기브온 주민이 배반했다는 소식이. 그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니 아모리 사람들 입장에선.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가뜩이나 이스라엘 때문에. 힘들어 죽겠는데.
기브온 사람들마저. 적으로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해지고 막막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한가지 묘수/꼼수를 부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아모리 사람들을 불러서. 기브온을 치자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은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기브온의 결속력이 약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만약. 지금 기브온을 제거한다면.
이스라엘을 좀 더 수월히/손쉽게 제거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욱이 기브온 주민이. 이스라엘을 속이고 화친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함부로.
자기 목숨을 걸고 이 전쟁에 뛰어들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
아도니세덱과 호함과. 비람과 야비아와. 드빌이 함께 연합 전선을 펴기 시작한데…

이에 기브온 사람들이. 여호수아에게 전갈을 보낸다.

"주여. 속히 올라 오셔서. 우리를 도와 주소서.
아모리 사람의 다섯 왕들이 모여. 우리를 치기 시작하였나이다.
제발 바라고 소원하오니.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하지 마시고.
지금 이 시간 우리를 건져주시고. 지금 이 시간 우리를 던져 주소서(6절)"


근데 재밌는 것은.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가.
밤새 그를 돕기 위해. 출발했다는 것이다(9절).
길갈에서 기브온까지. 장장 30km의 길을 행군했으며.
아무런 약속도. 기약도 없이.
그 길을 찾아가고. 그들을 듭고 시작했다.

참 재밌는 일이다.
도대체 뭐 때문에 이런 수고를 한단 말인가.
기브온 사람들이 자기를 속이고. 그렇게 위험한 짓을 벌였는데.
왜 우리가 그들을 돕고. 섬긴단 말인가.

어찌 생각하면. 손 안대고 코 풀 수 있는 기회지 않은가.
이번 기회에 기브온 사람들을 제거하고.
다시 새로운 출발을 삼자고 해도 될 것이다.

근데 여호수아는. 그날로 길갈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기브온 주민을. 자기 백성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브온 주민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고.
그들이 우리에게 죄를 짓고 몹쓸 일을 벌였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한 가족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당신의 모든 군사와 용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기브온으로 올라가는데.
그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8절)

그리고 여호수아가. 밤새 길갈에서 올라가.
그들을 치기 시작하는데.
하나님의 군대도. 함께 이 일을 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다(11절)"고 말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를 기뻐하신 까닭이다.
"주의 이름을 위해. 주의 백성이 되기를 기뻐한" 기브온 주민을 긍휼히 여겼기 때문이며.
그를 돕고 섬기기 위해서. 밤새 그길을 올라가고 수고한.
이스라엘 백성을 기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군대에 큰 승리를 허락해 주시는데.
그날을 가리켜. 성경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14절)"라고 말하는데.
주께서 오늘 이스라엘 군대를.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을 보는데.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함께 생각나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
강도를 만나고 피를 철철 흘리고 있을 때에.
아무도 그를 돕지 않고. 아무도 그를 긍휼히 여기지 않았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이 그를 돕고 섬겼던 이야기.

이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 주님이.
"누가 그들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시는데.
오늘 우리에게도. 주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지 않을까.

다섯 왕의 군대가 힘을 합쳐 쳐들어 올 때.
우리의 힘이 모자라고. 쪽수가 부족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브온 주민을 돕고. 그들을 섬겼던 이스라엘.

기브온 사람들이. 우리를 속이고 거짓말 할 때.
오늘 우리의 삶이. 수고롭고 번거로운 일을 자청할 때.

또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밤새 수고롭게 먼 길을 가야하고.
밤새 우리의 수고가 들고. 공력이 드는 상황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형제 자매를 섬기고 수고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 우리의 삶도.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은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기에. 오늘 아침 말씀을 보는데.
이 찬양의 고백이 계속 생각나는 것 같다.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자매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우리의 모임 중에 임하신. 하나님 영광 아름다워라.
존귀한 왕이 여기 계시니. 사랑하며 섬기리"

바라기는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형제자매를 섬기며 자기를 깨뜨리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의를 선포하고. 주의 뜻을 전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시며.
주께서 크게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였던 것처럼.
또 주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이같이 돕고. 이같이 싸운 날이.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살아가며.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분의 섭리를 경험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은혜. 이와 같은 복 더해주시길. 간절히 사모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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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9:16-27

이스라엘이 기브아 주민과 화친을 맺은 후.
사흘이 지났다.
그리고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은. "이 사람들이.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이곳 사람들. 히위 족속이라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난리가 났다.
백성이 찾아와 항변을 한다.
그들 중에는. 전에 문제제기를 했던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다.
여호수아 9장 7절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 거주하는 듯 하니.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조약을 맺을 수 있으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을 보아.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이미 문제 제기를 하고. 의심쩍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근데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을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을 받아주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한발 물러서고. 뒤로 빼는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근데 오늘 본문에서.
"그들이 가나안 일곱 족속 가운데 한 무리"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들 입장에선 이 일이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졌을까.

아마도 처음부터 문제 제기를 했던 사람들은.
"왜 내 얘기를 듣지 않았냐"고 항변했을 것 같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몰래 입장을 바꾸고. 은근슬쩍 그들의 얘기에 편승했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회중이 다 족장들을 원망하니"라고 되어 있는데.
이스라엘은 이 일로 인하여. 심각한 내홍/어려움을 겪었을 것 같다.


여호수아의 리더십 또한 위기다.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잘 이끌어 왔는데.
여기서 그의 잘못된 판단과 분별로 인해.
이스라엘 공동체가. 모두 쑥대밭이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함과 두려움도 몰려왔을 것 같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 했던 것처럼.
오늘 나의 잘못된 판단과 분별력이. 이스라엘을 위험에 빠뜨린 것 같은.
자책감과 두려운 마음이. 그의 마음에 엄슴해 왔던 것 같고.
이 일을 함께 책임지고 결정했던.
이스라엘 족장들도. 같은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다.


근데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이 지혜로운 말을 한다.
오늘 본문 19절부터 21절까지가. 바로 그 내용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 19절을 보면.
"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고 얘기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을 하고. 맹세>를 했는데.
여기서 만약 우리가 뒤로 무르고. 약속을 깨게 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그의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삼가고. 조심해야겠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용기 있는 태도다.
"기브아 주민이 잘못했으니. 기브아 주민에게 모든 것을 덤탱이 씌우는 게 아니라.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기가 용서를 구하고.
이 일에 대한 책임과 댓가를 치르겠다"고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용감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인가.

그렇기에 그들은. 화나 있는 민심을 달래고.
그들에게 적절한 대안. 수용 가능한 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를 패는 자가 되며. 물 긷는 자가 되게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브아 주민/사람들이.
우리 가운데 그냥 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를 위해. 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한 자리/역할을 주도록 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기브온 주민을 불러다가.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속였냐(22절)"고. 항변하고 따지는 모습이 나오는데.
여호수아의 얘기는 여기서 끝이 나지 않는다.
"너희가 우리를 속여.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니.
이 일에 대한 책임/댓가로. 너희가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는 자가 되고. 물 긷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고 얘기한다.

한순간/일순간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대대손손 그렇게 해야하겠다고 얘기한다.

이 얘기에 대해. 기브아 주민들이.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얘기하는데.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안에 있던 어려움/심각한 갈등이.
정리되고 해결 국면으로 들어가게 된다.


얼마나 다행인가.
자칫. 여호수아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이렇게 갈등이 종료되고.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 끝에는. 자기의 행동과 결정에 대해서.
"나 몰라라" 하고. 꽁무니 빼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책임지고. 결자해지" 하는 책임감 있는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닭 잡아 먹고. 오리발 내미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잘못을 이실직고 하고. 솔직히 고백하는.
기브온 주민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 단계로. 다음 스테이지로 겨우 넘어가게 되는데.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모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오늘 이 땅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어찌. 한번도 넘어지지 않고. 한번도 실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때마다. 잘못된 실수/판단을 할 때도 있고.
우리는 때마다. 잘못된 생각과 계획을 할 때도 더러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넘어지고 쓰러지기 마련이데.
그때 중요한 것은. <인정하고. 책임지고. 용서를 구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다른 사람에게 덤탱이 씌우고.
꼬리 자르기 하고.
이 일에 대해서. 나 몰라라 하고. 뒤로 물러서는 것은.
오늘 우리 공동체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아무런 해결도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흠이 없는 리더. 완벽한 리더. 조금의 모자람도 없고.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리더"를 원치 않으시고.
"자기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자기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할 줄 알며.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또 형제자매들 앞에서 겸손한"
그런 사람을 부르시고. 그런 사람을 택하시는 게 아닐까 싶다.

세상에 완벽한 리더/사람은 없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몸부림치고. 또 갈망하는 사람.
주님은 그런 사람을 찾으시고. 또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또 간구하는 것은.
오늘 나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겸손히 구하며. 회개하고 돌이킬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오늘 나의 생각과 주장을. 끝까지 고수하고.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 자매의 생각과 그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이며.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끝임없이 성숙해가고. 연단해 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데.
이 찬양의 고백이 계속 생각나는 것 같다.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내 안에 있는 십자가. 내 안에 있는 연약함을. 정직히 마주보고 대면할 수 있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끊잆없이 자라가며. 끊임없이 성숙해 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간절히 기도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는. 나와 우리 공동체 되길 바란다.

(feat. 십자가를 질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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