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10:29-43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진격해 간다.
가는 곳마다 승전보를 울린다.

막게다에서 립나로 올라가. 립나와 싸우고.
립나에서 라기스로 올라가. 라기스와 싸우고.
게셀 왕 호람이 라기스를 도우려고 올라올 때에.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가. 게셀 왕 호람을 격파하고.
이번에는 에글론과 헤브론. 드빌로 나아가.
그곳 사람들과. 그곳 성읍을 점령해 가는데…

오늘 본문을 보면. 몇 가지 말들이. 계속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1) 그 첫번째는.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다(30, 32)"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의 힘과 노력으로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니다.
여리고성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며.
이 모든 일의 성패는. 주를 따르고. 주의 말씀을 신실히 지켰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40절을 보면.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그 온 땅 곧 산지와 네겝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으며"
42절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으므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들과 그들의 땅을 단번에 빼앗았다"고 말한다.

이 전쟁의 성패/승리의 주인이.
이스라엘이 아닌 하나님임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구원의 은혜와 같다.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이스라엘 가운데. 주께서 은혜로. 당신의 복을 부어주신 것이다.


2) 그리고 두번째로 반복되는 말은.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가.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헤렘/진멸시켰다(30, 32, 33, 35, 37, 39)"는 것이다.

실제로 주께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이것을 계속/반복적으로 말씀하지 않았던가.
가나안의 작은 문화나 관습/모양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나중에 이스라엘 안에 가시가 되고 올무가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주님은. 헤렘/모든 것을 진멸시키길 원하셨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헤렘/진멸시켰는데"
이스라엘은 훗날. 이 말씀을 업신여기고 소홀히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사사기를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을. 종으로 남겨두고. 그들 가운데 거하게 하였는데.
이 일이 나중에 이스라에릐 올무가 되고. 가시가 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는. 이 말씀을 반드시/분명히 지켰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두번째로 반복되는 말이다.


3) 그리고 세번째로 반복되는 말은. 이 일에 있어서.
"온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와 함께 했다(29, 31, 34, 36, 38, 43)"는 것이다.

그러니. 길갈로 돌아오는. 이스라엘의 행렬 가운데.
얼마나 감사와 찬양이 넘쳤겠는가.

피곤함과 고된 마음은 하나도 없다.
오직 감사와 기쁨 뿐이다.
주께서 우리 가운데 승리를 주시고.
주께서 우리 가운데 영광을 주셨기 때문에.
모든 수고와 상처가. 눈녹듯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마치. 이사야 선지자가.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사 51:11)"라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이스라엘 가운데도. 감사와 찬양의 예배가 넘쳤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말씀을 보며.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파커 팔머가 말하기를.
"우리가 언제 소진되고 탈진되는가 살펴보면.
우리 삶에 의욕이 없고. 우리 삶에 보람이 없을 때.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고.
의무감과 부담감으로 살아갈 때. 그때 우리에게 탈진(burn out)이 온다"고 말하는데.
나는 이 말이 정말 맞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오늘 교회를 섬기면서.
많은 일들을 새롭게 하고. 많은 것들을 새롭게 적응해 가고 있지만.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하거나. 그것이 나를 소진케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하는 수고보다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하고 난 다음에. '헛수고' 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의 불협화음과 그을음'이 가득할 텐데.
이 일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맛보다 보니.
지난 날들에 대한 수고와 눈물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맞이하며.
감사함과 기쁨으로 하루를 보내게 되는데…
나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의 삶도. 하나님 안에서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의 섬김과 수고가.
주님 안에서. 하루 아침에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주께서 오늘 우리의 섬김과 수고를 통해서.
주께서 우리 가운데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
맛보고 알고. 누리고 깨달아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우리 안에 있는. 인간적인 생각과 피상적인 나눔으로.
서로 간보고 눈치보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수고하고 눈물 흘린 자에게는.
감사와 위로의 박수를 보내면 좋겠고.
수고하고 땀 흘리며. 결실을 거둔 자에게는.
감사와 칭찬의 박수를 보내면 좋겠다.

형제자매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면 좋겠고.
형제자매의 삶에 임한 하나님 나라가.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에도 동일하게 임하면 좋겠고.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터와 일터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이곳에 임하신 하나님 나라. 가난한 맘으로 바라보리라.
먼저 그 나라 그 뜻 구하며. 나의 삶 드리리.
이곳에 임하신 하나님 나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리라.
하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완성될 그 날까지.

믿음 다하여. 그 위에 서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무너지지 않으리.
믿음 다하여. 그 나라 세워가리라. 주님 곧 오실 때까지.

믿음 다하여. 그 위에 서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무너지지 않으리.
믿음 다하여. 그 나라 세워가리라. 주님 곧 오실 때까지"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믿음의 싸움을 싸우며. 주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복된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늘 우리의 섬김과 수고 가운데.
주께서 열매를 맺고. 결실을 거두게 하시는.
그런 나와 우리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늘 우리의 해산의 고통과. 해산의 수고 위에.
해산의 기쁨과 출생의 열매가 가득한.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주께서 그와 같은 은혜. 주께서 그와 같은 기쁨 더해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하길 원한다.

(feat. 이 곳에 임하신 하나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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