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17:7-18
'기득권'이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이미 가지고 있는 권리를 가리킨다.
<내가> 이 일을 했기 때문에. <나에게 더 큰 보상과 권리>가 돌아와야 하고.
어떤 결정을 할 때도. <내 의견이 더 크게 반영>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과.
어떤 의견을 조율하고. 맞서 싸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일에 있어서. <내 지분>이 크고. <나의 역할>이 더 많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 지파의 모습이 그런 것 같다.
분명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리더십들이.
"가족수에 따라" 균등하게 땅을 분배했지만.
그들이 이 일이 못마땅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여호수아를 찾아가. 항변한다.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는데.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주심이. 어찌 됨이냐"라고 말이다.
그들 입장에선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이토록 복을 얻게 된 것은.
<우리 아버지. 요셉 덕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당신들이 목숨을 유지할 수 있겠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우리 집안 덕분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더 큰 혜택을 주어야지. 왜 이것 밖에 안 된단 말인가?"
그들은 이 일에 있어서. 자기들의 지분이 매우 크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좀 더 넓은 땅에서. 좀 더 편한하게 살고 싶었다.
그게 우리에게 맞는. 합리적인 처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에 여호수아가. 팩트로 그들을 때려버린다.
"그렇다면. 니들이 그 땅을 차지하면 되지 않겠냐?
너희의 힘이 세고. 너희의 수가 많다면. 그 위에 있는 산까지 너희가 가지면 되지 않겠냐?
거기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이 있는데. 그 땅까지 너희에게 주도록 하겠다.
너희가 그 땅을 가서. 점령하도록 해라"
그러자. 그때부터 요셉 지파 사람들이 말이 많아진다.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 못한데…
거기는 가나안 사람들이 철병거를 가지고 있는데…
왜 우리에게 이렇게 힘든 일을 시키나…"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요셉 지파의 모습은.
갈렙과 그의 가족들의 모습과 사뭇 다른 것 같다.
갈렙은. 이스라엘이 여기 오기까지. 수많은 업적과 위대한 일을 하였지만.
한번도 자기 기득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땅을 분배할 때도. "주께서 약속하신 저 땅을 내게 달라"고 하였다.
그 땅은 평지가 아닌. "산지"였으며.
이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신다"고 말하였다.
악사와 그의 사위 옷니엘에게 땅을 줄 때도 마찬가지였지 않은가.
자기 자식에게. 자기 사위에게. 좋은 땅을 선물로 줄 법하지만.
그는 자기의 기득권과.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본이 되어. 땅을 개척하고. 길을 떠나려 하였다.
그래서. 악사와 옷니엘이 땅을 요청할 때에.
이스라엘의 험지였던. '네겝'을 그들에게 주는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 지파는. 그것과 정반대의 삶을 살아간다.
"우리 아버지때부터. 우리 선조가 이뤄온 역사가 있으니.
그 일에 대해. 나의 지분/나의 몫을 달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일이. 이스라엘 안에. 얼마나 치명적인 독이 되었겠는가.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를 깨뜨리고. 자기를 내어줘도 모자랄 판에.
나의 자리를 챙기고. 나의 유익을 구하고. 나의 몫을 챙기려는 모습들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얼마나 큰 해가 되고. 걸림돌이 되었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을 보는데.
오늘 우리의 모습은. 누구와 가까운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오늘 우리는. 요셉 지파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갈렙처럼. 또 악사와 옷니엘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 주님은. 우리가. 요셉 지파의 길을 따르지 아니하고.
갈렙과 옷니엘. 그리고 악사와 같은 삶을 살아가기 원하신다.
주께서 하늘 영광 버리고. 이 땅에 오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자기를 깨뜨리고. 자기를 허비하는 삶을 살기 원하시며.
오늘 우리 인생이.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자기 유익을 내세우기 전에.
공동체의 필요를 살피고. 공동체의 유익을 도모하기 원하신다.
"내 것"을 주장하다 보면. 오늘 우리의 삶이.
"전쟁터"로 바뀌게 되지만.
"우리의 것"을 살피다 보면.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평화로운 곳"으로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 아침 말씀을 보는데.
이 찬양의 고백이 계속 생각나는 것 같다.
"삶의 작은 일에도. 그 맘을 알기 원하네.
그 길. 그 좁은 길로 가기 원해.
나의 작음을 알고. 그분의 크심을 알며.
소망. 그 깊은 길로 가기 원하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내 가는 길만 비추기보다는. 누군가의 길을 비춰준다면.
내가 노래하듯이 또 내가 얘기하듯이.
살 길. 난 그렇게 죽기 원하네.
삶의 한절이라도 그분을 닮기 원하네.
사랑. 그 높은 길로 가기 원하네.
그 좁은 길로 가기 원하네.
그 깊은 길로 가기 원하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님을 닮아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와 그분의 뜻을 전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소원)
https://youtu.be/-B3w7mjRK6I?si=y9AzIHw3_gRLM9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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