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15:20-63

오늘 본문을 보면.
유다 지파에 분배된 땅. 특별히 성읍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다.

21절부터 32절까지는.
유다 지파의 남쪽 끝. 에돔 경계에 위치한 성읍들에 대한 얘기를 하고.
33절부터 47절까지는.
이스르엘 평지에 위치한 성들에 관한 얘기를 한다.

그리고 48절부터 60절까지는. 중앙 산지에 위치한 성읍들에 관한 얘기를 하고.
마지막으로 61절부터 62절까지는. 사해 광야에 위치한 성읍들에 관한 얘기를 한다.

어마어마한 얘기다.
그 성들의 수를 헤아려 보면. 무려 120여개에 이르렀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를.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장자 지파로 택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만큼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축복과 은혜를 받았었고.
이것은 이스라엘을 안에서. 대대손손 자랑이 되고. 유업이 되었다.


근데. 오늘 본문을 본문을 재밌는 기록이 있다.
그것은. '아직' 점령하지 못한 땅들도. 함께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블레셋 사람의 땅이다.
오늘 본문 45절부터 47절까지를 보면.
<에그론과 아스돗, 가사와 그 인근의 땅>이 등장하는데.
이 도시들은. 블레셋 주요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서.
수많은 적군과 이방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근데 우리 주님은.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업으로 전수하신다.
"너희가 쳐들어 가서. 그 땅을 점령하라"는 것이다.
주께서 우리 가운데. 유업으로 주신 땅이니.
너희는 그 가운데 들어가 살고. 거기 머물라는 것이다.

<아직> 그 나라가. 우리 가운데. 완전히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그 땅을 점령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끊임없는 싸움 전투를 벌이는데.
재밌는 것은. 이스라엘이 그 땅을 점령한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가사와 에그론과 아스돗은.
블레셋이 목숨을 걸고 싸우던 땅이었고.
이스라엘의 힘이 가장 세고 강한. 다윗과 솔로몬 때에도.
그 땅을 점령하고. 그 땅을 다스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63절에 나오는. 여부스 족속도 그러하다.
분명 여호수아 10장에서.
여호수아가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을 처단하고. 처형하는 장면을 지켜봤지만.
아직도 그곳에는. '여부스 족속'이 남아 있었다.

여부스 족속은. 틈만 나면 예루살렘에 거주하려 했었고.
사울 왕 때에도. 사울이 잠시 자리를 비우고. 딴 길로 갔을 때도.
여부스 사람들은. 그 새를 참지 못하고.
그 길로 들어가. 자기들이 왕 노릇하고. 자기들이 주인이 되려고 했었다.

그래서 훗날. 다윗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려고 할 때.
여부스 사람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가?
사무엘하 5장 6절을 보면.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삼하 5:6)"고 하면서.
조롱하고 비아냥 거리게 되는데.
이것이 여부스 사람들의. 삶의 행태/모습이었다.

얼마나 끈질긴지 모른다.
이스라엘은 살자고. 그들을 쫓아내려고 하는데.
여부스 족속은. 죽자고 버팅기고. 자리를 차리하려 하였다.

그러니. 죽자고 달려드는 사람을.
산 사람이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차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주께서 우리 가운데. 약속의 땅을 주시고.
그 성읍을 유업으로 주셨지만.
아직 그 땅은 오늘 우리에게. 미완의 과제로/미완성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죄의 유혹과 지배가.
얼마나 끈질긴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실제로 오늘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볼 때.
오늘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드리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다짐하고. 또 기도해 보지만.
우리는 매번 넘어지고 쓰러지기 일쑤다.

수련회를 다녀오고.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이제 조금 괜찮아지고. 나아진 것처럼 보이다가도.
금세 제자리로 돌아가고. 금세 무너질 때도 더러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패배주의와 낙심의 마음이 우리를 찾아오게 되는 것 같다.
"주께서 우리 가운데 승리를 주셔도.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오늘 나의 삶이. 여전히 죄의 관습과 굴레 안에 살아가고 있는데.
오늘 우리의 삶은. 어쩐단 말인가?"

근데. 그게 오늘 우리 안에 있는.
우리의 실존이자. 우리의 솔직한 본 모습이다.

주께서 우리 가운데. 약속의 땅을 유업으로 주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하고. 뒤로 물러설 때도 있는 것 같고.
주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약속의 말씀/생명의 말씀을 주시지만.
우리는 여전히 육신의 연약함과 이생의 염려에 막혀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할 때가 더러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어찌. 유다 지파를 손가락질하며. 비아냥거릴 수 있겠는가.
그들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고.
오늘 우리의 모습이. 수천년 전 이스라엘의 모습이다.

오늘 우리 곁에 있는. 형제 자매의 넘어짐이.
오늘 우리의 모습과 같으며.
오늘 우리도. 언제든지 넘어지고 시험에 들 수 있는 것이.
오늘 우리 안에 있는 실존. 우리의 연약함인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그분의 은혜를 구할 따름이다.

오늘 우리 가운데.
우리가 여전희 죄의 관습과 습관 가운데 빠져 있으니.
주께서 오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긍휼히 여겨주시길 구할 따름이며.
오늘 우리가.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성령의 충만함과 주님의 자비. 주님의 도우심을 구할 따름이다.

오늘 주께서 우리 가운데.
"내가 세상과 싸워 이기었노라"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주께서 이긴 싸움을.
우리도 함께 맛보며. 승리의 영광을 누리길 소망하며.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거룩해지고. 성결해지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 공동체의 소망이며. 나의 기도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아침.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이 찬양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서길 원한다.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바라던 천국 올라가. 하나님 앞에 뵈올 때.
구주의 의를 힘입어. 어엿이 바로 서리라.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우리 가운데 소망이 없으며.
우리 가운데 아무런 자랑할 힘도. 아무런 자랑할 열매도 없음을 고백하며.
오직 주님을 붙들고. 주님 앞에 깊이 자리 하기를 소망하며.

오늘 우리가 주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믿음으로 성취하며. 믿음으로 점령해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은혜. 이와 같은 소망 더해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님 앞에 의탁해 드리길 원한다.

(feat. 이 몸의 소망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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