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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1.02 :: 2024.01.02(화) 왕하 1:1-8

왕하 1:1-8

아합의 뒤를 이어. '아하시야'가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아합의 길을 걸었으며.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바알을 숭배하기를 기뻐하였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다락방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는데.
그는.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어.
자신의 병이 나을 수 있는지 물어보려 하였다.

어리석은 일이었다.
아버지 아합 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몰랐던 걸까?
바알 선지자들과 엘리야의 영적 전투에서.
바알 선지자들이 무력하게 지고. 패망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아합과 이세벨이. 하나님의 약속/경고를 어기다가.
끝끝내 목숨을 잃고. 사망하게 된 걸. 그새 까먹은 걸까?

참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성경 기자는. 아하시야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고 이렇게 조롱한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본래.
'바알세불'이라고 하여. '풍요의 신 바알은 고귀하다'는 뜻을 담고있는데.
성경 기자가 이것을. '바알세붑'으로 바꾸면서. '파리 대왕'이라는 말로 바꿔버렸다.

다시 말해서.
"당신들이 그렇게 찾고 기다리던 신들이.
'파리 대왕'. 더럽고 윙윙 거리는. 파리들의 대왕에 불과한데.
왜 아직도 그 신들을 찾고. 얼쩡거리고 있냐?"는 것이다.

이처럼. 아하시야는. 살아있는 교훈/아버지의 경험을 보고서도.
아직 뜻을 돌이키고.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
정말 고집이 세고. 어리숙한 모습이다.
어쩜 이렇게. 바보같은 일들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서.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눈길이 간다.
그들은 다름 아닌. '사마리아 왕의 사절단'이었다.

실제로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사절단이. '아하시야 왕의 병이 나을 수 있는지' 물어보려고.
바알세불에게 가는데.
그때 이들이 만난 것은. 다름 아닌 디셉 사람 엘리야였다.
그는. 바알 선지자의 모습을 띄고 있지 않았고. 바알 산당에 있지도 않았다.

근데. 엘리야가 나타나서 하는 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계신데.
너희가 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냐?"고. 묻고 따지고 있다.
그리고. 엘리야가 말하기를.
"아하시야가. 그 병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재밌는 것은. 바알세불에게 가던 사절단들이. 그 얘기를 듣고.
왕에게 다시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참 재미있지 않은가.
어떻게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분명히 왕이 시킨 것은.
바알세붑에게 가서. 자기가 나을 수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물어본 것인데.
그들은 왜 바알세붑에게 가다가. 중간에 길을 돌이킨 것일까?
왕의 명령이 무섭지 않았던 것일까?
왕이 두렵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다. 그들이 길을 돌이킬 수 있었던 것은.
디셉 사람 엘리야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그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계시는데. 왜 우리가 그에게 물으러 간단 말인가.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지 않은가.
여호와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시고. 만드시고. 처음부터 계셨던 하나님인데.
우리가 어찌 파리 대왕에게. 인간의 생사화복을 물을 수 있단 말인가?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 생활을 할 때.
그때 파리 재앙이. 이스라엘과 온 애굽 전역을 덮었을 때.
우리 하나님이. 그 파리 떼를 몰아내고. 평안을 주시지 않으셨던가?

그래! 바알세붑에게 갈 필요가 없겠다.
우리 길을 돌이켜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
하나님의 아들. 천사가 전해준 말을 왕에게 전하자.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붙들 것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니.
주님이 하신 말씀을. 있는 모습 그대로. 가감 없이 전달하자."

그래서. 그들은. 바알세불에게 가는 길을 돌이켜.
왕에게로 다시 돌아갔다.
"너희가. 왜 다시 돌아왔는지?" 묻는 왕의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하였고.
엘리야가 전해준 말을. 가감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전달하였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온. 사절단의 모습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말씀을 보며.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생각해 본다.

오늘 우리는. '사절단'처럼.
주의 말씀을 듣고. 돌이키며. 그분 앞에 엎드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아하시야'처럼.
듣고. 보고. 눈 앞에서 생생하게 경험하고도.
여전히 어리숙하고. 미련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그런 어리숙함과 미련함 가운데 살아가지 않으면 좋겠고.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주의 말씀을 듣고 돌이키며. 그분 앞에 엎드리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데.
우리가 그분이 아닌. 다른 신들을 찾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주인되시고. 하나님이 왕 되시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아침 말씀을 보는데.
이 찬양의 고백이 함께 생각나는 것 같다.

"주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오직 주께.
주 경배합니다. 다른 신 아닌. 오직 주께.
주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오직 주께.
주 경배합니다. 다른 신 아닌. 오직 주께.

나의 모든 우상들. 나의 보좌. 모두 다 내려놓고.
주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오직 주께"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께 엎드리고. 주만 섬기며. 오직 주님만 경배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 앞에 엎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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