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11:1-20
사람들은. 저마다의 영역을 가지고 살아간다.
내가 나고 자란 곳. 내게 익숙한 공간. 내게 편안한 사람들.
그래서. 사람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살고자 한다.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하고.
이사를 하게 될 때면. 늘 크고 작은 두려움/긴장을 마주하기 마련이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고.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수많은 이사를 경험했던 나로서도. 이것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초등학교를 6군데나 다녔고.
대학을 다니면서도. 간사로 섬기면서도. 각각 5~6번의 이사를 하였었다.
20번 가까운 이사 생활을 했었으니.
이쯤되면. 보따리 생활 하는 것도. 익숙할 법 한데.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이다.
전주에 내려오면서는.
'이제 인생의 후반전은. 여기서 안정된 삶을 사는가' 싶었는데.
'내년이면' 또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
인생은 원래 돌고 도는 거라지만. 너무 많이 돌고 돈다.
언제쯤. 나는.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을까?^^ㅎㅎ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다.
실제로. 앞선 본문을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처지가 어떠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데.
예루살렘 성벽은 불타고 무너졌기에.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아닌. 저마다 자기 고향에 자리를 잡았었다(느 7:73).
예루살렘 성읍은 크고 넓었으나.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집도 얼마 없었다(느 7:4).
그러니. 삭막할 수밖에...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살기보다. 자기에게 편한 곳. 익숙한 곳에 눌러 살기를 바랐다.
바로 그때. 느헤미야가. 이렇게 제안한다.
"여러분. 이전에는. 예루살렘에 살기가 많이 불안했죠?
성벽은 무너지고. 언제 적들이 쳐들어 올지 알지 못하고. 많이 불안했죠?
하지만. 이제는 괜찮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완성되었으니. 이제는 아무런 염려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예루살렘으로 오십시오. 여기 모여서. 우리 함께 삽시다.
이제 예루살렘도. 사람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였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안정된 삶의 터전/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먼저 본을 보여.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강제 이주 정책을 펼치기로 하였다.
운명의 주사위를 던져서.
9/10는. 본래 자기가 살던 성읍에. 그대로 두고.
1/10은. 예루살렘 성읍으로. 강제로 이주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환호성과 탄식이 교차하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여기 남게 되었다고. 좋아하고.
누군가는. 여길 떠나게 되었다고. 슬퍼하는.
운명의 장난 같은. 그런 날 말이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주사위에 운명을 건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실제로. 본문 2절 말씀이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 예루살렘에서 살겠다고 자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안정된 바운더리/경계를 떠나길 주저하지 않았고.
도리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스스로 자원함으로. 이 길을 떠났다.
그들은. 주사위에 운명을 맡기는. 숙명론자가 아니었으며.
하나님과 함께 길을 떠나는. 선구자/개척자들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를 축복하며. 그에게 복을 빌어준다.
그리고. 성경은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모두 '큰 용사'라고 말한다.
이게 인상적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어떤 업적을 남겨야. '강한 용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 길을 떠나고.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께서. 그들을 '큰 용사'라고 부르는 것이다(느 11:6, 14).
그런 측면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큰 일을 이루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작은 일에. 충성하고. 작은 일에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믿음으로 길을 떠나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큰 용사'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이 큰 위로가 된다.
사실 나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인데. 내가 무엇을 했다고.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그저. 주님 이끄시는대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살아왔을 뿐인데.
주님이. 그런 우리를. 치켜 세워주는 것 같다.
그래서. 감사할 따름이다.
이 작고 연약할 사람을. 주님이 기억해 주시니 말이다.
바라기는. 우리 공동체에도 이와 같은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내게 주어진 삶의 안정된 공간을 떠난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믿음으로. 자원함으로. 또 감사함과 기쁨으로.
이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어떤 안정된 미래나. 보상은 없다 하더라도.
주님과 함께 모험으로 사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가 써 내려가야 할. 믿음의 History. 이야기가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주님이. 우리를.
"모험으로 사는 인생"으로 초대하시는 게 아닐까.
믿음으로 길을 나서고. 믿음으로 내 삶을 주께 맡겨 드릴 때.
주님의 일하심을 보고. 만지게 될 것이다.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의 삶이 그러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주와 함께. 이 길을 떠난다.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느헤미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10.07(수) 느 12:1-26 (0) | 2020.10.07 |
---|---|
2020.10.06(화) 느 11:21-36 (0) | 2020.10.06 |
2020.10.02(금) 느 10:32-39 (0) | 2020.10.02 |
2020.10.01(목) 느 10:1-31 (0) | 2020.10.01 |
2020.09.30(수) 느 9:32-38 (0) | 2020.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