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4:1-5
화요일부터. '복음밥 킹덤(청소년 수련회)'가 진행중이다.
어제는 '묵은지와 겉절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신앙에 대한 학생들의 물음/궁금증을 해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도 유튜브로 그 시간을 잠시 살펴보았다.
그런데. 학생들의 질문 중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성경에 나오는 우상 중에. 가장 많이 나오는 우상이 무엇일까요?"
구약 성경을 보자면.
아마도 그것은. '바알/풍요의 신'일 것이다.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게 되면서.
그들은 농경사회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를 위해선. 비가 필요했다.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이 비를 주관한다고 믿었으며.
이를 위해선. 바알 신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에게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유목 생활 가운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 주신 것이 맞지만.
하나님과 함께 농사를 지어본 적은 없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불안과 염려 때문에.
양다리를 걸치고. 하나님과 바알을 겸하여 섬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신약 시대에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섬기던 우상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돈/맘몬'이었을 것이다.
경제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사람들은 돈의 맛을 알게 되었고.
돈이면 뭐든지 다 해결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렇기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길 수 없으리라"
구약 시대에는.
"너희가 언제까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멋 할 거냐?"라고. 물으셨는데.
신약 시대에는.
"너희가 언제까지. 하나님과 돈 사이에서. 기웃기웃/갈팡질팡 할 거냐?"라고.
반문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를 안고 살아가기에.
어떻게든 안전 장치를 마련하고 싶은. 생각/유혹들을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풍요의 신'을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헤매며 살아가나 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복권이든 비트코인이든 주식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기에 몰두하기도 하고.
보다 안정된 미래와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오늘도 학업에 매진하며.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애를 쓰며 오늘을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우상은.
또. 우리가 가장 많이 믿고 따르는 우상은.
'풍요의 신/바알과 맘몬'인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또 다른 생각도 든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믿고 섬기는 우상이.
'오늘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안'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내가 주인이 되고. 내가 왕이 되는 세상'이다.
"내가 굳이 다른 사람을 따라갈 필요가 있나?"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내가 굳이 들을 필요가 있나?"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살아가면 안 되나?"
그러다 보니. 진리에 대한 가르침이 희석대고.
절대적 가치와 보편적인 기준 또한 사라지기 마련이다.
어떤 얘기를 하면. "그건 니 생각이고~"라고 받아치며.
"나는 별일 없이 산다"며.
그냥 하루하루 내 마음대로. 내 하고 싶은대로. 오늘을 살아가겠다고 노래한다.
결국. 그들이 믿고 섬기는 것은 '내 자신'이다.
다른 사람을 믿을 필요도 없고.
불안한 미래를 잠재울 필요도 없고.
그냥 오늘을 살고. 오늘을 즐기면 되는 것이지.
뭐 별다른 걱정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냐며 말한다.
나는 이것이. 오늘 우리가 섬기는. 두 부류의 큰 우상이라 생각한다.
하나는 '물질주의/풍요의 신'이며.
또 다른 하나는 '에고이즘'.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나만의 행복과 유익을 위해 살아가는.
'나를 섬기며', '나를 높이는' 우상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길이 있다.
하나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 짐승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어린 양의 표를 받고. 그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짐승을 따라다니는 사람은.
그 문이 넓고 편해서.
많은 사람이 그 길을 찾고. 많은 사람이 그 길을 드나들지만.
그곳에는 아무런 생명과 기쁨이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에는 눈에 보이고. 편해 보일지 몰라도.
결국에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의 대상이 될 뿐이다.
하지만 여기 또 다른 길이 있다.
그것은. 어린 양을 따라가는 길이다.
너희가 보이기에는.
지금 당장에는 이 길이 좁고 험하게 보이지만.
이 길 끝에는. 생명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그러니. 너희는 그 어린양을 따르는. 주의 백성되길 바란다.
우둔한 짐승의 표를 받고.
아무 생각없이 그 짐승을 따라 다니다가. 심판의 길에 서지 않길 바라며.
너희 스스로가 짐승이 되어.
오만한 자의 자리에 오르려는. 교만한 마음 또한 버리길 바란다.
오직. 우리가 그 어린양을 따라가며.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 안에서 마르지 않는 기쁨과 생명을 누리길 바란다.
이것이. 너희를 향한 나의 마음이다."
그렇기에. 이 아침. 이 찬양이 계속 생각난다.
"나는 어린양을 따르리. 온 힘 다해. 온 맘 다해.
그의 명령에 순종하리. 나는 어린 양을 따르리"
수많은 성도들이.
"예수의 이름을 부인하면. 너희를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그들은 결코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았다.
세상의 관점에선.
이렇게 바보같고 어리석은 선택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님은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받으시며.
그들의 고백을. 믿음으로 여기셨다.
그렇기에 그들은.
지금도 하늘 보좌 앞좌 앞에서. 주와 함께 노래하며.
그와 함께 기쁨의 잔치에 참예하고 있는 것이다.
바라기는. 오늘 우리의 일상도 그러하길 소원한다.
왜 우리에게 고민이 없겠는가.
왜 우리에게 염려가 없겠는가.
왜 우리에게 두려움이 없고.
왜 우리에게 불안함이 없겠는가.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가 세상의 목소리를 듣고. 세상의 임금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의 영원한 왕이신.
주님을 따라가는 인생되길 소원한다.
그래서.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나는 어린 양을 따르리"라는 고백을 하며.
오늘 그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오늘 그 주님과 함께 날아 오르는. 그런 한 날이 되길 소원한다.
이 믿음의 고백이.
오늘 우리의 삶에 가득가득 흘러 넘치길 소원하며.
이 아침. 이 찬양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나아간다.
(feat. 나는 어린 양을 따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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