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6:9-20

'자유'의 시대다.

자유롭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 말하며.
자유롭게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세련되고 멋진 삶이라 말한다.
억압과 구속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말이며.
구 시대의 유산/유물로 취급 받는다.

나 역시. 이 생각에 일면 동의한다.
하지만. 마냥 이 생각을 수용할 수만은 없다.
인간의 이중성. 모순됨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것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의문/질문이 내 마음에 남는다.

1) 자유를 따라.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의 기준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내가' 기준이 되어서. 내 생각과 원칙에 따라 결정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가?
만약 '다른 사람'이 그 기준을 마련한다면.
우리는 그의 의견을. 믿고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문화에 따라. 그 원칙과 기준은 변경될 텐데.
그렇다면. '지금 자유'라고 생각한 것도. '나중에는 구속'이 되지 않을까?

2) 자유란. 내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멈추고. 돌아서고. 절제하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그럴 수 있어야 하는데.
'중독적 성향'을 가진. 우리 인간이 이 모든 것을 정말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우리 인간을 너무 긍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신앙은 자유다. 신앙은 누림이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일면 동의하면서도. 일면 조심스럽고. 염려가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에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분. 모든 것이 우리에게 허용되어 있지만.
모든 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우리에게 자유가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무엇이든지 먹고 마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가. 나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를 향해. 선용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의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기에.
또.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핏값으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주의 전/성령의 전으로 삼아주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라기는. 우리가.
'자유'라는 미명 하에. 죄의 종노릇 하는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도리어. 참된 자유는. 참된 구속에서 시작되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신앙은. 누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절제이기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을. 우리 마음판에 되새기길 기도한다.

나는. 무엇을 따라. 오늘을 살아가는가.
나는. 누구의 다스림과 통제를 받고 있는가.
혹시 우리는.
"모든 것이 나에게 가하며. 나는 아무런 거리낌도 죄책감도 없다" 말하며.
하나님 앞에서. 향방 없이 살아가며.
탕자처럼. 아버지의 집을 떠난 어리석은 아들처럼.
자유롭게.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바라기는. 오늘 우리 시대에.
진정한 자유와. 진정한 기쁨이 흘러넘치길 기도한다.

내 입맛대로. 내 편의대로.
내 마음대로. 취사선택하는 자유와. 관용이 아니라.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자유와. 참된 은혜가 오늘 우리 삶에 있길 기도한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그런 은혜와 소망 더해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posted by The Sabb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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