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6:1-19
에서의 족보가 시작된다.
그는. 3명의 아내(아다, 오홀리바마, 바스맛)를 맞았으며.
5명의 아들(엘리바스, 르우엘, 여우스, 알람, 고라)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5명의 아들은. 또 13명의 아들(에서의 손자)을 낫게 되었고.
그렇게 에서의 집은. 에돔이라는 큰 나라를 세우게 되었다.
"두 민족이 너의 태 안에 들어 있다"는. 주님의 말씀이.
이뤄지고 성취된 사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에서는. 주님의 택함을 받지 못하였다.
그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 세일 산에 자리를 잡았으며.
그는. 많은 명예와 재산을 얻게 되었지만.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얻게 되는. 복을 받진 못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에서의 인생은. 반쪽짜리 인생이었다.
아니. 실패한 인생이었다.
인간적인 관점으로는. 많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누리며.
마냥 행복할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한줌의 흙에 불과한. 유한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창세기에 기록된 수많은 족보들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과.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못한 백성들의 이야기로 나눠져 있다.
근데. 말씀을 읽다가. 이런 생각/질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굳이.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약속의 자녀들의 이야기만 기록하면 될 것을.
왜 굳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못한/이방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담고 있을까?"
그렇게 묵상하던 중에.
"에서의 족보가. 결국에는. 나의 족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래 나도.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가나안 땅을 떠나서.
세일 산에 자리를 잡고 살던 사람이었고.
나도. 눈에 보이는 재산과. 눈에 보이는 것들을 따라 살아가며.
지금은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이 얘기하는 것처럼.
"우리는. 약속의 언약에 대해서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아무런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던 것이다(엡 2:12)"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외인이 아니라. 가족/자녀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에서의 족복에서. 야곱/이스라엘의 족보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같은 본문(에베소서 2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
그런 측면에서. 이 아침.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며.
우리를 당신의 백성 삼아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의 노래로 나아갈 뿐이다.
내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며.
내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나를 사랑하시며.
내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나를 택하시고.
내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나를. 당신의 백성/자녀 삼아주셨는가.
정말 나의 나 된 것으로 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로지 주의 은혜. 주의 공로 때문에.
우리가.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골 1:13).
그렇기에. 이 시간.
이 찬양을 부르며. 주님 앞에 나아갈 뿐이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시고.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주.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볼지어다. 주가 구름타고 오시리라"
오늘 하루.
우리를 흑암의 나라/권세에서 건져내사.
우리를. 사랑의 아들/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로 옮기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 앞에. 감사와 기쁨으로 나아가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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