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6:20-43
에서는. 세일 산으로 가서. 그 지역 일대를 다스렸다.
원래 세일 산은. 호리 족속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는데.
그들은. 사암이나 석회암 동굴에 살면서. 자신들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호리' 라는 말 자체가. '동굴에 거하는 자들'이라는 뜻이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여러 부족을 이끌고. 여러 모양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에서와 그의 가족들이. 그 땅을 점령하였고.
그는. 그곳에. '에돔'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복과 은혜가. 에서의 집에도 동일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말한다.
주께서. 이삭뿐만 아니라. 이스마엘도 사랑하였던 것처럼.
주께서. 야곱뿐만 아니라. 에서 또한 사랑했기에.
이와 같은 복과 은혜를 주셨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 역시. 이 생각에 대해. 완전히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쉽게 말하고 지나치기엔. 뭔가 아쉬운 것이 있다.
그렇다면. 주께서 에서를 택하지 않으시고. 야곱을 택하신 까닭이 무엇일까?
결국에. 주께서 모든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기 원하신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을 따라서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측면에서. 결과론적으로.
"주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주께서 모든 사람에게 복을 주기 원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너무 쉽게/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어떻게든. 쉽게 답을 찾고. 자리에서 빨리 일어서려는 욕심이.
생각의 부재/신학의 부재/하나님의 부재를 낳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족보가. 아무런 의미 없는 기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 주께서.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또 생각하였다.
그러다. 31절부터 39절까지의 기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31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왕이 아직 없을 때에. 다음과 같은 왕들이 차례로 에돔 땅을 다스렸다."
그러면서. 세일산/에돔땅을 다스렸던 수많은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데.
재밌는 것은. 여기 나오는 수많은 사람/왕들의 이름이.
에서의 족보/가문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1) 실제로. 벨라가 누구인가?
그는. 브올의 아들이었고. 그는 에서의 집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2) 그러다. 요밥이 왕이 되었는데.
그는 보스라(요르단/사해 인근에 있는 도시) 사람이라고 말할 뿐이다.
3) 그 다음에는. 데만 사람의 땅에서 온 후삼이 왕이 되었고
4) 그 다음은. 모압 벌판에서 미디안 사람을 친 하닷이 왕이 되었다.
5) 그리고. 마스레 출신 삼라가 왕이 되었고.
6) 그 다음은. 유프라테스 강 가에서 살던. 르호봇 사람 사울이 왕이 되었다.
7) 그 다음은. 악볼의 아들. 바알하난이었고.
8) 그 다음은. 하닷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31절부터 39절까지 기록된 이야기를 보며 알 수 있는 것은.
1) 이곳은. 모든 사람들이. 싸우고 다투는. 각축지였다는 것이다.
'족보를 따라', '가문을 따라' 왕위가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힘이 있는 사람이. 그 지역을 다스리고.
힘이 있는 사람이. 그 지역을 다스리는. 왕이 되는 것이었다.
2) 이것은. 에서의 가문도 예외가 아니었다.
비록. 에서의 집안이. 부족을 이루고/가문을 이루고/족속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그들에게. 영원한 승리/영원한 나라를 안겨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힘의 논리에 따라. 세일 사람들을 밀어냈지만.
그들도. 결국. 힘의 논리에 따라. 변방으로 밀려나게 되었으며.
이것이. 세상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현실이라는 것을.
오늘 본문은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을 읽으며/묵상하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우리는. 영원하지 않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더 많은 힘과 능력을 드러내며 살려고 하는 것인가?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아무리 많은 것을 자랑한다 하더라도.
결국에. 주께서 흔드시고 흩으시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우리는 그렇게 아둥바둥 살아가며.
어떻게든. 흩어짐을 면하고. 내 힘과 능력으로 오늘을 살아가려 하는걸까?
그런 측면에서. 오늘 따라. 히브리서 기자의 권면이 내 마음에 많이 남는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검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히 12:28-29)"
그리고.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 6:19-20)"
바라기는. 오늘 하루.
이 말씀이. 나와 오늘 우리 공동체의 기도가 되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붙들고.
영원한 주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기도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오직 주의 말씀만 영원히 설 것이다.
(feat.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내 한 가지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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