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7:12-36

자식을 잃은 슬픔을. 어디에 비견할 수 있을까.
오늘 본문에 나온. 야곱의 모습이 그러하다.

그는. 형들이 잘 지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아들 요셉을. 형들에게 보냈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아들 요셉의 피묻은 옷 뿐이었다.
형들이. 요셉에게 해코지를 하였기 때문이었다.

요셉이 꼴보기 싫어서. 처음에는 그를 죽이려 하였지만.
유다의 제안으로. 그를 이스마엘의 사람들에게. 노예로 팔아넘겼고.
이 상황을 둘러대기 위해서.
그들은. 요셉이 사나운 들짐승에게 잡아 먹혔다고. 거짓말/알리바이를 마련하였다.

이에 야곱이. 슬픔을 못이겨. 눈물에 눈물을 쏟아낸다.
만약에. 내가 아들 요셉을 떠나보내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하는. 자책감/자괴감에 시달리고.
아들 요셉을 잃어버린 슬픔/아픔에. 하루하루를 도무지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야곱은. 잃어버린 자식을 생각하며. 울고 또 울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형들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는 거지?
왜 우리가 그렇게 한 거지?
홧김에. 정말 홧김에 그렇게 하긴 했지만. 그래선 안 되는 일이었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 없고…"

형들도. 말할 수 없는 죄책감/자책감에. 하루하루 시달릴 뿐이다.
꿈쟁이 요셉이. 그들의 꿈에 하루하루 찾아오는 것 같고.
구덩이에 빠져서.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요셉의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울리는 것 같고.
상인들의 손에 팔려가는. 요셉의 뒷모습이.
그들의 눈에 아른거리는 것 같다.

이것이. 그날에. 요셉을 잃어버린.
야곱과. 그 형제들의 모습/처지인 것이다.


근데. 오늘 따라. 이 말씀이. 마음에 더욱 사무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오늘은. 세월호 8주기. 4월 16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월호 사고로 인해.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님들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날 아침. 수학여행을 가겠다고. 집을 나서던. 아이들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아른아른거리고.
아이들의 유품과 사진을 바라보며.
지금이라도 당장. 아이를 만나고 싶은. 부모님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살아서 만날 수 없으니. 내가 죽어서.
차라리 내가 죽어서. 죽어서라도 아이를 만나고 싶고.
아이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 아이에게 상처줬던 것들.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과 추억을 갖지 못했던 것이.
마음의 미련과 아쉬움과 죄책감으로 남는 것 같다.

이것은 살아돌아온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나 혼자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죄책감으로 남게 되고.
이날이 가까워 올수록. 그날의 충격과 공포가. 마음에 되살아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을 마주할 때마다. 깊은 슬픔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의 어떤 말로도. 다 위로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슬픔 말이다.


그렇기에. 이 시간. 침묵과. 탄식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뿐이다.

주께서. 이 땅을 불쌍히 여겨 주시길.
주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길.
주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께서. 우리의 애타는 울음을 들으시고. 위로해 주시길.
주님 앞에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천개의 바람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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