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8:1-19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
오늘 우리 세대의 모습을. 상징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권리는 누리고 싶지만. 책임은 지고 싶지 않고.
좋은 것은 얻고 싶지만. 나쁜 것은 거부하는.

그래서. 내 새끼. 내 가족.
내 경계/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그 경계 밖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나몰라라 하는 마음.
그것이 오늘 우리 사회가 살아가는. 또 다른 모습/슬픈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유다와 그의 가족의 모습이 그런 것 같다.

실제로 유다에게 3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맏형 에르가 죽자.
유다는 동생 오난에게. 형수와 관계를 맺고. 그의 대를 이을 것을 이야기 하였다.
수혼 제도를 실시하도록 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난은 이것을 싫어하였다.
자기에게 득 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들을 낳아도. 그가 자기 아들이 될 것도 아니고.
형수가 아이를 낳게 되면.
그를 돌보고 책임져야 할 의무만 많아질 것이 뻔했기 때문에.
오난은 일부러. 형수가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오난은. 이 일로 하나님의 심판/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가 생각하는 일이 악하고. 그의 행동이 악했기 때문이다.

근데. 이 일로 인해서. 아버지 유다의 생각까지 변하게 되었다.
다말이. 에르와 결혼했다가. 그가 죽게 되고.
그의 동생 오난이. 다말과 결혼했다가. 그가 죽게 되니.
이쯤되니. 다말이 무서워지기 시작했고.
모든 문제의 원흉이 다말에게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다말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내 아들 셀라가 다 클 때까지.
너는 친정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서. 살아라'라고 말했지만.
이것은 핑계/변명일 뿐이었고.
사실은. 자기 새끼를 챙기고. 자기 새끼를 돌보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을 보는데.
"내꺼(It's mine) / 자기"라는 말이 계속 등장한다.

- 내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챙겨야 해.
- 내 것이 될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수고해야 해.
- 왜 내 자식에게 위험 부담을 감수하게 해야 할까.
내꺼. 내꺼. 그렇게 편을 가르고.
계속 경계짓고. 구분 짓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근데. 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 우리 공동체. 우리 사회의 모습도 이와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한 가족/한 몸이라 말하지만.
구체적인 부분/실제적인 부분으로 들어갔을 때는.
서로의 몸을 사리고. 도망치기 바쁘다.

누군가가. 그 사람을 도와주고. 누군가가 그 책임을 다해주길 원하지만.
내가 그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일이다.
그래서.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거야?"라고 물어보면.
다들 먼 산만 바라보며. 눈을 피하기 일쑤다.

왜? 댓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선. 댓가를 지불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하고. 누군가 위험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자기에게 득이 될 게 없으니.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고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근데. 슬픈 것은.
먹이감이 떨어지고 나면/먹이감이 손에 잡히고 나면.
그때부터는. 득달같이 달려든다는 것이다.
내가 져야 할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고 싶지만.
내가 누려야 할 몫과 권리에 대해서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어떻게든 공평하게/공정하게 나누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사람들이 무섭고. 이 일이 너무 위험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하나님의 통치/하나님의 평화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 힘이 있는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지고. 다스리는.
세상의 룰과 세상의 방식이 판을 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을 읽으며. 엄중한 경고와 두려움을 함께 느끼게 된다.

오늘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
오늘 우리 공동체의 모습은. 어떠할까?
오늘 주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습은 어떠할까?

바라기는.
주께서. 우리의 생각과 지경을 넓혀 주셔서.
'내 것' 밖에 모르고. '자기' 밖에 모르는 우리의 굳은 마음에.
주께서 은혜 주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길 소원한다.

그리하여.
주께서 '자기 아들'을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내 것'을 내어주고.
있는 모습 그대로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원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며. '더불어 함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주의 백성. 그런 주의 자녀들 되길 소원한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모두에게.
그런 은혜 부어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이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간다.

(feat. 우리가 간직해야 할(하연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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