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2:1-10
좋은 신앙은. 눈에 보일 때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잘 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앞에. 무서운 감독관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조금만 삐뚤어져 있어도. 불같이 화를 내고.
작은 것 하나라도/일거수일투족.
매의 눈으로 간섭하고. 매의 눈으로 살펴본다면.
우리는 그 사람 앞에서. 긴장하고 잘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잘못하면. 혼나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의 눈에 들기 위해.
많은 긴장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괜찮은 척.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척. 잘 사는 척.
그렇게. '척' 하면서. 마음을 숨기고 오늘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근데. 감독관이 사라지고 나면. 그 땐 어떻게 될까?
그땐. 그동안 눌려왔던. 모든 문제들이. 일순간에 터지기 시작한다.
마치. 작용-반작용의 법칙처럼.
강하게 눌려온 사람일수록. 더 강하게 반발하기 마련이다.
"내가 그땐 이거 못했는데. 이젠 이거 해 볼거야!"
"내가 그때 이거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알아?"
그런 측면에서. 교육이란. 힘으로 되는 게. 절대 아니다.
관습으로 되는 것도 절대 아니고.
문화나. 전통으로 되는 것도 절대 아니다.
"배를 만들고 싶다면. 바다를 동경하는 마음을 심어주라"고 하였던 것처럼.
신앙 교육 또한. 문화나 전통이나 관습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인격적인 관계/신뢰를 바탕으로 이 일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마이클 프로스트는. 오늘 우리의 삶을 가리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삶"이라 하였다.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이렇게 살지?"
"저 사람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
오늘 내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의문을 던지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곁으로 가까이 가게 하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숙제인 것이다.
근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 과제에서. 실패한 것 같다.
실제로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성경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온 백성은.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은> 주님을 잘 섬겼다"
"온 백성은. 주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일을.
<직접 본 장로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주님을 잘 섬겼다"
근데. 이들이 죽고 난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오늘 본문 10절을 보니.
"그들이 죽은 뒤에.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는데.
그들은. <주님을 알지도 못하고>
주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여호수아 때는 안 그랬는데.
장로들이 있을 때는. 안 그랬는데.
새로운 세대가 일어나더니. 이 놈들 때문에 망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근데. 엄밀히 말해서.
이게 어찌. 젊은 친구들의 문제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외면하게 된 데는.
그들의 잘못/책임만 있는 게 아니라.
오늘 우리의 책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자기 자신을 섬기며.
겉으로는. 하나님이 왕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왕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을 바라보며.
우리가 어찌 그를 존경하고 따를 수 있겠는가.
겉으로는. 우리가 세상의 문화와 가치를 따르지 말자고 말하지만.
실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보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것 같고.
오히려 비그리스도인들보다 더한 모습을 보여 줄 때.
그게 어찌 다음 세대에게. 존경과 신뢰를 얻을 수 있겠는가.
근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이 그랬다.
분명 주께서. 우리에게.
"너희가 애굽에 살 때에.
너희가 제국의 횡포와 압력에 극심한 고통을 받았으니.
너희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섬기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힘이 생긱고. 권력이 생기니까.
애굽의 모습을 따라가고. 제국의 모습을 따라가려 하였고…
그래서. 주님이.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의 단을 헐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적당히 타협하고. 그들을 자기의 노예로 부리기 시작했다.
근데 문제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그들이 뿌려놓은 불씨가.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중에는 그들을 삼키는 화마가 되었고.
그들이 뿌려놓은 씨앗이.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후 세대를 찌르는 <찌르는 가시>가 되었고.
결국에는. 그것이 이스라엘을 <옭아매는 올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을 보는데. 많은 부담과 두려움을 안게 된다.
나는. 후대에. 어떤 삶의 유산을 남겨줄까?
나는. 후대에. 어떤 신앙의 모습을 남겨줄까?
오늘 내 모습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선망/동경의 마음을 불러 일으킬까?
아니면. "내가 저렇게 사느니. 차라리 예수를 안 믿고 만다"며.
불신과 원망의 마음을 심겨 줄 것인가?
바라기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정말. 나이만 더해가고. 자기 생각/고집만 더해가는.
'노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정말. 겸손하고. 들을 줄 알며.
오늘 내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본이 되는.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그런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세대론으로. 사람들을 갈라치기 하는.
그런 우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누군가의 잘못에 대해서는.
그건 다 우리가 잘못 가르친 것이니.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가 말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과. 삶이 하나가 되어.
오늘 우리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또 사람들 보기에.
아름답고. 성숙한. 그런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 주께서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그런 은혜와 사랑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사모하며.
오늘 우리 몸을. 주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길 소원한다.
(feat.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우리의 기도))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사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07.08(금) 삿 3:12-31 (0) | 2022.07.08 |
---|---|
2022.07.07(목) 삿 3:1-11 (0) | 2022.07.07 |
2022.07.06(수) 삿 2:11-23 (0) | 2022.07.06 |
2022.07.02(토) 삿 1:22-36 (0) | 2022.07.02 |
2022.07.01(금) 삿 1:1-21 (0) | 2022.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