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22-36
사사기 1장 뒷 부분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실패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0% 완전한 실패는 아니다.
그들은. 여호수아가 땅을 분배해 준대로. 나름대로 어느 정도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100% 완전한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었다.
가나안 족속들은. 그 땅에 살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고.
그래서.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결심하다"라는 단어가. 계속 등장하는데.
재밌는 것은. 그 주어가. 이스라엘이 아니라. 가나안 족속이다.
1)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27절)
2)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34절)
3) 아모리 족속이. <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35절)
참 재미있지 않은가.
이스라엘이 <결심해서>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도 모자랄 판에.
이스라엘은. 설렁설렁. 대충 대충. 이 전쟁을 치르고 있고
가나안 족속이. <결심해서. 죽기 살기로> 이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그들의 결심이. 이 전쟁의 승패/양상을 바꿔 놓았다.
처음에는. 가나안 족속이 그들 가운데 거주하며.
어떻게든. 그들이 빌붙어 살려고. 애를 쓰는 형국이었다면(27절, 29절, 30절).
이제는. 전세가 역전 되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2절과 33절을 보면.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
"아셀 족속이.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32절)"
"납달리는.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32절)"
처음에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향해.
"야! 너희 거기만 있어야 해! 나오면 안 돼!"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가나안 족속이 이스라엘에게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가나안 족속이. 집 주인 노릇을 하며. 그들을 코너로 몰아붙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그렇게 죽기 살기로. 애쓰며 사냐?"며.
적당히. 나이스하게. 그냥 안주하며. 대충대충 산 것이다.
그러자. 아모리 족속이.
이번에는 이스라엘을 산지로 몰아넣고. 이렇게 말한다.
"야! 이제 너희 방 빼라!
너희 여기 살지 말고. 저기 산 위로 올라가서 살아라.
혹시라도 산에서 낼 생각을 하고 있거든. 그런 생각 하지도 말아라.
여기 선 있지? 여기 선 넘어오면 죽는다!"
결국. 이스라엘은. 한동안 산동네에서. 셋방살이를 하며 지냈다.
주께서 이스라엘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귀한 땅을 주셨지만.
그들은 저기 산 위 에서. 손만 쪽쪽 빨아먹고. 힘겹게 지냈다.
그게. 오늘을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형편/그들의 실상이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브라함 카이퍼가 한 말이 맞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은 곳은. 한 치도 없으며.
주님은. 우리에게.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고. 그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세우길 원하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미지근한 마음으로. 대충 대충 살아갈 것이 아니라.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살고 죽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복음에는. 중간지대가 없기 때문이다.
회색지대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박쥐처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그렇게 살아가선 안 되고.
오직 하나님 편에 서서. 마음을 다해. 결심해서. 이 싸움을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히 12:4)"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 12:12-23)"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길 원한다.
혹시. 오늘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면서도.
"어물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그냥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우리는. 저마다 나름의 이유와 핑계를 대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는데…" 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주님은. 우리에게.
"선한 데는 지혜롭고. 악한 데는. 미련하라"고 하였건만.
우리는. "선한 데는 미련하고. 악한 데만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바라기는. 오늘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죄의 유혹과 거짓의 탐닉 앞에. 스스로 물들고 오염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직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약속의 땅을 취하고. 약속의 땅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는.
그런 우리가 되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 시간. 히브리서 기자의 권면을 마음에 새기고 오늘을 살아간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8-39)"
오늘 하루. 이 생명의 말씀이.
오늘 우리의 삶에. 온전히 차고 넘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feat. 온 세상 주인 되신 하나님)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사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07.08(금) 삿 3:12-31 (0) | 2022.07.08 |
---|---|
2022.07.07(목) 삿 3:1-11 (0) | 2022.07.07 |
2022.07.06(수) 삿 2:11-23 (0) | 2022.07.06 |
2022.07.05(화) 삿 2:1-10 (0) | 2022.07.05 |
2022.07.01(금) 삿 1:1-21 (0) | 2022.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