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9:16-30

호세아 9장 9절을 보면. 이렇게 말한다.
"기브아 사건이 터진 그 때 못지않게. 이 백성이 더러운 일을 계속한다.
주님께서 이 백성의 죄악을 기억하시고. 그릇된 행실을 다 벌하실 것이다."

이것은. 호세아 선지자가.
그 당시 이스라엘의 죄악/불의를 심판할 때 한 말인데.
그 비교 대상이 뭐냐면? 바로 "기브아 사건"이 터질 때이다.
그리고. 그 기브아 사건이 뭐냐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사기 19장부터 21장까지의 내용이다.

이스라엘 가운데. 왕/하나님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악을 행하고. 불의한 일을 일삼으며.
자기 형제들끼리 칼부림/피 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이던 모습.
그게. '기브아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패역상인 것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에 기록된 내용도 그러하다.
레위인이 자기 아내와 함께. 성읍 광장에서 노숙을 하려 할 때.
어르신 한 분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여기서 자다가는 입 돌아간다며. 우리 집에 가서. 하룻밤 쉬고 가라는 것이다.

근데. 이 일 때문에. 그들은 큰 화를 당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불량배)이 몰려와서. 이 집에 있는 남자를 끌어내라는 것이다.

그러자. 이 어르신이. 다급환 목소리로/황급한 목소리로 그들을 말린다.
"제발 이러지 말라"고. "이 무슨 황당하고. 수치스러운 일이냐?"며.
한사코 그들을 말리려 한다.

하지만. 그들은 어르신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또 다른 제안을 한다.
"이 사람 말고. 여기 있는 내 딸과. 이 사람의 아내를 줄 터이니.
그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과 상관을 맺으라"는 것이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가.

1) 한 사람의 생명이. 놀잇감이라는 건가.
누군가를 짓밟고. 그를 괴롭히는 것이. 그들에게 즐거움이 되고 기쁨이 되는…
이것이 과연 옳고. 정당하단 말인가.

2) 그리고. 이 일에. 죄 없는 사람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도. 가장 약하고. 어린 사람에게. 이 일을 도맡기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남편은. 자기 아내를. 내어주고도 잠이 온단 말인가.
이게 남편이 할 도리인가.
어쩌면. 아내는. 남편의 어리석고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이 남편을 져버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던 것은 아닌가?

3) 아내 입장에서는. 불량배들에게 끌려가면서.
"내가 이런 인간을 뭐가 좋다고 사랑했나?" 싶고.
"내가 이런 인간이 뭐가 좋다고. 내가 이 인간을 다시 믿고 길을 나섰나?"
이런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아무도 그의 처지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 여자는 밤이 새도록. 외간 남자들에게. 심한 학대와 성폭행을 당하였으며.
결국. 이 여자는. 두 팔로 문지방을 잡고. 문간에 쓰러져 있었다.
누군가. 제발 나를 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집에 돌아왔지만.
아무도 그를 돌보지 않고. 아무도 그를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근데 더 화가 나는 것은.
이 사람이/이 레위인이. 아무런 죄책감과 자기 반성도 없이.
이 일을 그냥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기브아 시대는. 소돔과 고모라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뒤쳐지지 않는 것 같다.
시쳇말로. "믿는 사람이 더 하다"는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지만.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 없이 살아가며.
그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 마음 대로. 자기 멋 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한 사람의 인권이 이렇게 유린되고. 짓밟히는 것이 너무 슬프고.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냥 잠이나 쳐자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너무 야속하다.
이 사람을 누가. 위로해 주고. 이 사람을 누가 돌봐줄까…?


그런 측면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네가 가서. 그들의 아픔을 닦아 주고.
네가 가서. 그들의 눈물을 씻어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는 것(약 1:27)"이기에.
말로만. "평안히 가라. 잘 지내라. 밥 잘 챙겨먹고. 건강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정말 그들의 자리에서. 그들의 아픔에 함께 공감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돕고. 섬기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 두 사람의 모습이 계속 오버랩되는 것 같다.
한 사람은. 집 안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잠이나 쳐 자고 있는. 남편의 모습과.
한 사람은. 집 밖에서. 온갖 수모와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생을 마감하는 아내의 모습.

혹시 오늘 우리는. 이 남편의 모습처럼.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모습으로. 집 안에서. 그저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아침. 이 찬양이 계속 생각난다.

"사망의 그늘에 앉아. 죽어가는 나의 백성들.
절망과 굶주림에 갇힌 저들은. 내 마음의 오랜 슬픔.
고통의 멍에에 매여. 울고 있는 나의 자녀들.
나는 이제 일어나 저들의 멍에를 꺾고. 눈물 씻기기 원하는데.
누가 내게 부르짖어. 저들을 구원케 할까.
누가 나를 위해가서. 나의 사랑을 전할까.
나는 이제 보기 원하네. 나의 자녀들 살아나는 그날.
기쁜 찬송 소리 하늘에. 웃음 소리 온땅 가득한 그날"

바라기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이와 같기를 기도한다.

세상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나만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그 부르심과 소명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고.
그것이 오늘 우리의 삶이 되면 좋겠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그런 은혜와 소망 더해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사망의 그늘에 앉아(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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