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9:1-15

존 스토트 목사님이 쓰신. "제자도"라는 책의 원제를 보면.
"The Radical Disciple / 급진적 제자"라고 되어 있다.
왜 스토트 목사님은. 제자라는 말 앞에. "급진적"이라는 말을 굳이 덧붙이고 있을까?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급진적"이기 때문이다.

1) 실제로. 출애굽기 12장에 기록된. 유월절에 관한 규례를 보면.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먹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언제든지. 애굽을 떠나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날 날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속히 애굽을 떠날 수도록.
주께서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하신 것이다.

2) 롯이 소돔성을 떠날 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천사가. 롯에게 전한 말씀이 무엇인가?
"너는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롯의 사위들은. 이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고.
롯과 그의 가족들 또한. 밍기적거리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천사가. <급히/강제로> 롯의 손을 잡아 끌어내려 하였다.

하지만. 롯의 아내가 했던 행동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천사가 롯에게.
뒤도 돌아보지 말고. 급히 떠나라고 하였지만.
끝끝내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으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지금 당장>이라는 하나님 말씀을.
<나중에/이따가>로 치부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3) 그래서. 누가복음 9장 57-62절을 보면.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
"나를 따르라"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여러 가지 이유를 대고. 변명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 주님은. "NOPE!"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이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나중에/이따가>가 아니라.
<지금 당장 Right Now>의 성격임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모습인 것이다.


근데.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야기를 보면.
모든 사람이. <이따가 이따가 병>에 걸린 것 같다.

1) 실제로. 레위 사람이.
자기 아내/첩과 다투고 난 다음에 하는 행동이 무엇인가?
<4개월>이 지난 다음에. 그제서야 아내를 데리러. 처가에 가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4개월 동안. 밍기적대면서. 기다릴 수 있나?
힘 겨루기를 하는 것인가? 사랑 싸움을 하는 것인가?

우리는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성경은 분명. <여자가. 무슨 일로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가?
아내가 아닌 남편에게 있다.
남편이 무슨 잘못을 벌였고. 그래서 그 일로 마음이 토라져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편이.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무슨 힘 겨루기를 한단 말인가?

그런 측면에서. 남편/레위 사람의 모습은.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인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계속 뒤로 미루고 밍기적거리는 것처럼 느껴지고.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끔.
아내의 화를 계속 돋구고. 전혀 아내의 필요/포인트를 못 맞추고 있는 것 같다.

2) 밍기적거리며. 일을 지연시키는 것은. 이 여자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사위가 와서. 아내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면.
얼른 두 사람을 돌려보내고. 둘이 알콩달콩 살게 할 것이지.
왜 계속. 두 사람을 붙잡아 놓는단 말인가.

실제로 오늘 성경에 기록된. 이 아버지의 모습이 그러하다.
나흘째 되는 날. 레위 사람이. 아침 일찍 일어나 집에 돌아가려고 하니.
이 아버지가 이렇게 말한다.

"아침은 먹고 가야지.
빵을 좀 더 먹고서. 속이 든든해지면. 그때 떠나게(5절)"
근데.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그러자 이 아버지가. 이렇게 말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하룻밤은 여기서 기분좋게 쉬게"

그리고 다음날 아침. 레위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이 아버지는 또 이렇게 말한다.
"여보게. 아침은 먹고 가야지."
그러면서. 한 가지 이유를 덧 붙인다.
"한낮에. 땡볕에 길을 나선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니. 뭐 먹고. 좀 이따가 천천히 길을 떠나게"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갈 무렵. 이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룻밤만 더 묵고 가게.
내일은 정말 막지 않을 테니. 내일 아침에 떠나면 될 것 아닌가?"

3) 하지만. 레위 사람은. 더 이상 하룻밤을 묵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날 늦은 시간에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체하고. 밍기적거린 것에 대한 댓가는 컸다.

레위 사람과 그의 아내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길에 유숙하게 되었고.
아무도 그들을 맞이하고. 들여다 주는 사람이 없었다(15절).
그리고 앞으로 살펴 보겠지만.
이 일 때문에. 레위와 그의 아내는. 험한 꼴을 당하게 되었고.
이것은. 이스라엘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빌미가 되었다.

진작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일이.
미루고 지연하고. 하루하루 밍기적거리다. 결국 큰 화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은.
<밍기적거리고. 지체하며. 주저하는> 우리에게.
<네가 지금 당장 일어나. 주의 일을 하라>고 말씀하신다.

사랑해야 할 사람들. 섬겨야 할 사람들.
오늘 내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
이것을 하루 이틀. 차일피일. 계속 미루는 것은.
<회피>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기쁨으로 반응함으로서.
<해피>한 삶을 살아가길. 주께서 바라고. 또 소원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나중에. 이따가>라는 말로.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밍기적거리는 공동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 합리적인 이유와 변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뭉개지도 않으면 좋겠고.
오직 주의 부르심 앞에. 기쁨으로. 겸손함으로 반응하는 공동체 되면 좋겠다.

그래서. 뒤늦은/때늦은 후회와 눈물로 우리 인생이 물들지 않으면 좋겠고.
오직 주님 앞에. 감사와 기쁨으로 반응하는. 그런 우리가 되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 아침. 이 찬양을 부르며 주님 앞에 나아간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할 때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주를 부르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할 때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주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그 생각 버리고.
여호와께로 나아오라.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여호와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오늘 하루. 그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 가운데 충만히 흘러 넘치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 할 때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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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he Sabb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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