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1:18-24
'소문'
소문은 참 무섭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삽시간에/순식간에 전파된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습이 그렇다.
그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가득한 교회였는데.
그 믿음의 소식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와. 아시아 전역에 쭉 퍼졌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의 믿음에 대해. 따로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모습 자체가. 살아있는 표징이요. 열매였기 때문이다(살전 1장).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모습 또한 그렇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다음에.
그의 삶이 달라지고. 변화되기 시작했는데.
그 믿음의 소문이. 온 천하각지에 퍼지기 시작했다.
"전에. 우리(그리스도인)를 박해하던 그 사람이.
지금은. 그가 전에 없애버리려고 하던. 그 말을 전한다(23절)"고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그분의 은혜 덕분이라고"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의 모습을 함께 생각해 본다.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소문이 퍼지고 있을까?
오늘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어떤 이야기를 생산해 내고 있을까?"
나는. 우리 안에. 믿음의 이야기와 성도의 교제가 많았으면 좋겠는데.
때로는 우리 안에. 비방과 비난과. 멸시의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나는 우리 안에. 믿음의 역사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으면 좋겠는데.
때로는 우리 안에. 신변잡기와 주변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슬프다.
우리 안에. 성도의 교제와. 믿음의 역사와.
하나님 나라 백성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전파되야 하는데.
왜 우리 안에는. 이런 이야기가 많이 없는 걸까.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왜 우리는. 날 선 비판과 서로를 향한. 원망과 비난의 이야기만 일삼는 걸까?
나는. 우리 공동체가.
마케도니아 교회처럼. 또 사도 바울처럼.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가득한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삶이. 살아있는 표징이요. 살아있는 증거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의 삶이.
"예수 따름"을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삶과 사역을 통해.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주님께 돌아오는.
그런 일들이 있고. 그런 은혜가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 그런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우리가 만날 때마다. 또 우리가 서로의 소식을 전할 때마다.
하나님의 이야기로 흥왕하고. 하나님의 이야기로 번창하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주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영광을 돌리세. 우리 하나님께. 존귀와 위엄과 능력과 아름다움.
만방의 모든 신은 헛된 우상이니. 오직 하늘의 하나님. 그 영광 찬양해.
주님의 영광. 모든 나라 위에. 주님의 영광. 온 세계 위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영광 찬양해.
우리 주님 나라 영원하리라. 우리 주님 뜻은 이뤄지리라"
오늘 하루.
예수의 제자들이. 사도 바울을 두고.
줄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찬양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이. 주님께 기쁨이 되고. 주님께 영광이 되는.
그런 하루. 그런 우리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영광을 돌리세)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갈라디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03.08(금) 갈 2:6-10 (0) | 2024.03.08 |
---|---|
2024.03.07(목) 갈 2:1-5 (0) | 2024.03.07 |
2024.03.05(화) 갈 1:11-17 (0) | 2024.03.05 |
2024.03.02(토) 갈 1:6-10 (0) | 2024.03.02 |
2024.03.01(금) 갈 1:1-5 (0) | 2024.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