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3:8-13
우리는 흔히.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제가 뭐라고. 이런 은혜를 입나요…
저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인데…
저 처럼 작고 연약한 사람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이것은 상대방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겸손을 표하는 말인데.
정말. 자기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몇 있을까?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그렇게 말하더라도.
사실 속으로는. 딴 생각을 품고 있을 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제가 뭐라고. 저는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인데…"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그럴만한 대우와 대접을 받을 만해"라고 생각하면서.
괜히 우쭐거리고. 괜히 으시대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 것이다.
근데.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이 자신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 가운데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셔서.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함을. 이방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시고(엡 3:8)"
여길 보면. 사도 바울이 자기를 가리켜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은혜를 주셨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냥 관용적인 말일까.
아니면. 사도 바울이. 자기 자신을 정말 그렇게 생각한 말일까?
만약 이것이. 관용적인 말/예의상 표현한 말이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또 교회를. 성도를 기만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온갖 겸손과 아양을 다 떨면서도.
속으로는. 으시대고.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밝히 드러내셨을 것이며.
그런 사도를 하나님께서 책망하고. 혼을 내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각 사람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이시니까.
그러면. 사도가. 이 말을. 진심으로 했다고 생각했을 수밖에 없는데.
사도의 이런 자기 인식과 발견은. 과연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사도가.
자기의 허물과 연약함을. 깊이 발견했을 때가 아닐까 싶다.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 바울이.
삼일 동안 금식하고. 하나님 앞에 깊이 기도할 때.
그때 자기의 허물과 연약함을 깊이 발견하게 됐을 것이며.
아무 것도 모르고. 자기 의와 자기 생각으로 충만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구역질이 나고. 역겨웠을지 모르겠다.
마치. 이사야 선지자의 모습과 같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현현을 만나고 난 다음에.
"화로소이다. 내가 죽게 되었도다(사 6:5)"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사도 바울도. 살아계신 하나님/주의 거룩하심을 만나고 난 다음부터.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은 자각과 깨달음을 가졌을지 모른다.
전에는 으시대고. 잘난 척하고. 교만한 모습으로 살던 이가.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 겸손하고. 자기를 낮추며.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모습으로 말이다.
그래서. 사도는.
"모든 성도 가운데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엡 3:8)"라고 자신을 기록하며.
다른 곳에서는. "내가 죄인 중에 괴수(딤전 1:15)"라고 자신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찬송가 143장을 부르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이렇게 드렸었다.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리도다"
이것은. 그냥 허투로/말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과. 자기의 마음을 담은. 진실한 고백이었다.
세리가. 하나님 앞에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라고 고백하였던 것처럼.
오늘 사도 바울도. 또 우리 믿음의 선진들도.
하나님 앞에 이와 같은 반응. 겸손의 열매를 맺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돌아보게 된다.
오늘 우리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오늘 우리는. 자기 자신을 향해서. 어떤 생각/마음을 품고 있는가?
우리는 물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존귀한 자이지만.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인식과 자각을 한 다음.
그 다음에 주어지는 것이다.
나의 약함과. 나의 악함과.
나의 덧없음과. 나의 교만함을 깨달을 때.
그때 비로소. 주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
그때 알게 되는 것이며.
그때 비로소 우리는.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자기를 높이지 않게 된다.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선물이며.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고백하게 되며.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겸손히 엎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이 말씀은.
자기 과잉 시대. 자기 자신으로 똘똥 뭉쳐 있고.
자기 자신으로 충만하고 부요한 이 시대 속에서.
우리가 정말 믿고. 바라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하는 것 같다.
나는. 또 우리 공동체는.
<지극히 작은 자 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셨다>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오늘도 우쭐되고. 으시대며.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자랑하며 살아가는가.
오늘 우리는. <내가 죄인 중의 괴수>라는 말을.
그냥 입버릇처럼. 아무런 생각도 마음도 없이. 그냥 허투로 내뱉고 있는가.
아니면. 세리의 기도처럼. 정말 하나님 앞에 탄식하며. 자복하며.
겸손히 엎드려. 진심으로 이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바라기는 오늘 하루.
이 찬양의 고백과 말씀의 고백이.
우리의 입술에서. 우리의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담은. 진실한 고백 되었으면 좋겠고.
우리의 생각과 진심을 담은. 진실한 찬양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이 찬양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길 원한다.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리도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은혜 베풀어 주시고. 당신의 자비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웬말인가 날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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