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47:7-11

오늘 아침. 잠에서 일찍 깼다.
창문을 열어 놓고 잤더니. 차가운 새벽 공기에 몸이 춥기도 하였고.
어젯밤 청빙위원회에서 보내온 면접 질문을 보면서.
많은 생각과 고민도 들었기 때문이다.

이 교회가 진보적이고. 사회 운동을 많이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교회 담임목사 청빙에 응한 것은.
교회가 "섬김과 나눔. 희생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상봉 교수가 얘기하는 것처럼.
"오늘날 시민 운동/사회 운동이 힘을 잃은 것은.
영성 없는 진보. 이른바 자기 희생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자기 중심성을 벗어난.
<고난과 섬김. 나눔>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교회의 방향성이 마음에 들었다.

금요기도회에서 울려 퍼지는. 뜨거운 찬양 소리와 기도 소리도 마음에 들었고.
이런 교회라면. 담임목사로 한번 사역해 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구름에. 내 삶을 맡겨보고 싶었다.

예기치 못한 바람이 불어왔고.
예상치 못한 곳으로. 주님이 날 인도하시는 것 같았고.
그 길의 행선지와 종착지를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 바람에.
내 몸을 맡겨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어제 도착한 질문지를 보면서는.
내 마음이 조금 닫히고.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다르고.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다를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우려했던 것과 많이 닮아있을 수도 있고.
그래서. 이런 상황이라면. 담임목사로 추천된다 하더라도.
나 스스로 고사하고. 물러서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하심이 없다면.
내가 그 사실을. 분명하게/명확하게 인지하고. 깨달을 수 없다면.
아무리 환경이 좋고. 조건이 좋다 하더라도.
그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새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주께서 나를 어느 곳으로 인도하시고.
주께서. 우리를 어떤 곳으로 부르시며.
이 과정 가운데.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과 부르심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오늘 아침. 일찍 잠에서 일어나게 됐는데.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님은. 힘센 준마를 좋아하지 않으시고.
빨리 달리는 힘센 다리를 가진 사람도 반기지 아니하신다.
주님은. 오직.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과.
당신의 한결 같은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을 좋아하신다(새번역, 시 147:10-11)"

참 인상적인 말이다.
주님은. <힘센 준마>를 좋아하지 않으시고.
<빨리 달리는. 힘센 다리를 가진 사람>도 좋아하지 않으시고.
오직.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과.
<당신의 한결 같은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을 좋아하신다니.
이 말씀이 참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 같다.

실제로. 오늘날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방식이 그렇지 아니한가.
힘과 능력과. 배경과 스펙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힘센 준마>와. <힘센 다리를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을 존경하지 않는가.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부러워하지도 않으시고.
그들을 좋아하지도 않으시고.
그들을 택하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부르시지도 않으신다.
그들은 자기 중심성과 자기 오만함의 끝을 달리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자기의 힘과. 자기의 다리를 믿을 뿐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자들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지나면. 점차 잊혀지고 노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것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오직. 주님을 기다리는 것과.
오직. 주님을 경외하는 것과.
오직 주님 안에서. 당신의 뜻을 발견하고. 주님의 뜻을 찾는 자만이.
주님과 동행할 수 있고. 주님의 사랑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그렇기에. 주님 앞에 나아가며. 우리에게 필요한 한 가지는.
나의 힘과 능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힘과. 당신의 능력을 구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힘센 팔과 다리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과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삶의. 모든 힘의 원천이. 우리 주님께 있음을 기억하고.
주님 앞에 엎드리고. 주님과 더불어. 그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럴 때.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뜻과 계획을 온전히 드러내시고.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을 누리며.
주님 안에서. 감사함으로/평온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오늘 나의 몸과 마음이.
주님께로 향하고. 주님만 바라보는 나와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나의 지식과. 나의 의와. 나의 교만함으로 가득차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직 주님이 주시는. 의와 거룩과 화평으로 가득하면 좋겠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뜻하심과 계획을 기다리면서.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을 사모하는.
그런 나와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삶의 모든 것이. 주께서부터 와서. 주께 돌아감을.
기억하고. 그것을 살아내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내일의 인터뷰 가운데도. 주님의 은혜가 있으면 좋겠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분별하고 분간하는. 그런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고.
그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과 출세의 길이 아니라.
오직 주의 뜻이 드러나고. 주의 뜻이 나타나는.
그런 인터뷰 시간 되고. 그런 나와 우리 가정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주 내 소망은. 주 더 알기 원합니다.
이전보다 더 가까이. 가기 원합니다.
오. 주의 품에. 기대기만 원합니다.
주의 사랑으로.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주 내 소망은. 주 더 알기 원합니다.
이전보다 더 가까이. 가기 원합니다.
오 주의 품에. 기대기만 원합니다.
주의 사랑으로.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주 사랑으로 날개 치며. 오르게 하소서.
은밀한 곳에. 영원히 영원히. 거하게 하소서.
오 주의 사랑. 부끄러워 않겠어요.
주의 사랑으로.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을 기다리며.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주님의 변치않는 사랑을.
바라보고. 묵상하는.
그런 나와 우리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 내 소망은 주 더 알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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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he Sabb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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