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6:35-44
예수께서 빈들에서. 잔치를 벌이신다.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성인 남자 5천 명을 먹이셨고.
그리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니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일로 인해.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
배고프고. 굶주리고. 먹을 것이 없어 고생할 때에.
우리 가운데. 먹을 것을 해결해 주시고.
우리 가운데 풍족히 먹을 것을 채워주시니.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서. 해질녁 들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처럼.
그들은 저마다. 여유와 환대로 가득 차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얼굴에는.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었다.
그것이. 오병이어가 벌어지던. 빈 들.
그곳에 있던 풍경과 공동체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들도.
어쩌면. 그런 날들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오늘 나만 하더라도.
그날의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부러운 것 같다.
마르지 않는 식탁과. 마르지 않는 웃음꽃을 보면서.
얼마나 부럽고. 얼마나 시샘이 나는지.
오늘 우리 곁에도. 마르지 않는 샘물과.
마르지 않는 돈방석(?)이 있으면 좋겠는데.
오늘 우리 삶은. 마냥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오늘 우리는. 유한한 시간과 물질의 영역 안에서 살아가고.
그렇게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고. 오늘을 걱정하게 되는 것 같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을 살아가면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며.
그렇기에 오늘을 살아가면서.
아등바등/아득바득. 오늘을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니. 오병이어의 기적을 바라보면서.
어찌. 우리 마음이 부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모습이고. 당연한 반응일 수 있겠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그런 모습으로. 당신을 바라보질 않길 원하신다.
주님은 우리 인생에. 돈줄/요술 방망이도 아니시고.
그렇게 주님과 우리의 관계가.
give and take로. 거래 관계로 바뀌길 원치 않으신다.
만약.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그렇게 된다면.
그건 이방신들과 이방인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며.
만약 우리 인생에. 괴로운 날이 찾아오고. 슬픈 날들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주님을 배신하고. 그를 멀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신을 왕으로 삼으려 할 때에.
그들을 피하고. 멀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나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욕망이. 나를 삼키고. 나를 잡으려 하였기 때문이다.
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나를 만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아왔다면.
이제는 그들의 욕심/욕망이.
나를 자기의 소유로 삼고자 하며. 나를 통제하고. 나를 다스리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무리를 헤쳐. 그들을 서둘러 집으로 보내게 되시는데.
오늘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주님을 사랑할 때에. 주님이 보고플 때는.
주님 안에서.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였는데.
우리 인생의 목적이 바뀌고. 우리 인생의 소망이 달라질 때.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으로 바뀌고.
우리가 얼마나 자기 중심적으로 돌변하게 되는지.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당신을 <목적/수단>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관계>로 대하길 원하시는 것 같다.
주께서 우리에게. 아무 것도 원하지 않으시고.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관계로 사랑하시는 것처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안에서. 그와 같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주님을 그렇게 사랑하고. 주님을 그렇게 따르길 원한다.
오늘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오늘 내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고.
오늘 우리 인생이 불안하고 두렵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생을 붙드시고. 우리 인생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길 소망하며.
오늘 우리 인생이. 주님 안에서.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고. 주님 한분만으로 기뻐하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주님 보고 싶고. 더 알고 싶고.
함께 하고 싶고. 또 보고 싶고. 만지고 싶어.
주님 보고 싶고. 더 알고 싶고.
함께 하고 싶고. 또 보고 싶고. 만지고 싶어.
주님 보고 싶고. 더 알고 싶고.
함께 하고 싶고. 또 보고 싶고. 만지고 싶어.
주님 보고 싶고. 더 알고 싶고.
함께 하고 싶고. 또 보고 싶고. 만지고 싶어.
호산나. 호산나. 어서 오소서. 우리 왕.
호산나. 호산나. 어서 오소서"
오늘 하루. 나의 간절한 소망이.
우리 주님의 손에서 나오는. 그분의 신비한 능력과. 그분의 신적 경험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우리 주님의 얼굴을 주목하며.
주와 동행하며. 그분 안에 머무는 것이 되길 소망하며.
오늘 우리 가운데.
주께서 그런 은혜와 그런 평강을 허락하여 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님 보고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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