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6:14-16

예수의 이름이. 온 땅에 알려지자.
사람들이 그를 두고.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이 사람은 대체 누군가?"하면서 말이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답변을 내놓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 하고.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 하였다.

근데 재밌는 것은. 헤롯 왕의 반응이다.
특별히 오늘 본문 16절을 보면.
"헤롯이 이런 소문을 듣고 말하기를.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살아났구나>"라고 하는데.
왜 헤롯은. 예수님을 가리켜. 자신이 목을 벤 그 요한이라고 생각했을까?
그것은. 헤롯 마음 가운데 있는. 죄책감과 눌린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헤롯은. 세례 요한을 가까이 두고 살던 사람이다.
내일 살펴보겠지만…
헤롯은 요한이 의롭고 성스러운 사람인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를 보호해주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세례 요한이 하는 말이라면. 그게 아무리 괴롭고 힘든 일이여도.
고맙게 여기고. 달게 들으려 했었고.
그래서 세례 요한을 가까이 두고. 가까이 행하려 했었다.

근데. 헤롯의 아내였던. 헤로디아가…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의 머리를 요구하는 일을 겪으면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요한의 목을 잘라.
그 목을 헤로디아에게 전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 일에 대한 죄책감과 눌린 마음 때문에.
그때부터 잠못 이루고. 괴로운 날들을 보내게 됐는데.
예수께서 행하시는 삶과 사역을 보면서.
"이것은 세례 요한이 다시 날아난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함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살아났구나"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온. 엘리야가 왔구나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그가 구약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자기 마음 가운데 있는. 죄책감과 불안함 때문에.
그를 요한으로 생각하고. 신경쇠약과 두려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죄 짓고는 오래 못 산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생각나는 것 같다.

사람들이 모르고. 세상이 모른다 하더라도.
양심이 나를 고발하고. 양심이 나를 증언하고 있으며.
하나님 앞에서. 해결되지 않은 우리의 죄책과 과실들은.
우리로 하여금. 밤마다 신음하고. 밤마다 고통스럽게 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죄를 아뢰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비참하고 미련한 자인지를. 주님 앞에 구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주의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이고 난 다음에.
하루하루 죽음의 공포 가운데 살아가며.
살아있지만. 죽은 자처럼 느껴졌던 것처럼.
오늘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주께서 우리의 죄와. 우리의 허물을 벗겨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살아있지만. 죽은 자와 다름이 없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숨을 쉴 수 있고.
하나님 앞에 나음을 얻고. 자유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이 있고. 깨어진 관계가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볼 수 없고.
우리가 하나님을 투명하게 볼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마음 가운데. 참된 자유가 있고. 평화가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가. 주님을 바르게 볼 수 있고.
주님 안에서 안전하고. 주님 안에서 내 영혼이 고요히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내 안에 있는 모든 불안함과 두려움을. 주께 내려놓고.
주님 안에 안정감을 누리며. 주님 안에 평화를 누리는.
그런 나와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딤후 1:7)"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안에서 근심하고.
하나님 안에서 자유와 평화를 얻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가 주님 안에서 온전히 나음을 입고.
주님 안에서 온전히 평화를 누리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염려 다 맡기라. 주가 돌보시니.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염려 다 맡기라. 주가 돌보시니.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오늘 하루.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불안함과 두려움과. 염려와 수치들을 모두 주님께 내어맡기고.
주님 안에서 평화를 얻고. 주님 안에서 자유를 얻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그러한 사랑과 은혜 베풀어 주시길. 주님 앞에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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