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3:34-54

어제 우리는.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애 3:29)”라는 말씀을 살펴보았다.

이것은. 주의 은혜를 바라며.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존재가. 먼지/땅의 티끌과 같기에.
거기 엎드려. “우리의 존재가 먼지와 같은 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며.
재를 뒤집어 쓰고. 하나님 앞에 통곡하고 회개하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면.
주의 은혜를 입고. 자비를 입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며.
우리 주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인자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 주님의 선하심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자 한 것이다.

그렇기에 예레미야는.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께 돌아가자(40절)”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의 행위를 살피고(40절).
우리의 손과 마음을. 하나님께 들고(41절).
그렇게 우리의 잘못과 행위를 살피며.
하나님 앞에 자비를 입고. 주의 긍휼을 구하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돌이켜야 하는 것일까?”
개인의 윤리적인 죄와 도덕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가 주의 말씀(율법)을 어기고. 십계명을 지키지 못한 것을 말하는 것일까?

맞다.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한 것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지 못한 것과.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고. 내 이웃의 물건을 탐하고.
미움 다툼 시기 질투의 죄를 범한 것을. 우리가 어찌 간과할 수 있단 말인가.

근데. 오늘 본문에선. 예레미야가 그것을 말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 땅의 부조리와. 공의와 정의가 끊긴 것을 말하고 있다.

실제로 오늘 본문 34절부터 36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돌이키고 회개해야 할 것을. 예레미야가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세상에 있는 모든 갇힌 자들을. 발로 밟는 것과.
지존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사람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것은. 다 주께서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애 3:34-36)”

이것은. 이스라엘의 죄가.
윤리적인 기준과 도덕적인 죄를 뛰어넘어서.
이스라엘이 구조적으로. 전방위적으로 타락한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재판장과 지도자들은.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뇌물을 받지 말며.
의인의 말을 굽게 하지 말고.
오직 공의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재판할 것(신 16:18-20)”을 말하였는데.
이스라엘은 그것을 무시하고. 방관하였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백성을 귀히 여기지 않았다.

사람들의 마음을 억울하게 하고. 백성의 눈물을 두 발로 밟았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법인데.
그들은 자기 형편을 살피는데. 그 무엇보다 재빨랐으며.
백성의 눈물이 아닌. 그들의 욕망을 채웠다.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도 마찬가지다.
주님은. “속이는 저울”을 싫어하시는데(잠 11:1).
시장에선. 서로 속고 속이는 일이 줄을 이었으며.
부정한 저울을 쓰거나. 거짓 추를 두는 일이. 그들의 일상이 되었다(미 6:11).

속임수를 쓰고. 거짓이 만연한 세상.
이것이 이스라엘의 실상인데.
어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고 주를 찬양한다는 이유로.
우리의 죄를 덮고. 우리의 허물을 감출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우리의 옷을 찢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찢을 것을 명하고 계신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진실로 돌이켰다면.
우리가 입술의 회개에 그칠 것이 아니라.
삶의 회개/열매를 맺을 것을 말씀하시며.
이 땅 가운데. 공의와 정의. 평화가 흐를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마치. 삭개오가. 우리 주님을 만나고 회개하고 난 다음.
자신의 삶을. 완전히 돌이키고. 하나님 앞에 새 삶을 살게 된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을 보며.
우리 사회. 우리나라의 모습을 함께 생각해 본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오늘날 한국 교회 가운데. 수많은 정치 지도자와 경제인들이 있는데.
오늘 우리는. 어떤 원리로 이 세상을 섬기고 있을까?
약육강식. 돈의 논리로 이 땅을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정말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말씀과 진리로.
이 땅을 섬기며. 하나님의 자비/공의가 흐르도록 하고 있을까?

오늘 이 땅 가운데.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있는데.
오늘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소금물이 짠 맛을 내려면. 3%의 소금이면 충분하다고 말하는데.
오늘 우리는 20%의 교회/성도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오늘 우리의 입지와 역할은 어떠할까?

우리는 정말.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그 역할과 부르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우리의 세를 모으고. 우리의 세를 넓히는데만 관심을 갖고 있을까?

하나님 나라는 그 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정말 주를 경외하고. 주를 의지하는 자에게 달려 있는데.
오늘 우리는. 땅을 살아가며.
어쩔 없다는 단념과 체념으로 땅을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정말 주님 주신 말씀을 따라서.
가난한 자들을 섬기며. 약한 자를 보호하며.
주의 자비. 주의 평화가 임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바라기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입술로 돌이키며. 마음으로만 돌이키는.
그런 헛된 우상. 그런 헛된 열매를 맺지 않았으면 좋겠고.
정말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의 불의와. 세상의 부정 앞에.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살아가는.
그런 어리석음의 죄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직 공의를 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려보내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우리나라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나의 백성이 겸비하여. 내게 기도하면.
나의 얼굴을 구하여서. 악한 떠나면.
하늘에서 듣고 죄를 사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아버지여. 고쳐주소서. 나라 주의 되게 하소서.
나라 주의 되게 하소서. 하나님 간절히 기도하오니.
상한 새롭게 하소서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진실한 회개와. 진정한 삶의 열매를 맺게 하시며.
오늘 가운데. 공의와 정의 흐르며.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고. 열매가 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되길 하나님 앞에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나의 백성이 겸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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