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3:1-18
인생을 살다보면.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하나님을 찾아도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것 같고.
주의 이름을 불러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 같다.
신학자들은. 그런 우리의 날을 가리켜.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고 불렀으며.
우리 주님도. 십자가 위에서. 그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다.
주의 이름을 불러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 같고.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형벌을 받게 된 날.
그날이. 어둠의 날이었고.
그날이. 죽음의 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둠의 날을 맞이할 때.
침묵하며. 한탄하며. 소리 쳐 울 뿐이다.
주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말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레미야의 고백이 그러하다.
실제로 오늘 본문 1절부터 18절까지를 보면.
성경 기자가. 하나님 앞에서.
계속 슬퍼하며. 한탄하며. 울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처참하고. 비참하게 느껴진다.
"나는 하나님의 진노의 몽둥이에 얻어맞고..(1절)
주께서 나를 빛도 없는 캄캄한 곳에 헤매게 하시고(2절).
온종일 손을 들어. 나를 치고. 또 치시며(3절).
주께서 내 살갗을 약하게 하시며. 뼈를 꺾으시고(4절).
가난과 고생으로 나를 에우시고(5절).
죽은 지 오래 된 사람처럼 흑암 속에 살게 하시며(6절).
내가 도망갈 수 없도록. 담을 쌓아두시고. 무거운 족쇄를 채우시며(7절).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질러도. 기도를 듣지 않으시며(8절).
주께서 화살통에서 뽑은 화살로 내 심장을 뚫으시며(12절).
땅의 조약돌로. 내 이를 부수시고.
나의 얼굴을 땅에 비비시고. 고통 당하게 하시니(16절)"
너무 섬뜩하고. 적나라한 묘사이지 않은가.
그만큼 이스라엘은. 적나라한 하나님의 모습을 마주하고 있었고.
그 하나님을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하고.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기록된.
예레미야의 심경. 또 이스라엘의 고백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예레미야의 고백은.
욥의 고백과 동일한 것 같다.
실제로. 욥기 23장 8절을 보면.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가 없구나(욥 23:8-9)"라고 얘기하는데.
오늘 이스라엘의 모습이 그렇지 아니한가.
하나님을 찾고. 또 찾아도.
우리 주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우리 주님을 부르고. 또 불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고. 응답이 없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면서.
이스라엘이 얼마나 고통하고. 또 슬퍼하였을까.
근데. 그 다음에 나오는 욥기 말씀이.
오늘 우리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 같다.
실제로 욥기 23장 10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고 고백하는데.
이것은 오늘 우리의 삶이. 어둠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고백하는 말이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아무리 어렵고 비참하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이 길은 우리 주님이. 준비해 놓으신 생명의 길이며.
오늘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빚어지고. 정금같이 될 것을.
욥은 알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욥은 이렇게 고백한다.
지금은 우리 주님이 보이지 않고.
지금은 우리 주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 같고.
지금은 우리 주님의 아무런 흔적과 돌보심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날엔> 우리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날엔> 우리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새롭게 빚으실 것이라고 말이다.
예레미야도 그렇다.
오늘 본문만 보면.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 같고. 아무런 꿈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바로 다음을 보면.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애 3:22)"라고 하는데.
이것이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레미야는. 그 하나님에 대한. 인자와 인애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기에. 오늘 하나님 앞에서. 절규하고 한탄할 수 있었으며.
그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자비를 믿기 때문에.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시고 책망하신다 하더라도.
그 하나님 앞에. 당신의 벌을 달게 받을 수 있었다.
오늘 우리를 향해 드시는. 하나님의 매는.
우리를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한 길이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와 숙제는.
그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피하고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고. 정직히 대면하는 것임을.
예레미야는. 알아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호와의 얼굴을. 정직히 대면하고. 그를 만나는 것이다.
주의 임박한 심판을 피하지 않고. 정직히 마주하는 것이다.
주께서 우리를 향해. 사자처럼. 곰처럼 달려오실 때.
그 하나님 앞에. 우리의 잘못을 고하며. 정직하게 그분 앞에 엎드리는 것이며.
주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불쌍히 여겨주시길.
간절히 고하고. 또 애타게 주를 찾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이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정직히 마주하길 원한다.
주의 얼굴을 뵙는 것이. 주를 만나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너무나 힘들고. 벅찬 일처럼 느껴진다 하더라도.
오늘 우리가. 정직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정직히 주를 볼 수 있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주의 말씀 앞에.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정직히 회개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하나님의 침묵이. 영원한 침묵으로 전락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지고. 새 날을 맞이하는.
그런 하루. 그런 복된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상한 맘을 드리며 주님 앞에 나아가리.
나의 의로우신 되신 주. 그 이름 예수.
나의 길이 되신 이름. 예수.
나의 길.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 같이. 나아오리라"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의 삶이.
주님 앞에. 정금 같이 빚어지는.
그런 하루. 그런 복된 우리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예레미야애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10.23(수) 애 3:34-54 (0) | 2024.10.22 |
---|---|
2024.10.22(화) 애 3:19-33 (0) | 2024.10.21 |
2024.10.20(주일) 애 2:11-22 (0) | 2024.10.20 |
2024.10.19(토) 애 2:1-10 (0) | 2024.10.19 |
2024.10.18(금) 애 1:12-22 (0) | 2024.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