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3:55-66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멸망이. 그들의 죄 때문임을. 잘 알고 있다.
알아도 너무나 잘 안다.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우리가 망하게 되었고.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진노 아래 있다는 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알아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근데 문제는.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조롱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바벨론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잡아가면서 한 말이 무엇인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냐?"는 것이다.
"네가 그토록 자랑하고. 또 귀히 여기던. 우리 주님이 어디 있냐?"는 것이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하고 조롱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레미야는. 심지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우리가 매를 맞아도. 하나님께 맞는 것이지. 니들이 뭔 상관이 있단 말이냐?
너희는. 하나님의 심판/진노의 몽동이이 뿐인데.
니들이 뭐라고. 그렇게 자랑하고 으시댄다는 것이냐?"
예레미야 입장에서는. 그 모습이. 너무 불편하고 꼴보기 싫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자신의 억울한 감정을 토로하며.
하나님 앞에 이렇게 울부짖는다.
"여호와여. 나의 억울함을 보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원통함을 풀어주옵소서.
그들이 내게 보복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다 보셨나이다.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비방하며. 나를 모해하는 것과.
곧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들과.
종일 나를 모해하는 것들을 들으셨나이다.
그들이 앉으나 서나. 나를 조롱하며 노래하고 있으니.
주님. 그들에게 거만한 마음을 주사.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소서.
주께서 진노로 그들을 뒤쫓으사. 하나님의 하늘 아래에서. 망하게 하소서(59-66절)"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심각한 경종이 되는 것 같다.
실제로. 오늘 우리의 모습을 살펴볼 때.
<하나님 노릇> 하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되고…"
그렇게 수많은 비판과 판단을 할 때가 참 많다.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위기를 맞고 있을 때.
이에 대한 신학적 판단을 하고. 조롱을 할 때도 참 많은 것 같다.
마치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이래라 저래라 하며. 가르치고 판단하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다.
우리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죄인인데.
우리가 뭐라고. 그들을 심판하고 판단한단 말인가.
그들의 죄와 우리의 죄가 다르지 않으며.
우리도 그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형벌/진노 아래 있는 자인데.
어찌 우리가. 자기 눈 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형제의 눈에 있는 티만 본단 말인가.
그런 측면에서. 오늘 바벨론의 죄는. 에돔의 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에돔이. 네 형제의 날. 그(이스라엘)가 재앙을 받던 날에.
너는 방관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에돔이. 유다 자손의 몰락을 보고.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았던가(옵 1:12)"
이방 사람들이. 야곱의 재물을 늑탈하며. 그들의 것을 빼앗을 때.
에돔도 그들과 함게. 손을 벌리고. 그들의 것을 빼앗지 않았던가(옵 1:11, 13)
이스라엘이 고통 당하고. 어려움을 겪을 때.
그들을 도와주고. 지켜주지는 못할 망정.
원수의 손에 넘겨주고. 그들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던가(옵 1:14)"
그래서 하나님은. 에돔을 향해.
그들의 죄와 그들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
형제로서 함께 아파하고. 고통해도 모자랄 판에.
그들을 심판하고 책망했던 것에 대한. 잘못을 묻고.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니며. 바른 것이 아님을.
에돔에게. 분명히/똑똑히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모습을 함께 살펴보게 된다.
"오늘 우리는 어떠할까?
오늘 우리는. 형제자매의 연약함과 아픔을 보면서.
어떤 자세/태도를 취하고 있을까?"
우리는 형제자매의 아픔과 연약함을 보면서.
훈수를 두고.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들의 죄를 나의 죄로 여기고.
함께 아파하며. 함께 고통하는 사람인가?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는 것은.
그들의 죄가. 나의 죄보다 더 크기 때문도 아니요.
나의 의가. 그들의 의보다 더 크기 때문도 아닌데.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또 형제자매들 앞에서.
어떤 자세와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그들의 죄를 나의 죄로 여기며.
자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살피기에 익숙한 사람인가.
아니면. 바리새인처럼.
"세리를 조롱하고. 나는 그들과 같지 않음(눅 18:11)"을.
하나님 앞에. 자랑하고 으시대는 사람인가?
바라기는.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거만한 마음. 오만한 마음.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높이는 마음"을 거둬주시고.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 가난한 마음. 진실한 마음. 정직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런 나와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 노릇>하며. <하나님 행세>하며.
<하나님처럼 살아가는> 모든 거짓됨을 벗어던지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존재가. 먼지와 같은 자임을 기억하며.
형제자매의 아픔을 보며. 함께 아파하고. 함께 고통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오 예수님. 내가 옵니다. 못 박히신 십자가 앞에.
그 큰 사랑 눈물에 겨워. 울며 울며 돌아옵니다.
주님 손과 발 못 박혔고. 머리엔 가시관 박히셨네.
내 모든 죄와 허물 위해. 말 없이 피 흘려 주셨네.
오 예수님. 나의 손 잡고. 이제부터 영원까지. 내 구주가 되옵소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내 구주가 되옵소서"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가난한 마음.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오 예수님 내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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