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4:11-22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건물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싱크홀 현상'이 그렇지 아니한가.
토목 공사를 바르게 하지 않으면. 건물은 언젠가 무너지고. 누수되기 마련이고.
우리는 그 댓가를 혹독히 치뤄야 한다.
처음에는 돈을 아끼려고 그랬다가.
나중엔 더 혹독한 댓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썩은 동아줄을 붙잡는 것도 그렇다.
다급하다고 해서. 아무 줄이나 붙잡았다가는.
큰 화를 치르기 마련이다.
낮은 데서 떨어지면. 조금 다치고 말겠지만.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코가 깨지고. 뼈가 으스러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썩은 동아줄을 붙잡아서도 안 되고. 날림으로 공사를 해서도 안 된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헛된 생각과 헛된 기대로 살았다가는.
우리는 큰 코를 다치고. 큰 화를 입게 될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그렇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무엇이었던가?
첫번째는. 거짓 선지자들의. 달콤한 사탕발림에 속았던 것이며.
두번째는. 이스라엘을 지켜줄. 애굽의 군사력을 믿었던 것이지 않은가?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엿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을 듣지 않았으며.
오히려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그의 말을 추종하였다.
예레미야가 전하는. 심판과 회개의 메시지를 듣기 보다는.
듣기 좋은 메시지. 평화와 복에 관한 얘기를 더 좋아했던 것이다.

애굽을 찾았던 것도 마찬가지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투항하는 것이 살 길이라 하였지만.
그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재수 없게 생각했다.
"어디서 이런 재수 없는 말을 하고. 어디서 이런 옴붙은 놈이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레미야의 뺨을 때리고. 그를 옥에 가뒀는데…
그 결과는 어떠한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완전히 산산조각/풍비박산이 나버렸다.
"이게 아닌데?" 하던 일들은. 현실이 되어버렸고.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찾다가.
그야말로 길을 잃고. 생명을 잃게 되었다.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그렇게 우리 주님이. 말씀하고 또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주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의 길을 찾지 않는단 말인가.


마치. 광야에 놓인. 이스라엘의 모습과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욕하고 원망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큰 심판(불뱀으로부터 물려 죽는 일)을 당하게 되는데.
그때 우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놋뱀을 만들어. 그것을 장대 위에 세워라.
그 뱀을 바라보는 자마다. 모두 살리라"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콧방귀를 꿨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뚱단지 같은 소리냐는 것이다.
"뱀에 물렸으면. 우리의 목숨을 구해줄. 약초/치료제를 찾아야지.
무슨 구리로 뱀을 만들어. 그걸 쳐다 봐야 하냐!"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헛된 희망을 찾다가.
자신의 목숨을 달리 하게 되었다.
"구원의 주님. 생명의 주님"이 여기 계신데도.
그 말씀을 듣지 않고. 그 말씀을 거역하다가.
결국 자신의 목숨을 달리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생각해 보게 된다.

오늘 우리는. 위기의 순간에. 무엇을 찾고 있을까?
오늘 우리는. 우리의 참된 소망을 어디에 두고 있을까?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과 생명을 지켜줄 무언가를.
경제적인 부와. 안정적인 미래라고 생각한다.
맞다.
그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너무 중요하고. 너무 소중한 숙제다.
시장 경제체제/자본주의에 몸담고 있는 우리가.
어찌 그것을 외면하고. 무시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주'가 되어선 안 된다.
그것이 아무리 중요한 요인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오늘 우리 인생에. '주인'이 되어선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 생명의 유무는. 자본주의/돈/맘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넣어주지 않으시면.
오늘 우리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경제적 부와 미래의 안정.
삶의 모든 안정과 평화가.
하나님께로부터 오고. 하나님께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 인생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삶의 소망을 두고 있다면.
주님은 그것을 빼앗고. 송두리째 무너뜨리기도 하신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우리 인생의 주인이 누구신지.
묻고. 알게 하시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헛된 소망/헛된 기대를 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 기대를 두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 생명을 걸었으면 좋겠다.

썩은 동아줄. 헛된 기대. 헛된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믿음 위에 집을 짓고.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 말씀을 묵상하는데.
이 찬양이 마음 속에. 계속 떠오르는 것 같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우편에 그늘 되시니.
낮에 해와 밤의 달도. 너를 해치 못하리.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환란을 면케 하시니.
그가 너를 지키시리라. 너의 출입을 지키시리라.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의 도움 어디서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께 눈을 들고. 하나님께 눈을 맞추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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