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5:11-32
우리나라 속담에. "집 떠나면 고생이다"라는 말이 있다.
집을 떠나면. 우리를 지켜주고 보호해 줄 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집에 있는 게 제일 마음 편하고 좋다는 것이다.
야곱의 인생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집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머물렀는데.
그 세월은 야곱에게. 지우고 싶은 순간. 없애고 싶은 순간이었다.
왜냐하면. 외삼촌 라반이 자기를. 종/노예 부리듯이 하였기 때문이다.
라헬을 위해 7년 동안 수고하면. 라헬을 주겠다고 해놓고선.
그 약속을 함부로 깨뜨리고.
야곱과 맺은. 임금 계약을. 10번이나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바꾸었으니.
야곱의 인생이 어찌 편안할 수 있었겠는가.
그의 말대로. 정말 험악한 세월을 보냈었다.
하지만. 야곱에겐. 달리 할 방도가 없었다.
왜냐하면. 야곱에겐 집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 잘못 때문에. 이 일이 벌어졌는데.
지금 누구에게 하소연하고. 자기 신세를 한탄할 수 있단 말인가…"
야곱은 그렇게 20년 동안 눈물 젖은 밤을 보냈는데.
이것이 집 떠난. 방랑자 야곱의 인생이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둘째 아들의 모습도 그렇다.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자기 재산을 모두 잃게 되었는데.
그런 그에게. 누가 사람 대접해주겠는가.
아무도 없다.
젊었을 때는... 돈이 많았을 때는. 그를 친구 대접해 줬을지 몰라도..
지금은 어느 누구도 그를 사람대접해 주질 않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집에 빌붙어 지냈는데..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그가 돼지우리 곁에서. 돼지를 치는 일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주인은. 그에게 돼지들이 먹는 쥐엄 열매조차 주지 않으며…
그렇게 학대당하며...험난한/험악한 세월을 보냈는데…
그러다 결국. 뒤늦게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기로 작정을 한다.
"여기 있다가는 정말 굶어 죽겠구나"는 생각에.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아버지의 자비에 의탁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되내이기를…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나름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고 말하는데…
정작 집에 돌아갔더니. 아버지가 그를 '품꾼의 하나'여기는 것이 아니라.
극진한 환대와 극진한 사랑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실제로 오늘 본문 20절을 보면…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장면이 나오고..
22절에서는.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는" 장면이 나온다.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키고. 그를 맞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23절에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아다가. 우리가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얘기하는데.
아버지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까닭이 무엇인가?
그것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극진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버지 입장에서는.
아들이 집을 떠날 때부터 하루하루 괴로운 날들의 연속이지 않았겠는가.
아들 입장에서는. 먹을 것이 떨어지자.
그때부터 괴로운 날들이 시작되었다면.
아버지 입장에서는. 아들이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그때부터 지옥이 이미 시작되었고.
아들 입장에서는.
내가 아버지의 집에 돌아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때.
아버지 입장에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내 아이가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 입장에서는.
우리 아버지가 나를 맞아줄까. 안 맞아줄까. 걱정하고 근심하고 있을 때.
아버지 입장에서는. 이미 아들을 용서한지 오래였으며.
아들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내가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충분하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그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둘도 셋도 없는 내 아들이며.
이 아들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고도. 어떤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이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진실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 얘기하는데.
오늘 그 아버지가.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가 되신다.
우리가 아버지의 집을 떠나. 유린하며. 기진맥진 하고 있을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계시며.
우리 하나님은 그 아들을 찾기 위해.
독생자 예수. 우리 주님을 이 땅 가운데 보내셨다.
오늘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을 외면할 때에도.
우리 주님은. 우리의 손을 놓지 않으시며. 우리를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오늘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안에서 복을 얻고.
그분과 영원히… 그분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6)"라고 고백하는데.
나는 오늘 이 고백이.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의 영원한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다.
실제로 오늘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며.
우리가 어디서 만족을 얻고. 어디서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어거스틴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쉼을 찾기까지. 우리의 마음은 안식을 얻지 못하고.
계속 떠도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데…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며. 아버지의 품으로 나아가길.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할 때.
우리 마음 가운데…
불안함과 두려움과. 염려와 걱정이 우리를 사로잡지 않았으면 좋겠고.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안아주시고.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우리가 만족하고. 우리가 기쁨을 누리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나 죄의 길에 시달려. 주여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주소서"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를 맞아주시며.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은혜 베풀어 주시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feat. 나 주를 멀리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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