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6:1-13
불의한 청지기 비유.
이 비유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논란이 되었다.
이 비유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사람들에게 많은 물음과 질문을 남겼기 때문이다.
"청지기가 계약서를 변경해서. 자신의 속내/이익을 챙기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칭찬받을만한 행동인가?
기름 100말을 50말로 변경하고.
밀 100섬을 80섬으로 변경하는 것이. 과연 정당하고 옳은 행동인가?"
그래서. 학자들은. 이 본문을 두고. 오랫동안 많은 연구를 하였다.
그 결과. 이런 자료를 찾아냈다.
그 당시. <고리대금업>이 성행하고 있었는데.
"기름"의 이율은 100% 였고. "밀"의 이율은 25%였다.
다시 말해서. 기름 50을 빌리면. 계약서에는 100을 적고.
밀 80을 빌리면. 계약서는 25%의 이율을 적용해서.
밀 100으로 계약서를 적었는데.
이 사람이. 이자를 제하고. 원금만 기록하도록. 계약서를 변경/수정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결과만 보자면. 이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주인은. 그 당시 고리대금업을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재산을 불리려 하였다면.
이 사람은. 그것을 지혜롭게 선용(?)하였기 때문이다.
모세의 율법에 의해서도. 그의 행동은 정당했다.
실제로 신명기 23장을 보면.
"네 형제에게 꾸어 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지니.
돈의 이자이든. 양식의 이자이든. 이자를 받을 만한. 그 어떤 것이든 받지 말라(신 23:19-20)"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이 사람의 행동은 율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행동이었다.
오히려 이 일을 통해. 주인의 업적을 칭찬하며. 주인의 이름을 드높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는 과감하게. 불의를 행하였다.
계약서의 내용을 수정하면서.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이 일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도모하고. 안전을 꿰하고 있으니.
이 사람 입장에선. "일거양득/꿩 먹고 알 먹기"로.
자신의 행동을. "지혜롭고 현명하다"고 스스로 칭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일이… 아무리 결과가 좋았다 하더라도.
그의 행동은. 결코 정당화되거나. 용인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과정이 바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인의 허락을 받지도 않고.
계약서의 내용을 수정하고. 이 일을 통해. 자신의 유익을 도모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선하다" 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이 사람은. <불의한 청지기>가 맞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아무리 지혜롭게 처리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분명. 불의한 목적으로 이 일을 처리하였고.
이 일이 자기에게 유익이 되고. 득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의 행동을 절대로 정당화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근데… 문제는…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이 이 사람을 칭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8절)"고 말하는데.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게다가 9절 말씀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9절)"고 말하는데.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돈을 벌어서.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으니. 돈을 벌지 말라"는 말인가?
그래서 이 본문을 보며.
우리는. 여러 가지 난해함과 질문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의 대상/말씀의 타켓이 누구인지를. 우리가 바르게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오늘 본문 바로 다음절을 보면.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를 비웃었다(눅 16:14)"고 말하는데.
성경은 그 이유가. "그들이 돈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 당시.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이 보인 행태가 그렇지 않은가.
성전 앞에서. 사람들을 돕는다는 목적으로. 제사 짐승을 파는데.
하나 같이. 병들고. 이상한 것 투성이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때. 어느 하나도. 도저히 제사상에 올릴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괜찮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돈을 벌 수 있으니까.
병들고. 몹쓸 짐승을. 싼 값에 사와서.
그것을 비싸게. 덤탱이를 씌워서 사람들에게 판매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환치기도 하였다.
제사를 드리려면. 성전세를 바쳐야 했는데.
이것을 위해서. 높은 환율로. 많은 수수료를 받고 사람들에게. 장사를 하였으니.
이것이 "형제자매에게 높은 이율을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과.
무슨 하등의 차이가 있겠는가?
그들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리대금업 하는 주인>과.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는 청지기>과 결코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 사람들은…
마지막 날/심판의 날이 다가오자. 지혜롭게 행동하며. 슬기롭게 대처하는데.
이 사람들은. 끝까지. 고집을 부리다가. 끝까지 심판을 모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의 모습이 그렇지 않은가.
그는 불의한 재물로. 자신의 재산을 축적하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 그의 삶의 방향/그의 길을 수정하였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배를 축이고. 자신의 목을 축이는 방식을 살아왔다면.
이제는 이 재산들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고. 이웃에게 나누겠다고 고백한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말씀처럼.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끝까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코웃음쳤으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를 조롱하고 비웃기 일쑤였다.
그래서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에도.
"내가 언제 불의한 방식으로 돈을 모았다고?" 항변하며.
"나는 하나님과 재물을. 언제든지 겸하여. 지혜롭게 섬길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향해. 우리 주님이 어떻게 칭찬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눅 16:15).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우니…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8, 11)"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돌아본다.
1) 예수님 당시. 많은 사람들이. <불의한 방식>으로 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오늘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돈을 모으고 있을까?
사람들의 재산을 삼키며. 사람들의 뼈를 빨아먹는.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을까?
2)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재산을.
"나의 필요와. 나의 유익과. 나의 목적"만을 위해 사용하고 있을까.
아니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이웃과 이 땅 가운데.
선용하며 베푸는 삶을 살고 있을까?
바라기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우리 주님의 말씀과 그분의 경고를 따라.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며. 하나님 한분만을 경외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감을.
마음 깊이 고백하며. 삶의 중심으로 노래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내가 어떤 형편에 있는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자족하며.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진실한 예배자 되며. 진실한 주의 향기를 전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 아침.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이 찬양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서길 원한다.
"나의 모습. 나의 소유. 주님 앞에 모두 드립니다.
모든 아픔. 모든 기쁨. 내 모든 눈물 받아주소서.
나의 생명을 드리니. 주 영광 위하여. 사용하옵소서.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주를 찬양하며. 기쁨의 제물 되리.
나를 받아주소서"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은혜. 이와 같은 복 더해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feat. 나의 모습 나의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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