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완'에 해당되는 글 21건
- 2024.11.18 :: 2024.11.18(월) 딤후 4:1-8
딤후 4:1-8
사도 바울은. 당시 시대를 가리켜.
“그리스도 안에 일만 스승이 있으나. 아버지는 많은 시대(고전 4:15)”라고 하였다.
아버지라면…
그 아이의 잘못됨을 꾸짖고. 호되게 가르칠 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듣고 싶은 소리를 하며. 좋은(?) 가르침을 전파하며.
아버지라면…
그 아이의 잘못됨을 알고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를 기다릴 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를 버리고. 쉽게 그를 포기하곤 한다.
내가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야말로. ‘고용’된 사람일 뿐인데.
내가 왜 책임지고. 내가 왜 돌봐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그 당시. 많은 가르침과 교훈을 전하는 자가 있었지만.
참된 가르침과 본을 보이는 교사는. 많이 없었다.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저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고.
그렇게 삯군과 거짓 교사가 넘쳐나던 시기.
그 시기가 바로. 사도 바울이 살던 때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아버지’보다 ‘거짓 교사’를 찾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아버지’가 좋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으로는. 아버지를 받아들이질 않았다.
왜냐하면. 아버지랑 같이 있으면 피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게 되었는데(딤후 3:6-7).
그렇게 그들은.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귀를 가리게 되었다(딤후 4:3).
자기 사욕을 따를. ‘많은’ 스승을 두게 되었고.
또 귀를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게 되었다.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이 사람에게 이 얘기를 듣다가. 마음에 안들면 그 사람을 버리고.
또 저 사람에게 저 얘기를 듣다가. 마음에 안들면 또 버리고.
그렇게 돌고도는 삶을 살고 있으니. 그가 어찌 진리에 이를 수 있겠는가.
그에게 진리의 말씀은. 그냥 장식구/치장거리에 불과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 생각하였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서.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판단하는데.
그에게 진리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이런 시대 속에서.
디모데가. <살아있는 목회자/진실한 목회자>가 되길 바란다.
그냥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
‘많은’ 스승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목사가 되고. ‘진짜’ 목회자가 되길 바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내가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엄숙히 명령하노니.
그대는 말씀을 끝까지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힘쓰십시오.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책망하고 경계하고. 또 권면하십시오.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지 않으려 하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찾으며.
자기네 욕심에 맞춰서. 자기 입맛에 맞는 스승을 모아들일 것이지만.
당신은 이 모든 일에 정신을 차려서.
끝까지 고난을 참으며. 그대의 일/전도자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
나는. 이 모든 싸움을. 정말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달려왔습니다.
나는 부끄러움이 없고. 나는 후회가 없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주께서. 나를 위한. 의의 면류관을 준비해 두었을 겁니다.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이 일이 나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고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당신에게. 다시 한번 권면합니다.
그대는 말씀을 끝까지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힘써 이 말씀을 전하며.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책망하고 경계하고. 또 권면하십시오.
이것이 그대를 향한. 나의 마지막 권면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이 말씀이.
나의 가슴을 뛰게 하고. 나의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것 같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있고.
오늘날 많은 영적 지도자/스승이 있는데.
오늘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오늘 나도.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그런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길을 찾게 하는. 그런 사람이 될 것인가?
목회를 하다보면. 여러 일과 어려움이 찾아오게 될 터인데.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말씀을 전하고. 증거하는 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상황이 어렵고 힘들다고 하여.
쉽게 포기하고 쉽게 돌아서는 자가 될 것인가?
이제 이번달 말이면. IVF 간사를 사임하고.
지역 교회 목회자로. 풀타임으로 사역을 하게 될 터인데.
오늘 나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진짜’ 목회자가 되고. ‘진짜’ 사역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말씀을. 허투루 전하고 가르치는.
그런 목회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살아내는.
그런 목회자 되고. 그런 참된 아비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 영혼을 마음 다해 사랑하는. 그런 목회자 되었으면 좋겠고.
온유함과 진실함으로.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그런 목회자 되고. 그런 영적 아비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나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교회. 오늘 우리 공동체 속에도.
이와 같은 자들이. 충만히 흘러 넘치면 좋겠다.
오늘날. 어찌 목사만. 가르치는 자/말씀을 전하는 자가 될 수 있겠는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모든 사람이 주의 말씀/당신의 말씀을 증거하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힘쓰고 또 기억해야 할 것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주의 말씀을 배우고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힘쓰고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싸움/이 길을 마치기까지.
우리가 힘써 이 길을. 기쁨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며.
그렇게 오늘 우리의 삶이.
주님 앞에 예배가 되고. 전제가 되는.
그런 나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런 믿음의 동역자/우리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이 찬양의 고백이 계속 생각나는 것 같다.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기쁨으로 그 길에 오르며.
주께서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기르신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당신을 말씀으로. 사람을 낳고. 살리는. 그런 복된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기쁨이 되고. 소망이 되는.
그런 복된 공동체. 그런 진실한 주의 자녀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온전히 주께 맡겨드리길 원한다.
(feat. 십자가를 질 수 있나)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디모데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11.25(월) 호 6:1-11 (0) | 2024.11.25 |
---|---|
2024.11.19(화) 딤후 4:9-22 (0) | 2024.11.19 |
2024.11.17(주일) 딤후 3:10-17 (0) | 2024.11.17 |
2024.11.16(토) 딤후 3:1-9 (0) | 2024.11.16 |
2024.11.15(금) 딤후 2:14-26 (0) | 2024.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