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1:1-16
어제 아침. 출근 길에 이런 말을 하였다.
"아~ 빨리 봄이 오면 좋겠어요."
서울에 오자마자. 혹독한 추위를 맞이하였기에.
하루 빨리 따뜻한 봄이 오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이런 말을 하였다.
"아~ 빨리 코로나가 그치면 좋겠어요."
봄이 오더라도. 코로나 때문에 마음껏 자연을 누릴 수 없기 때문에.
하루 속히 코로나가 그치고. 자유롭게 지내고 싶은 나의 마음이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한 것이다.
하지만. 나의 바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하루 빨리 코로나가 그치면 좋겠다'는 말을 마치자마자.
나는 이런 말을 하였다.
"아~ 우리 공동체의 암흑기가 지나가고.
하루 빨리. 평화가 찾아오면 좋겠어요."
지난 몇 년 동안. 공동체의 여러 일들로. 여전히 마음이 무겁기에.
우리 공동체의 어둠이 사라지고.
하루 속히 광명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이었다.
그래야. 봄이 오고. 코로나가 지나간다 하더라도.
마음 편히. 자유롭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 덧붙여 말을 이어갔다.
"아~ 하루 속히. 빨리 봄이 왔으면…"
"아~ 하루 속히. 빨리 코로나가 그쳤으면…"
"아~ 하루 속히. 빨리 공동체에 평화가 찾아오면…"
마치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야기와 같다.
'오빠(나사로)'가 아픈 것을 보고.
예수님께 사람들을 보내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마음이 어땠을까?
'하루 속히. 빨리'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그들의 오빠를 고쳐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죽을 병에 걸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오빠를 보며. 그들은 마음을 졸였을 것이며.
그렇게 신음하며 고통하는 오빠를 보며. 그들은 애간장이 타들어갔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루 속히' 사람들을 보내고.
'하루 속히' 예수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소식을 듣고도. 이틀이나 그 곳에 머무신다.
'하루 속히. 빨리' 찾아가도 모자랄 판에.
'이틀이나' 그곳에 머무시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려 해도.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병이라(4절)" 말씀하시며.
"내가 거기 있지 않은 것이 너희를 위해 도리어 잘 된 일이라(15절)"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보며.
만약 내가 그 말을 직접 들었다면 꼭지가 돌았을 것 같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결과를 아는 입장에서. 느긋하게 이 이야기를 지켜볼 수 있지만.
당사자(마르다와 마리아) 입장에서는.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이 시간을 보냈겠는가.
그런데 하는 말이.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병이라니…"
그것도. 나사로가 죽고 난 다음에야 나타나서 하는 말이.
"내가 거기 있지 않은 것이. 너희를 위해서 잘 된 일이라니" 말이다.
무슨 이런 개또라이가 있나 싶을 정도다.
그래서. 우리는 시험에 들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가 쉽지 않다.
하나님의 시간표와 우리의 시간표는 다르고.
하나님의 때와 우리의 때는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낙심하지 않기를' 바라신다.
도리어 그 날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살 것을 요구하신다.
그렇기에 누가복음 18장 1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우리는 어떠한가?
주님이 오실 날을 기다리며. 기도함으로 그 날을 예비하고 있는가?
우리가 낙심하고.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기도함으로 그 날을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가 인내하고.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하여. 기도함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기에.
눈 앞에 보이는 상황에 낙심하고. 요동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뜻 가운데 깊이 침잠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 내 생각으로는 그분을 다 이해할 수도 없고.
그분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선하신 주님을 믿고. 기다리며. 그분을 따르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아침. 이 찬양이 계속해서 내 입에 맴돈다.
"어둔 밤 지나고 동튼다. 환한 빛 보아라 저 빛.
주 예수의 나라 이 땅에 곧 오겠네. 오겠네.
어둔 밤 지나고 동튼다. 환한 빛 보아라 저 빛.
주 예수의 나라 이 땅에 곧 오겠네. 오겠네."
비록 그 날이 언제 올지. 우리가 다 알 수 없지만.
분명 이 밤이 지나면. 새 날이 밝아 올 것이며.
이 겨울이 지나면. 새로운 봄날이 우리에게 찾아올 것이다.
그날을 기다리며. 그날만 목놓아 기다리다. 오늘을 살아가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오늘을 살아가며. 그날을 기다리는 우리가 되길 소원한다.
그렇기에 이 아침.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선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믿음으로 그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다.
우리는 아직 다 이해할 수 없고.
우리는 아직 다 깨달을 수 없지만.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실 주님을 기다리며.
오늘도 믿음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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