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46:28-34
이산가족 상봉.
요셉이. 드디어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이 얼마나 꿈에 그리던 일인가.
그래서 요셉은. 아버지를 만나자 마자. 한참을 울었다.
나이고. 체면이고. 아무 것도 없었다.
어린 아이처럼.
그때 아버지 품에 안겨서. 마음껏 재롱을 부리고. 응석을 부렸던 것처럼.
오늘 아버지를 꼭 껴안고. 엉엉 울며 그의 마음을 달래고 있다.
그게. 오늘 아버지 야곱을 만난. 요셉의 심정이었던 것이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을 울고 난 다음. 요셉은 감정을 추스리고. 이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이제 제가 바로를 만나러 갈 텐데.
바로가 "당신들의 생업/직업이 뭐냐?"고 물어보거든.
목자/목축업이라고 말씀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고센 땅에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집트 사람들은. 목자라고 하면. 생각할 것도 없이 꺼리기 때문에.
그들과는 절대로 가까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우리의 신분을 세탁하고.
우리의 정체를 숨기는 것이. 여기서 살아가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분을 왜 속입니까.
우리의 소속을 왜 속이겠습니까.
우리는 흉년의 때를 피해 잠시 여기로 도망쳐 있는 것이며.
우리는. 결국.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아마. 우리가 편안한 곳에 머물러 있다보면.
그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에. 물들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우리는 집/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기가. 귀찮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여기 잠시 머무를 뿐입니다.
우리의 본향/고향은.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 땅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이야기인가.
요셉은. 그가 애굽의 총리로 있는 동안에도.
자신이 하나님 나라 백성임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는. 이곳이. 자기가 잠시 살다 갈 곳이라 생각했으며.
자신의 영원한 집/본향은. 가나안 땅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태생이. '목자의 아들'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사람들이. 자기를 꺼리고. 비아냥 거릴 거라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야곱에게. 자신의 직분/신분을 명확하게 밝힐 것을 요구하였고.
1)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
2) 우리가. 애굽 땅에서. 어떤 목적/정체성을 가지고 살 것인지.
3) 우리가. 결국에 바라고 소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바르게. 선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요셉의 이야기는.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참 많은 도전을 준다.
특별히.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이들의 비난과 눈초리를 받는 이 때에.
오늘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어찌보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적당히 나이스하게 살아가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득이 되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굳이. 우리가 그리스도인 것을 드러내야 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사람들이. 우리를 꺼리고. 피할 까봐.
자신의 신분을 적당히 가리고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 10:32-33)"
그렇기에.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분됨"이 아니라. "구별됨"이다.
"거리두기"가 아니라. "가까이 함"이다.
"세상의 풍조와 가치"에. 물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말씀과 당신의 부르심" 앞에. 당당히 서는 것이며.
세상의 문화에 "동화"되고. "편승"해서.
나의 이권과 유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부르심/목적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오늘 이 말씀을. 우리 마음판에. 바르게 새기길 소원한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오늘 우리는. 무엇을 바라며 살 것인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생각할 것도 없이. 꺼리기 때문에. 가까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래서. 우리의 부르심과 정체성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숨길 것이 아니라.
그 이름과. 그 목적에 맞는. 바르고 진실한 삶 살아가길 소원한다.
그렇기에. 오늘 아침. 이 찬양을 부르며. 주님 앞에 나아간다.
"우리가 이 땅의 그루터끼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지어다.
슬픔은 변하여. 기쁨의 춤 되리니. 여호와는 우리의 능력이라"
우리는. 하늘 나그네로. 이 땅을 살아간다.
(feat. 우리가 이땅의 그루터기라)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창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05.14(토) 창 47:13-26 (0) | 2022.05.14 |
---|---|
2022.05.13(금) 창 47:1-12 (0) | 2022.05.13 |
2022.05.11(수) 창 46:1-27 (0) | 2022.05.11 |
2022.05.10(화) 창 45:16-28 (0) | 2022.05.10 |
2022.05.07(토) 창 45:1-15 (0) | 2022.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