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48:1-22

야곱이. 죽을 때가 가까워 오자. 그는. 손자들을 보고 싶었다.
특별히. 요셉의 아들이 보고 싶었다.
요셉을 향한. 야곱의 마음이 각별하였기에.
그의 아들을 향해. "그 놈들은 내꺼다!"라고 말하며.
그들을 마음 다해 축복하고. 사랑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근데. 손의 위치가 조금 이상하다.

당시 고대 근동의 문화를 보면.
아무래도 첫째에게 더 많은 권리와 혜택을 주는 것이. 관례였다.
형이니까. 형으로서 더 많은 역할과 책임이 있었고.
형으로서. 이것을 잘 수행하고. 동생들을 잘 살피고. 돌보길 원했다.

그래서. 보통은. 오른손으로. 첫번째 아들을 축복하고.
왼손으로. 둘째 아들을 축복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요셉은. 야곱의 오른편에. 첫째(므낫세)를 데려다 놓고.
왼편에. 둘째(에브라임)을 데려다 놓았다.

근데. 야곱이 두 팔을 엇갈려서.
왼손으로. 형 므낫세를 축복하고. 오른손으로 동생 에브라임을 축복한다.

왜 그랬을까?
1) 야곱의 눈에. 형 므낫세보다 동생 에브라임이 더 싹수가 보였기에.
그래서 에브라임을 축복했을 수도 있고.
2) 야곱이. 둘째였기에.
첫째보다 둘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에브라임을 축복했을 수도 있다.
3) 창세기에 등장하는 기본적인 메타포가.
역전의 하나님/약한 자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에브라임에게 흘러갔을 수도 있고.
4) 야곱이 무언가 하나님의 계시/약속의 말씀을 받았을 수도 있다.

정확한 것은. 아무도 모른다.
왜 야곱이. 그렇게 했는지. 야곱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말이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요셉 입장에서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셉은. "아버지. 이놈이 첫째입니다." 하면서.
손의 위치를 바로 잡으려 하였다.

하지만. 야곱은. 이에 대해. 분명하게/단호하게 말한다.

"안다 이놈아!
내가 지금 눈이 어두워서. 헷갈려서 그런 게 아니라.
이게 하나님의 뜻이다!
세상 모든 만사 당연하게. 진행되는 건 없다.
아들이라고 해서. 당연히 복을 얻는 게 아니다.
첫째라고 해서. 당연히 더 많은 복을 받는 게 아니다.
첫째는. 첫째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이 있는 것이고.
그 역할을. 책임있게/온전히 감당할 때.
그때 복과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이것을. 하나의 이정표/경고 삼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아침.
이 말씀이. 나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 같다.

오늘 우리는. 내게 주어진 복과 은혜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내가 당연히 복을 받고. 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내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은 감당하지 않고.
내가 받을 복과 은혜만 계수하고.
그것이. 시행되지 않고. 그것이 진행되지 않을 때는.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기계적으로. 당연히.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에 걸맞는 책임과 역할을 감당하게 될 때.
그때 비로소. 우리가 복을 누리고. 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


그런 측면에서. 오늘 이 말씀이.
오늘 우리 마음 판에. 경고등이 되고. 소망이 되길 소원한다.

오늘 우리는. 관성에 젖어/타성에 젖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우리는. 과거의 화려한 유산/전통에 파묻혀.
여전히 그 가운데 취해 있고. 젖어있는 것은 아닌가?
장자 교단이라는 이유로.
이름 있는 단체라는 이유로.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여전히. 허세와 허영에 물들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기에. 이 시간. 주님 앞에. 두려움과 떨림으로 나아간다.

"주님. 우리로 하여금.
이름만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와 같았던. 사데 교회와 같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도리어. 우리로 하여금. 서머나 교회와 같게 하사.
우리가. 작지만. 부유한 자 되게 하여 주십시오.
연약하지만. 그 가운데 생명력 있는 자 되게 하여 주십시오.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과 복음이 살아있는 자 되게 하여 주시고.
오늘 우리가. 빈 껍데기처럼. 요란하고. 시끄럽지 않게 하여 주시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내실 있고. 주의 진실한 자녀로 살아가는.
저와 우리 공동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 한날 가운데.
그런 은혜와 복 주시길 소원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feat. 주 앞에 엎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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