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21-26

팔복 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이 말씀을 볼 때면. 우리가 원론적으로.
"그치. 우리가 평화를 이뤄야지. 화평케 하는 자에게 복이 있어."
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삶으로 들어가면. 그것이 좀처럼 쉽지 않다.
왜냐하면. 현실과 이상 사이엔. 너무 큰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생각해 보자.
나에게 해코지 하고. 나를 험담하고.
나에게 어떤 원한을 품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을 정말 마음 다해 사랑할 수 있겠는가?

어떤 측면에선.
얼굴을 가리고. 표정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 반응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상황이 악화되는 게 싫어서.
그냥 억울한 마음을. 꾹꾹 누르고 있을 뿐이지.
정말 그 사람을. 마음 다해 사랑하고. 용납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간극이 발생한다.
머리는. 사랑을 말하지만. 몸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고.
머리는. 화해를 원하고. 평화를 원한다 말하지만.
사실 마음은. "내가 왜? 내가 뭐 때문에 싫은 소리를 해야 해?" 라는 질문이 생겨 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같은 말씀을 볼 때면. 마음에 불편함이 한 가득이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랑하겠지만.
내 손에 잡히지 않고. 내 손에 핸들링 되지 않는 사람까지도.
우리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왜 사랑과 화해는. 늘 우리의 몫일까?
상대방은. 하나도 불편해 하지 않고.
상대방은. 자기의 잘못을 하나도 뉘우치지 않고 있는데.
왜 우리만. 십자가를 지고. 왜 우리만 자기를 죽여야 하는 것일까?"

"일방적으로 나를 낮추고. 나를 비우는 것이.
정말 사랑의 길/회복의 길인가?"

그래서. 오늘 아침 말씀을 읽는데.
머리로는.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잘 알겠지만.
이것이. 마음으로. 몸으로. 충분히 납득되고 동의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는 물음과 질문이 반복되고.
어떻게든. 나를 정당화 시키고. 나를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앞설 뿐이다.


그렇기에.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아가. 정직하게 간구할 뿐이다.

"주님. 누군가를 사랑하고 용납하기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별히. 내가 섬기는 사람이나.
내 아래 있는 사람이나. 나와 수평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그에게 은혜를 베풀고. 그를 용납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손 위에 있는 사람이나.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그를 사랑하고 용납한다는 것은. 참 어렵게 느껴집니다.

솔직히. 말해서는.
그 사람과 대화한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지난 시간 동안. 그 사람과 수차례. 수십번 이런 대화를 나눴어도.
아무런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자기 말만 늘어놓는 그 사람을 보면서.
마음이 답답하고. 더 이상 아무런 진전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오히려. 사랑이라는 것은. 화해라는 것은.
약자의 편에서. 강자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용서라는 것은. 화해라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가. 함께 마음을 모으고.
서로 대화가 이뤄질 때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사랑해라. 용서해라. 화해하라"는 메시지를 보고.
실제로는 마음도 없는데.
의무감에 율법적으로 이 말씀을 지키려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해서. 화해하고. 평화를 누리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혹시나. 이런 제 생각이.
저를 변호하고. 나의 행동을 정당화 하기 위한.
궤변이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하고.
그래서. 때때로. 이 말씀 앞에. 길을 잃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주님. 이런 상황 속에서.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렇기에.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아가.
당신의 자비와 은혜를 구할 따름입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자비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사랑의 길을 보여 주시고.
주님. 우리에게. 사랑과 화평의 관계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feat.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오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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