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3:26-31
구레네 사람. 시몬.
그는. 오늘날로 따지면. 북아프리카 '리비아'에 살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 당시. 많은 사람이. 이집트와 아프리카. 유럽 근역으로 흩어져 살았는데.
구레네 지역도. 그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문헌에 의하면. 구레네 지역에는 약 10만 명의 유대인들이 모여 살았다고 하니.
그 규모가 꽤 컸던 것 같다.
근데. 오늘 본문을 보면.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다.
어떤 이유였을까?
그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것인가.
아니면. 구레네를 떠나. 지금은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은 것인가.
아니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 이 곳에 온 것인가.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명확한 것은. 구레네 사람 시몬이. 지금 성 안으로 들어오다가.
예수님과 로마 군병들을 함께 만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예견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로마 군사들이.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게 하였기 때문이다.
시몬 입장에서는. 이 일이 매우 황당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도대체 이게 왠 일이란 말인가.
나는 누구. 여긴 어디란 말인가.
내가 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이 길을 따라가야 하지.
혹시 나까지 함께 처벌되는 것인가.
구레네 사람 시몬은. 그 짧은 순간. 오만가지의 생각이 스쳐갔을 것이고.
그렇게. 예수님과 함께 골고다 언덕에 오르게 되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수모를 겪는 모습을 자기 눈 앞에서 목격하게 되었을 것이며.
이를 대하는 예수님의 모습과. 그의 말 또한. 가까이에서 또렷하게 들었을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던 두 강도의 모습 또한 함께 보았을 것이며.
예수님의 죽음을 바라보며.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말하는.
백부장의 이야기도 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연처럼' 다가온.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에게 '운명'이 되어 버렸다.
그는 어쩌다 한번. 예수를 마주치고. 예수를 따르게 되었는데.
이 길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관심과 공부를 하게 되었고.
이 시간을 통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그와 그의 가족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따르는. 주의 제자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실제로. 마가복음 15장 21절을 보면.
구레네 사람 시몬을.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얘기하는데.
로마서 16장 13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백하지 않는가?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이것은. 시몬은 물론이며.
그의 아내와 그의 가족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주의 제자가 되었음을 뜻하는 말인데.
이 일이 어찌 가능했겠는가.
그것은. '우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랐던 시몬을 통해서.
그와 그의 가족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되고.
하나님 나라 복음이 증거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돌아본다.
오늘 내 삶에. 우연처럼 다가온. 예기치 못한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
나는 이것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억지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일은 무엇이 있을까?
어쩌다 보니.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고.
어쩌다.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며. 그를 따라가고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나는. 이 일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억지로. 부득불. 마지 못해서. 이 일을 해야 할까.
아니면. 이 길 끝에 계신 우리 주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따라. 이 길을 걸어가며.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뜻이 온전해지길.
기다리며. 주를 예배해야 할까?
나는. 그것이. 비록 쉽지 않고. 어려운 일이지만.
주를 따르며. 주를 기다리는.
그런 나의 삶이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돼. 내가 왜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해"라고.
불평하고. 투덜거리기 보다는.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기쁨으로 주를 따라가며.
기쁨으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시간이. 오늘 나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런 '무의 시간. Killing time'의 시간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 시간 속에서. 주의 뜻을 발견하고.
이 시간 속에서. 주의 뜻을 기다리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이 찬양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길 소원한다.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구레네 사람 시몬처럼.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뒤를 따르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십자가를 질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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