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7:1-9

아모스 7장부터 9장까지. 다섯 가지 환상이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주님의 심판/진노에 관한 것이다.

오늘은 '메뚜기 떼'와. '불' 그리고 '다림줄'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부도덕함과 불의에 관한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거역하였기 때문에.
주께서 그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에게 진노를 쏟아붓고 계신 것이다.


근데. 재밌는 것은.
아모스의 중보 기도로 인하여. 하나님이 심판을 그치고. 그 마음을 돌이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주께서 메뚜기 떼를 보내어. 그 땅의 풀을 다 먹을 것이라"고 경고하는데.
이에 대해 아모스 선지자가. 이렇게 기도한다.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이에 하나님이. 그 마음을 돌이키고 뜻을 돌이키는데.
이 기도는. 그 다음 환상/불에 관한 환상에서도 똑같이 재현된다.

실제로 5절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주께서. 불을 들어. 땅 깊이 흐르는 지하수를 말리고.
농경지를 불살라 버리겠다(새번역, 4절)고 말씀하시는데.
이 일에 대해. 아모스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또 기도한다.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5절)"
앞에서는 <사하소서>라고 기도했다면.
이번에는 <그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를 그치고. 이 백성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이다.

이에 하나님이. 또 그 마음을 돌이키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시는데.
재밌는 것은/중요한 것은. 아모스 선지자의 기도가 여기까지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모스 선지가가.
더 이상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모스 선지자가.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계속된 반역과 완악함 때문에.
주께서 그 뜻을 돌이키지 않았음을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반역하고 패역함을 보면서.
주께서 이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났음을 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돌이켜야 할 주체는. 아모스 선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모스 선지자의 기도로. 이스라엘이 언제까지 연명 치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이키고. 주께 나와 와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는데.
그들이 언제까지. 무임승차/묻고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주님은. 그들이 직접 주께 돌아오기를 원하고 계신다.
아모스의 기도를 외면하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소원과 기도는 간절히 들으셨지만.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응하고. 그들이 직접 일어서야 할 때라고 말하고 계신 것이다.

이에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 조용히/홀로 기도하던 것을 멈추고.
이스라엘로 가서. <직접>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였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직접 전해주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그 잘못을 그치고.
주께 돌아오기를. 간곡히 요청하고 또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는.
남 유다 드고아 지역을 떠나. 북이스라엘 잃어버린 백성들을 향해.
전진하고 또 전진하였다.
그들이 내 말을 듣고. 돌이키고. 주께 나아올지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을 전하고.
그들을 품어야겠다는. 그 일념 하나로. 전진하고. 또 전진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이 말씀은.
불의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자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먼저.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하겠지만.
이것은 기도로만 그칠 일이 아니다.
뜻을 돌이키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자에겐.
직접적으로 주님의 뜻을 전하고.
그 귀에 분명히 주님의 심판/당신의 말씀을 전하여야 한다.

기도만 강조하게 되면.
오늘 우리의 삶이. <영적 환원주의>에 빠질 수 있는. 그런 모순을 범하게 되는 것이며.
행동만 강조하게 되면.
오늘 우리 삶이. <나의 힘과 나의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그런 착각/환상 속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릎 꿇는 기도>로. <행동하는 기도>로 나아가야 한다.
기도하며. 주님의 자비/은혜를 구해야 하며.
행동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경고하고. 또 분명히 깨닫게 해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모두 <나의 공로>라고 착각하게 될 것이며.
어떤 이들은. 감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기만 바라며.
입만 벌이고 있는.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기도하는> 공동체. <행동하는>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잘못에 대해서.
무조건 용납하고. 무조건 은혜만 바라는.
그런 침묵하는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누군가의 잘못에 대해서. 분명히 말하고. 분명히 잘못을 깨닫게 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삶이. <기도에만 취해> 있지도 않고.
<행동에만 취해> 있지도 않은.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삶이. <중심을 잡고. 균형을 잡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날이 저물어 갈 때. 빈들에서 걸을 때.
그때가 하나님의 때.
내 힘으로 안 될 때. 빈 손으로 걸을 때.
내가 고백해 여호와 이레.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우리 모인 이곳에. 주님 함께 계시네.
누리네 아버지 은혜.
적은 떡과 물고기 내 모든 걸 드릴 때.
모두 고백해 여호와 이레.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지금도 이 땅 가운데 살아 역사하시는.
우리 주님의 은혜와. 그분의 크신 능력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행동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하길 원한다.

(feat. 주가 일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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