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5:18-27
이스라엘이 생각한 '여호와의 날'은.
열강이 무너지고. 이스라엘이 우뚝 서는 날.
그날을 생각했던 것 같다.
다윗 시대의 영광이 재현되고.
오늘 우리가. 세상 가운데 이름을 떨치고. 명성을 날리는 날.
그날을 고대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생각한. 여호와의 날은. 그것과 정반대였다.
하나님이 생각한 "여호와의 날"은.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그들의 죄를 드러내는 날이었으며.
이것은 이스라엘의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수치가 되고. 부끄러움이 될 것이었다.
그렇기에 주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날이 너희에게 기쁨이 될 줄 생각하였더냐.
아니라. 그날은 빛이 아니라. 어두움이요.
빛이 없는 캄캄한 밤과 같을 것이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남 같을 것이며.
벽에 손을 대었다가 뱀에 물림과 같이.
예기치 못한 일을 갑작스럽게 만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너희에게 임한. 여호와의 날이니라(18-20절)"
그런 측면에서. "여호와의 날"은. 마냥 좋은 날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즐겁고 기쁜 날. 그날을 고대하고 있었지만.
그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잔칫날>이 아니라. <초상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을까.
오늘 본문 21절과 22절이 그 이유를 제시한다.
실제로 오늘 본문 21절과 22절을 보면.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쁘게 받지 않을 것이라(21절)"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교적 외식과 형식에만 취해 있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궁 밖에서는.
백성들의 탄식 소리와 눈물이 줄을 이루는데.
어찌 궁에서는. 자기들끼리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의 공의와 정의를 세워야 할 지도자들이.
백성의 판결을 굽게 하며. 자기 배만 채우고 있는데.
주께서 그들의 제사를 어찌 기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주의 율례를 바르게 세워야 할 사람들이.
정치권과 결탁하고.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 주님은. 화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너희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니.
이것이 내가 기뻐하는 여호와의 뜻이요.
이것이 내가 바라는. 주의 정의이니라(21-24절)"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돌아보게 된다.
오늘 우리 곁에는. 탄식하며 슬퍼하는 자들이 가득 놓여져 있는데.
오늘 우리가. 어찌 우리끼리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겠는가.
오늘 우리 곁에. 역사가 무너지고. 역사를 짓밟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늘 우리가. 어찌 잠잠히 있으며. 조용히 있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것은 주님의 뜻도 아니고. 그것은 주님이 바라시는 것도 아니다.
주님은 우리끼리.
우리끼리 아웅다웅 하며 살길 바라지 않으시고.
주님은 오늘 우리 곁에.
주의 공의가 바로 서고. 주의 정의가 바르게 흐르길 원하신다.
주께서 변화산에서 영광 가운데 나타나실 때.
베드로가.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 초막 셋을 짓고 지냅시다"라고 말할 때.
우리 주님이. "산 아래로 내려가자. 거기서 할 일이 많다"라고 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 삶이. 산 아래로 내려오길 원하시며.
오늘 우리의 삶과 기도가.
삶 속에서. 구체화되고. 실체화되길 원하신다.
그렇기에 주님은. 오늘 우리의 삶이.
"살아있는 예배. 살아있는 성전"되길 원하신다.
오늘 이땅 가운데 있는. 어둠을 밝히는.
그런 촛불이 되길 원하시며.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의롭고 진실한. 그런 삶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아모스 선지자의 외침을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가. 우리만의 세계에 갇혀서.
세상과 등지고. 세상을 외면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땅의 어두움과 무질서와. 불의와 부정함을 삼키고.
이땅의 탄식과 슬픔과 눈물과 애통함을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행동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주님 앞에 행동하며 실천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내가 너희 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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