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9:1-15
이스라엘을 향한. 마지막 심판이 이어진다.
“주께서 제단 곁에 서서. 그 기둥 머리를 깨뜨리겠다(1절)”고 말씀하신다.
지붕이 무너져 사람들을 삼키겠다고 말씀하신다.
산으로 도망친 사람은. 내가 거기서 그들을 잡아오겠다고 말씀하시고.
바다로 도망친 사람은. 내가 바다 괴물을 시켜서.
그들을 물어 죽이겠다고 말씀하신다(3절).
적군에게 사로잡혀 간 사람들은.
거기서 칼에 찔려 죽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며(4절).
이 땅의 모든 거민이. 주의 심판 앞에서.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아무 응답도 하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신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인지 모르겠다.
하나님이 이렇게 살벌하게 말씀하시다니.
하지만. 이것이 이스라엘의 말로였다.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받는 백성이라”는.
그 약속 하나만 믿고 지금까지 까불었으며.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오만방자한 태도로 지금까지 걸어왔다.
그러니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찌 주의 심판이 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하나님이 너무한다”고 하였지만.
사실 세세히 알고 보면. 그들의 완악한 입술이 하나님의 입을 열게 하였으며.
그들의 완악한 손과 발과. 하나님의 손과 발을 움직이게 하셨다.
너무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이라 자부하며. 떵떵거리며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며.
그들은 하나님 앞에 까불고 함부로 살다가.
이와 같은 화/심판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니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찌 주의 자비/긍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근데 오늘 본문의 마지막 말씀을 보면.
주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한가닥 희망을 열어두신다.
그것은. “그날이 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얻고.
다시 하나님과 하나가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 11절부터 15절을 보면.
우리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은가.
“그 날이 오면. 내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일으키겠다.
그날이 오면. 내가 터진 울타리를 고치고. 그 허물어진 것들을 다시 일으켜주겠다.
그날이 오면. 농부는 곡식을 거두고. 곧바로 땅을 갈아야 할 것이며.
산마다 단 포도주가 나와서. 모든 언덕에 흘러 넘치게 될 것이다.
내가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데리고 오고.
그들이 짠 포도주와 과일을 먹게 될 것이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내가 이 백성을 그 땅에서 다시 살게 할 것이며.
내가 이 백성을 다시는 뿌리 뽑지 않게 하겠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것은. <그날이 언제>일지.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회개할 것을 요하는 것이다.
<그날이 오면>이라고 하면서.
막연한 기대와. 장밋빛 전망. 희망 회로를 돌리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정말 엎드리고. 회개하고 자복할 것을 요하는 것이다.
마치.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난 다음에.
그 아들을 살려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엎드려 기도했던 것처럼.
또 주께서 그 아들을 데려 가신다 하더라도. 나는 달리 할 말이 없다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기계적인 기도. 주의 자비만 바라는 기도’를 할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통애하고. 엎드려 간구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자비에 빗대어. 이렇게 기도하기를 원한다.
“주님.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형벌을 받기에. 합당한(?) 자니이다.
우리가 입술로는 주를 찬양한다 하였지만.
마음으로는 주를 멀리하며. 주를 반역하였나이다.
우리가 입술로는. 이 땅의 공의 정의. 평화를 사랑한다 하였지만.
우리는 악을 행하며. 죄를 짓기에. 손 빠른 사람이었으며.
그렇게 악을 행하고도.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뻔뻔하게 당당하게 살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운운하는 것은. 정말 부끄럽고 민망한 일입니다.
우리가 어찌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자신있게 소리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찌 하나님 앞에.
“주께서 우리에게 복을 준다”고 하셨으니.
“우리에게 복을 달라”고 당당히 소리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정말 고개도 들 수 없는. 민망한 죄인이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죽어 마땅한. 불쌍한 죄인. 긍휼한 죄인입니다.
주님. 그렇지만.
우리가 주님의 자비를 힘입어. 다시 한번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다윗이 하나님 앞에. 재를 뒤집어 쓰고 회개하며 기도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 그렇게 기도하기 원합니다.
“혹시” 주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아들의 생명을 다시 돌아오게 하시지 않을까” 다윗이 간구하고 기대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 다시 한번 기도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필요와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당당히 고개 들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고개들기도 부끄럽고.
주의 이름을 부르기도 부끄럽고 민망한 죄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자비/당신의 긍휼을 빗대어.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따름입니다.
주님 그런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다시 한번 우리에게. 주의 날을 허락해 주시고.
다시 한번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며. 주와 더불어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그런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을 드린다.
“나의 백성이 다 겸비하여. 내게 기도하며.
나의 얼굴을 구하여서. 그 악한 길 떠나면.
하늘에서 듣고. 죄를 사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아버지여 고쳐주소서. 이 나라 주의 것 되게 하소서.
주 하나님 간절히 기도하오니. 상한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자비를 베푸시며. 당신의 긍휼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사모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나의 백성이 다 겸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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