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09:1-15
우리는 흔히 기도를.
"하나님과의 사귐/그분과의 진솔한 대화"라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그분 앞에 막힌 것이 없어야 하며.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 격식을 따지고 형식을 따지게 되는 것 같다.
아마 유교 문화권이여서 그런 것 같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있는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나아가기 보다.
기도의 내용을 누루고. 우리 마음 또한 절제할 때가 더러 있는 것 같다.
마음에서는 쌍욕이 나오고. 험한 말이 나오는데.
하나님 앞에서는. 고상한 말로. 정제된 말로 우리 마음을 표현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괜찮냐?"라고 물어보시는데.
우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다.
마치.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외국인이.
"How are you?"라고 물어 보는데.
피를 철철 흘리는 상황 속에서도.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물어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건 기도가 아니다.
기도가. 하나님과의 사귐/솔직한 대화인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숨기고 감출 수 있겠는가.
그것은 기도가 아니고.
그것은 고상한 마음 수련에 불과하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습을 숨기는 것이.
하나님과의 장벽을 쌓고. 그분과 거리감을 두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우리 마음을 쏟고.
그 다음에.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솔직히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기도가 그렇다.
오늘 본문 2절부터 5절까지를 보면.
다윗이 처한 상황/그의 기도의 배경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다윗은 그야말로. 억울한 일/황당한 일을 겪고 있었다.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말로. 나를 치며(2절)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2절)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없이 나를 공격하는데(3절)
다윗은 이로 인해. 매우 괴로워하고. 낙심해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을 위해. 선을 베풀었는데.
그들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았기 때문이다(5절).
나는 사랑으로 그들을 품었는데.
그들이 악독한 혀로 나를 공격하였으며.
나는 사랑과 자비로 그들을 용서하였는데.
그들이 악한 마음으로 나를 공격하고. 대적하였기 때문이다(4-5절).
이에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를 향한 저주의 기도를 일삼는다.
6절부터 15절까지의 내용이 그것이다.
1) 악인이 그를 다스리게 하시며.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시고(6절)
2) 그가 심판을 받을 때에. 죄인이 되게 하시고. 그의 기도가 죄로 변하게 하시며(7절)
3)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고. 그의 직분을 타인이 뺏게 하시며(8절)
4)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게 하시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하시며(9절)
5)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게 하시고. 그들의 집은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시고(10절)
6) 고리대금업자가 그의 집을 다 뺏게 하시고.
그가 수고한 것을 낯선 사람이 탈취하게 하시고(11절)
7) 그에게 인애를 베풀 자가 없게 하시고. 그의 고아에게 은혜를 베풀자도 없게 하시며(12절)
8) 그의 자손이 끊어지고. 후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해달라(13절)고 말하니.
이것이 어찌 다윗의 기도일까 싶다.
이것이 어찌 성경에 기록된 기도문일 수 있나 싶고.
이것이 어찌. 우리가 해야 할 기도인가 싶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것이 기도라고 말한다.
"하나님 앞에 솔직히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디서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사람에게 이런 기도/저주를 퍼부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이런 기도/저주를 퍼부으라"는 것이다.
실제로 다윗의 삶이 그러지 않았는가.
오늘 본문 1절부터 5절까지의 내용이. 마치 다윗과 사울의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데.
다윗은 아무 이유 없이. 아무런 연고 없이 고통을 당하였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골리앗과 싸웠을 뿐인데.
이 일 때문에. 사울의 미움을 사고. 공분을 사게 되었으며.
다윗은 광야에서. 사울의 목숨을 살려주고. 그를 두번이나 구해주었는데.
사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계속 공격하고.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는데.
그 기도는 다른 게 아니라. 오늘 본문과 같은 기도다.
"나의 목숨을 찾는 자가 많으며. 나의 목숨을 헤아려는 자가 많은데.
이런 상황 속에서. 내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주님 악인의 이를 꺾으시고. 그들의 뼈를 꺾어주시옵소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윗이 사울을 막대한 것이 아니다.
다윗은 사울이 죽을 때. 누구보다 그를 애도하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으며.
사울과 그의 일가 친척 가족을 위해서도. 누구보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누구보다 그들을 사랑해 주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의 손자였던 므비보셋을 데려다가.
그에게 식탁을 차려주고. 그에게 영원한 은혜를 베풀어 주는데.
이런 다윗의 모습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 솔직한 기도를 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솔직히 자기의 마음을 쏟아내자.
그를 향한 미움과 멸시. 분노의 감정이 사그라들고.
그 뒤에. 그를 향한. 자비와 긍휼의 마음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거르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말을 쏟아내자.
그 다음에. 주께서 거르고 정제된 마음을.
오늘 우리 가운데 부어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 저주의 기도/멸망의 기도를 쏟아내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 바르고 진실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나는 오늘 이것이. 오늘 우리 공동체/오늘 우리 삶에도. 너무나 필요한 기도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감정을 숨기고.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숨기고.
"다 죽어가는데도. 괜찮다"고 말하고.
하나님 앞에 우리 마음은. 시커멓게 멍들어 있고.
새파랗게 질려 있으면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척.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왜곡된 마음이며. 얼마나 거짓된 마음인가.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다윗의 기도"를 정직히 배웠으면 좋겠다.
하나님 앞에 우리 마음을. 쏟아내고 토로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주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위로하시는 말씀을 들었으면 좋겠고.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있는 모습 그대로 쏟아내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그분의 말씀을. 겸손히 듣는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코르크 마개를 닫는 것처럼.
우리 마음을 억누르고 감추려다가.
어느샌가 우리 마음이 폭발하고. 끓어오르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얻고. 그분의 은혜를 얻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나의 맘 받으소서. 오셔셔 주님의 처소 삼으소서.
나의 전부이신. 주여 내 맘을 받아주소서.
나의 맘 받으소서. 오셔셔 주님의 처소 삼으소서.
나의 전부이신. 주여 내 맘을 받아주소서.
오 나의 맘을 주님께 열었으니.
주여 내게 오셔서. 내 맘에 거하여 주옵소서.
주가 기뻐하는 주의 성전되게 하소서.
나의 맘 받으소서. 오셔서 주님의 처소 삼으소서.
나의 전부이신. 주여 내 맘을 받아주소서"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다윗의 정직한 기도를 배우고.
주님 앞에 우리의 솔직한 심정. 우리의 솔직한 마음을 토로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하길 원한다.
(feat. 나의 맘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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