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수)
시 107:23-43
사무엘상 2장을 보면.
엘리 제사장 집에 내린 저주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자(삼상 2:12-17, 22).
이에 대해 하나님이 심판한 것이다.
실제로 사무엘상 2장을 보면. 홉니와 비느하스의 악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지 않는가?
1)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난 다음. 고기를 삶을 때에.
꼬챙이를 가져와서. 아무 거나/자기 마음대로 물건을 가져가고.
2) 어떤 때는 제사를 드리기도 전에.
"제사장이 좋아하는 것은. 삶은 고기가 아니라 날고기라" 하면서.
질서도 지키지 않은채 제사 제물을 뺏어가기도 하고.
3) 하루는. 홉니와 비느하스가.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과 동침하고 악을 행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들의 죄가 어찌 가볍다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하나님은 업신여기고. 하나님을 경멸하는 죄를 저질렀으며.
주의 말씀/경고를 듣고도. 하나도 두려워하거나 떨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히. 더 큰 소리로. 뻔뻔히 죄를 저질렀다.
아마도 우리 집안이. 제사장 집안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어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맹신/거짓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엘리 제사장/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죄를 짓는데.
이 죄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엄벌을 받게 된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을 것이며.
엘리 제사장의 집안이 망하고. 그 대가 끊기고. 그 가문의 족속이 끊어질 것이라(삼상 2:31-34)"고 말이다.
근데 참 재밌는 것은. 그때 우리 주님이 뭐라고 하셨냐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30)"
이것은 우리 주님이.
<무조건적인>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가문이라고 하여서. 제사장 집안이라고 하여서.
무조건 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 앞에. 겸손히 반응하고. 진실히 살아가는 것을 볼 때.
그때 복을 허락하고. 그때 주의 복을 부어주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무엘상 2장 30절을 보면.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30)"
이것은. 우리 주님이.
그만큼 자기를 두려워하고.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찾는다는 증거다.
오늘 우리의 삶이. 한번 구원을 얻었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살고. 내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구원/그분의 은혜를 입은 자는.
주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또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은. 당신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시편 기자는. 동일한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오늘 본문 3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강이 변하여. 광야게 되게 하시며.
샘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 되게 하시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 주민의 악(34절)" 때문이다.
그들이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시고.
"고관들에게는 능욕을 쏟아 부으시고.
그들이. 길 없는 광야에서 유리하게 하셨다(40절)"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며.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한 자들은.
주께서 그들의 입을 막으시며. 그들의 입을 봉인하게 하셨고.
하나님 앞에서. 당신이 어떤 분이심을 분명히 깨닫고 알게 하셨다.
반대로. 35절을 보면.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시고.
배가 고파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그들이 거주할 성읍과. 풍성한 소출을 주시겠다(35-37절)"고 말씀하시는데…
그 대상이 누구인가?
"주님을 두려워하고. 주님을 높이는 자들"이다.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기다리는 자들(43절)"이며.
하나님 앞에. 정직히 진실히 살아가는 자들(42절)이다.
주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며. 주님을 높이는 자들이며(31절).
인생의 고통 속에서. 여호와께 부르짖고. 주님을 경외한는 자들이다(28절).
주께서. 당신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주께서 존중하시고.
당신을 멸시하는 자를. 주께서 멸시하게 되는 것이다.
주께서.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으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그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을 것이라(시 1:1-3)"고 하였던 것처럼.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이와 같은 복을 허락하시고.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죄인들의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는(시 1:5)"
그런 심판을 내리시고. 그런 책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구하고 간구하는 단 한 가지는.
"우리가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심령 가운데.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이며.
오늘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을 멸시하고. 주를 경멸하는 자에게.
주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며. 주께서 그들의 악을 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며.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들에게.
주께서 그들의 입을 막으시고. 주께서 그들의 입을 봉하여 주시길 소망하며.
하나님이 계심을 알면서도.
주를 두려워하지 않고. 주를 경외하지 않는 자들에게.
주께서 그들을 심판하시고. 주께서 그들을 책망하여 주시길 바란다.
인생의 모든 길과 계획을.
자기 뜻과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께서 돌이키는 은총과. 회개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소망하며.
그렇게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임하며.
주의 통치가 임하고. 주의 나라가 임하길 간절히 소원한다.
그래서인지.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이 찬양이 마음 속에 계속 생각나는 것 같다.
"주의 아름다움은 말로다. 형언할 수 없고.
주님의 그 놀라우심은. 다 표현할 수가 없네.
누가 그 지혜를 깨닫고. 누가 깊은 사랑 측량할까.
보좌에 앉으신 주의 위엄. 아름다우신 주님.
내가 주를 경외함으로. 주님 앞에 홀로 섭니다.
찬양 받으시기 합당한. 거룩하신 주님.
내가 주를 경외함으로. 주님 앞에 홀로 섭니다.
찬양 받으시기 합당한. 거룩하신 주님"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님을 두려워하고.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길 원하며.
오늘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자들이.
다시 일어나고. 다시 흥왕하기를 기도한다.
그래서 오늘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정의가 다시 회복되길 원하며.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화평을 누리고. 평화를 누리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우리 조국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 우리 가운데.
주께서 이와 같은 은혜. 이와 같은 복 허락하여 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의 아름다움은 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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