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07:1-22

오늘 본문을 보면.
시편 기자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실제로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시편 기자가.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절)"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주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속량하셨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시고(2절).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불러 모으시고(2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방황하며 길을 찾지 못할 때에.
주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주할 땅/성읍에 이르게 하셨으며(4, 7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리고 목 말라 피곤할 때에.
주께서 그들에게 만족을 주시고. 좋은 것으로 채워주셨기 때문이다(5, 8절).

그렇기에 시편 기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렇게 노래한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도다(15-16절)"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리로다.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21-22절)"

여호와의 선하심과 그 인자하심을 노래하며.
이렇게 반복적으로. 거듭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며. 그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신 분/영원하신 분이시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은.
그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누구에게 보이시는 걸까?
모든 사람에게. 모든 백성에게 그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베푸는 것일까?

<보편적인 측면>에선 그렇다.
주님은. 당신의 사랑과 자비를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 주시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은덕을 입고. 그분의 공로를 입게 하신다.

하루하루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이 그렇다.
주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숨을 불어 넣어주시고. 호흡을 불어 넣어주지 않으신다면.
우리가 어찌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주님은 오래 참으심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며.
오늘도 우리에게 한결같은 사랑/보편적인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사람을 향한 <보편적인 사랑>이고.
<특별한 사랑. 특별한 자비>는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특별한 사랑. 특별한 자비>를 베풀어 주실까?

오늘 본문은 이것에 대해. 2가지로 얘기하고 있다.
1) 첫번째는.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사람>이고.
2) 두번째는. 하나님을 향해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 6절이 이와 같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부르짖는 사람에게> 그들을 고통에서 건져주시며"
19절에. "그들이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부르짖는 자들에게> 주께서 그들의 탄식 소리를 들으시며.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압제 아래 고통 당할 때에.
주께서 그들의 탄식 소리/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그제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소리칠 때.
그때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며(출 2:23).

사사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나라의 공격과 침입으로부터 탄식하며 기도할 때에.
그때 우리 주님은.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의 소리를 외면치 않으시고. 기도에 응답하신다(삿 3:9).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또 누구에게 주어지냐면?
하나님을 향해.
<사모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진다.

실제로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리로다(9절)"라고 하는데.
이것이 오늘 우리가. 주님께 은혜를 입는. 또 다른 방편이다.

앞에서는. 인생의 고통 때문에.
인생의 절박함 때문에 주님을 찾았다면.
이 사람들은. 주님이 좋아서.
주님을 보고 싶은 마음에. 주님을 찾는다.

앞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한. <문제 해결의 주님>을 찾았다면.
이 사람들은. <우리 주님이. 기도의 본질/목적>이다.
주님을 보고 싶고. 주님을 찾고 싶고.
주님을 만나고 싶고. 주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목적/소망/기쁨인데.
그것 외에 다른 무엇을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그들은.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찾는다.

마치. 에녹이 우리 주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던 것처럼.
또 우리 주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다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오늘 성경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1) 인생에 어려움이 찾아올 때.
그럴 때만 주님을 찾는 공동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주님을 찾고 뵈옵기를 즐겨하는.
그런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2) 오늘 우리 인생 가운데. 어려움이 찾아올 때.
그때만 주님을 찾고. 이후에는 주님을 망각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눅 17:11-19).
늘 주님을 사모하고. 늘 주님을 가까이
하은.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찬양에 나오는 가사처럼.
“구주를 생각만 해도. 이렇게 좋거든“ 이라고 고백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매일 맛보고 누리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 나라.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 나라.
내 맘 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 나라"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사모하며.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주님의 인자하심과 그분의 진실하심을 노래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내 영혼이 은총 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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