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24:19-33
예레미야 17장 9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이것은 그만큼. 우리 마음은. 쉽게 상하고 변질됨을 가리킨다.
인간의 약속은 그만큼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하고.
그만큼 우리는 약하고. 또 쉽게 변절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잘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쉽게 변하리라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내 마음이 그렇게 변하리라곤. 잘 생각도 하지 않고. 잘 믿지도 않는 것 같다.
베드로가 그 대표적인 예다.
예수께서 유월절 전날.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을 말씀하실 때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절대로 당신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데.
베드로는 사람 마음이. 쉽게 변한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나 보다.
아니. "다른 사람 마음은 몰라도. 내 마음은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나 보다.
하지만 그날 밤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베드로가 우리 주님을 배신하고. 멀리 떠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절대로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던 베드로가.
우리 주님을 저주하였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저 사람만은 절대로 모른다"고 하였다.
베드로만 그랬던 게 아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제자가. 우리 주님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우리 자신을 믿고. 맹신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잘못된 생각. 잘못된 착각일 뿐이다.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질되고. 상하기 마련이며.
우리는 사람들 앞에. 또 하나님 앞에.
언제든지 배신하고. 도망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여호수아도. 이 사실을 잘 알았나보다.
그래서 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겠다(수 24:16)"고 맹세할 때에.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너희가 능히 여호와를 섬기지 못할 것이라(19절)"고 악담(?)을 한다.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 마음을 담아. 진심어린 고백을 하고.
하나님 앞에 그렇게. 충성스럽게/진실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는데.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초를 치고.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가?
어찌보면 여호수아는. F가 아니라 완전 T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냉정히 판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쉽게 믿고 넘길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만불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에.
우리가. 우리의 다짐을 믿고. 허무맹랑하게 살아갈 것이 아니라.
그 다짐을 실천하고. 그 약속을 구체적으로 구현해 내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그가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23절을 보면.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고 하는데.
오늘 우리에게도. 이것이 너무 중요한 것 같다.
실제로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 때문에 계속해서 실랑이를 하게 되는데.
선배 가운데 한 사람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핸드폰 사주기 전에는. "핸드폰을 사달라"라는 것 때문에. 아이들과 싸우게 되는데.
핸드폰을 사주고 난 다음에는. "핸드폰을 사용하는" 문제 때문에 아이들과 싸우게 된다.
웃으면서 한 농담이었지만. 그 가운데 뼈가 있지 않을까?
오늘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면. 우리가 마음먹은대로.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힘과 능력이 없다.
우리가 핸드폰을 끊는 능력보다.
핸드폰이 우리를 끌어들이는 능력이 훨씬 더 크고.
우리가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가능성보다.
우리가 죄와 싸워 질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게.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 2:22)"고 말하였는데.
오늘 우리에게도 이것이 너무 중요하다.
그렇기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과 세겜에 모여. 언약식을 치르고.
그 가운데 큰 돌 하나를 세우게 되는데…
아마도 그 안에는. 그들이 섬기던 이방 신들의 모양/형상이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도 치울 수 없는 곳"에. 큰 돌을 세우고.
"아무도 가까이 할 수 없는 곳"에 큰 돌을 두고.
오늘 우리 가운데 있던. 이방 신들과. 이방 형상을 그곳에 버리고.
그곳 문을 닫고.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생각해 보게 된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과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노력과 실천을 하고 있을까?
예배를 드릴 때면. 또 기도를 할 때면.
우리의 감정과 생각에 취해서.
그냥. 헛된 다짐과 약속을 일삼으며. 그렇게 '눈 가리고 아웅'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을까?
아니면. 주의 약속을. 마음으로 받고. 또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또 애쓰는 삶을 살고 있을까?
바라기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과 같지 아니하고.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그런 지혜로운 자. 그런 슬기로운 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의 삶이.
주의 말씀을 듣고. 즐겨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믿음의 뿌리를 내리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삶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주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영원토록 주를 찬송하리라.
소리 높여 주께 영광 돌리며. 약속 믿고 굳게 서리라.
주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세상 염려 내게 엄습할 때에.
말씀으로 힘써 싸워 이기며. 약속 믿고 굳게 서리라.
성령의 검을 들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믿음의 방패와 진리의 띠로. 말씀 위에 굳게 서리라.
성령의 검을 들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믿음의 반석 위에 집을 짓고.
믿음의 반석 위에 뿌리를 내리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 은혜 가운데. 담대히 살아가길 소원한다.
(feat. 주의 약속하신 말씀 위에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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