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19:1-16
시편 119편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긴 장이다.
히브리 자음 22개를 가지고. 8절씩 끊어서 기록하였으며.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며. 그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과 2절을 보면.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하며.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한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복은.
세상에서의 성공과 안녕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그분 안에서. 의의 열매를 맺으며. 주와 더불어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몇 가지 간구를 하는데.
1) 첫번째는. "내가 주의 말씀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은혜를 베푸시고. 힘주시길 간구하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내 길을 굳게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라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주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행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영역"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주께서 우리 가운데 말씀을 가르쳐 주실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주의 말씀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으며.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
우리는 이 말씀을 따라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
마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모습과 같다.
그들이 오랫동안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들어왔지만.
그들의 눈과 귀가 가리워. 아직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 깨닫지 못했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풀어주시고. 가르쳐 주실 때"
그때 비로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던 것처럼.
오늘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말씀을 풀어주실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오늘 본문 12절에서. 하나님 앞에 이렇게 간구한다.
"찬송을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이처럼. 우리가 주의 말씀 앞에 나아갈 때. 가져야 할 첫번째 태도는.
"주의 은혜를 구하며. 주의 자비를 구하는 것"이다.
주께서 우리 가운데 말씀하여 주실 때. 우리가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면서. 그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리며. 진실히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주의 말씀을 대하는 첫번째 태도다.
2) 두번째는 우리가 주의 말씀에 대해. <전심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하며.
10절에서는.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이것은 시편 기자의 마음이 나눠져 있지 않고.
오직 한 길. 오직 한 소망만 있음을 뜻하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 앞에 머무는 것이다.
마치.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주의 말씀을 듣고. 그분 앞에 온전히 머물기를 소망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마음도. 나눠지지 않고. 순전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하는데.
새번역 성경은. 이 말을 이렇게 번역한다.
"내가 주님의 모든 계명들을. 낱낱이 마음에 새기면. 내가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일점일획이라도 버릴 수 없으며.
그 말씀을. 자기 마음판 가운데. 곧게 새기길 바라는 것인데.
시편 기자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진심으로> 갈망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아갈 때. 가져야 할 두 번째 태도는.
그 말씀 앞에. <전심으로/진심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은혜가 필요한 것이다.
3)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마지막 세번째 태도는.
그 말씀을 우리 마음판 가운데 새기고.
그 말씀을 오늘 우리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머리를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지 못하면. 그것은 실패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지적으로 소비되고. 지적으로 낭비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은 그렇게 사사로이 남용될 것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가운데 기록된 말씀을. 지키고 행해야 할 말씀들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서.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고 말하는데.
이것이 오늘 우리가 말씀을 대하는 태도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그러한지. 우리는 시험하고. 확증해 봐야 하며.
우리는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그분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오늘 말씀을 기록하며.
<지키다/행하다>라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오늘 우리도 그래야겠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기 위해서. 오직 듣기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은. LISTEN TO OBEY. 순종하기 위해 듣는 것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뿌리내리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열매 맺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길이며.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소망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돌아보길 원한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아가며.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1) 성령이 스승 되셔서. 주께서 우리 가운데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는 한치도 주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까막눈임을 인정하고 있는가?
2)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면서.
전심과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있는가.
3) 주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살피는 것이.
나의 의를 자랑하고. 나의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그분의 성품 가운데 거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며. 가장 큰 소원인가?
바라기는. 시편 기자가.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9절)"라고 했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 엎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만 듣기 원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여. 나를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이.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의 고백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의 도를 즐거워하며. 주의 법도를 작은 소리로 읊조리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예수 더 알기 원함은.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은혜. 이와 같은 복 더해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feat. 예수 더 알기 원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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