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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3:1-8
인간이 느끼는 여러 감정 중에.
아마. 가장 슬프고. 어려운 것은. "배신감"이 아닐까 싶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상처 받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이지만.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상처 받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하고. 칼을 맞은 일이 있다면.
한 사람을 다시 사랑하고 품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겹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가.
그것은. 차마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며.
오늘 우리에게 누군가 그것을 강요하고. 또 요구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목을 붙잡고.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만약. 니가 그렇게 자신 있다면. 니가 그렇게 하라"고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말은.
오늘 우리에게 너무나 가혹하고. 고통스러운 말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우리 하나님의 마음도 그런 것 같다.
실제로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자기 백성 삼으시며.
"금이야 옥이야" 정말 애지중지하며. 그들을 길러 오셨다.
근데. 어제 말씀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등지고 외면하고 있으니.
그 마음의 상처와 아픔이. 얼마나 크고 깊겠는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렇게 수십 년.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으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열불이 나고.
가슴 통탄할 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같다.
이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해. 불붙는 심판/경고의 말씀을 하신다.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이것은. 이스라엘의 죄와 허물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진노하심을 뜻하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죄가. 하늘 끝까지 닿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것을. 도저히 간과할 수 없음을. 뜻하는 말이며.
이에 하나님이. 진노하시며 이를 갈고 계시는 것이다.
마치.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지만. 들포도나무를 맺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또 포도 열매의 소출을 얻기 위해서. 종들을 보냈지만.
그 종들을 죽이고. 아들마저도 죽여버린.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진노하시며. 열받아 달려가신 것처럼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하나님의 모습이.
살벌하고 무섭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자비와 인애의 목소리를 함께 내고 계신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서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7절)"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오늘 주께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자비의 말씀/은혜의 길을 내어주고 계신 것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소돔과 고모라 땅이. 악으로 충만했을 때.
하나님이 직접 그 땅을 쓸어버려도 될 텐데.
왜 주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그 땅을 쓸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시는가.
그것은. 그 땅을 향한. 하나님의 애잔함/눈물이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이 땅을 쓸어버리기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고.
혹시라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구원을 받고. 주께 돌이키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긍휼히 여기고. 그를 불쌍히 여기기 위함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 땅을 심판하기 전에.
일부러 아브라함을 찾아가셨고.
아브라함은 그 마음을 알았기에.
"의인 10명만 있어도. 이 땅을 불쌍히 여겨주시겠냐"고.
하나님과 딜하고. 그에게 간구한 것이다.
노아의 때도 마찬가지다.
주께서 사람을 이 땅에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노아에게. "내가 이 땅을 물로 쓸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일을 노아에게 말씀하시는 까닭이 무엇인가?
한 사람이라도. 구원을 얻고. 주께 돌아오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노아가. 방주를 짓는. 그 긴 긴 세월동안.
한 사람이라도. 주께 돌이키고. 당신께 나아오기를 바랐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당신의 비밀을 노아에게 손수 알리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진노 이전에.
우리 주님의 마음이. 긍휼로 가득 차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주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고. 쓸어버리겠다는 것이 당신의 목적이 아니라.
그들이 구원을 얻고. 주께 돌이키는 것이. 당신의 본심/마음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이런 하나님의 수고가.
인간적인 생각으론. 얼마나 헛되고. 어리석게 보이는지 모르는 것 같다.
"도대체 뭐가 그리 좋다고. 이렇게 오래 참으시는 걸까"
"대체 뭐가 그리 좋아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시는 걸까?"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쉽게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우리를 사랑해 오셨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길이 길이 우리를 참고 용납해 오셨으며.
"한 사람이라도 구원을 얻고. 회개할 수 있다면"
끝임없이 참으시고 말씀하시는 것이.
오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 주님의 자비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그 사랑을 외면하지 않고.
주님께로 돌이키고. 주님께로 나아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주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며.
"내가 너희만을 알았는데"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 삶도.
"주님만을 알았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고.
주께서 우리에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며.
끊임없이 당신의 사랑을 말씀하실 때.
겸손히 반응하며. 겸손히 무릎 꿇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우리 삶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것을 증거하고. 그것을 고백하는.
살아있는 표징. 살아있는 이정표가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도 그 주님의 오래참으심과. 그 주님의 본을 따라서.
끊임없이 말씀하고. 끊임없이 기다릴 수 있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 할 때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주를 부르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 할 때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주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그 생각 버리고.
여호와께로 나아오라.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여호와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끊임없이 말씀하시며. 끊임없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그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주께 돌이키며. 주께 나아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주님 앞에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맡겨드리길 원한다.
(feat.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 할 때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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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2:4-16
아모스 1장과 2장을 보면.
여덟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경고를 다루고 있다.
다메섹부터 시작해서.
가사와 두로. 에돔과 암몬. 모압과 유다의 죄를 일컫고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얘기를 들으며.
<쌤통>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니들이 하는 게 원래 그렇지!" 하면서.
그들을 조롱하고. 그들을 비웃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칼날은. 그들이 아닌.
이스라엘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방 나라는. 그냥 맛보기/예고편일 뿐이다.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을 향해. 열렬히 달려가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는. 그들을 향해. 정점을 찍고 있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말씀이 그러하다.
여덟 나라를 심판하시며.
"내가 누구누구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라고.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는데.
재밌는 것은. 다른 나라는 한 두 가지 죄로 그친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메섹과 가사. 두로와 에돔. 그리고 모압의 죄는.
한 두 가지로 그치고 있는데.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가면서. 그 죄의 목록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죄의 성격도 달라지고 있다.
앞에서는. 다른 나라들이. 포로를 팔아넘기며.
그들이 화를 내고. 분을 내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향해서는.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따르지 않은 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을 향해서는.
그 죄의 목록을. 구체적으로. 차곡차곡 말씀하신다.
1)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6절)
2)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6절)
3)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밟고(7절)
4)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7절)
5)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7절)
6)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8절)
7)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시며(8절)
8)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나실인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선지자에게 예언하지 말라(12절)고. 말하고 있으니.
그들의 죄가. 어찌 가볍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정말. 수두룩 빽빽하게 죄를 지었다.
우리 주님이. 말하기를.
"이스라엘이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그들을 벌하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그들을 꾸지고 책망할 것이. 하나 둘이 아니었으며.
그들의 죄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무겁고. 큰 죄를 지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무지의 죄"를 지었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알고도. "일부러. 업신여기는 죄"를 지었으며.
그들은 하나님 앞에. 돌이키는 것과 회개하는 것을 알지 못하였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돌이키는 것과 회개하는 것을 알고도.
"일부러 돌이키지 않고. 고의로 돌이키지" 않았다.
아니. 회개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보다.
회개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더 옳을 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무런 잘못과 죄책을 느끼지 못했으니.
어찌 회개하고. 어찌 돌이킨단 말인가.
이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임박한 심판. 경고의 칼날을 던지신다.
"내가 너희를 누르리니.
곡식 단을 가득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너희를 누를 것이며.
내가 너희를 심판하리니.
너희가 도망치지도 못하고. 피하지도 못하리라.
빨리 달음박질하는 자도. 도망할 수 없으며.
강한 자도 자기 힘을 낼 수 없으며.
용사도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없으며.
발이 빠른 자도. 말을 탄 자도.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없으리니(13-16절)"라고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형제자매의 잘못에 대해서는.
기가 막히게 알아내면서도.
왜 우리의 잘못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무지하고. 왜 그렇게 어리석단 말인가.
형제자매의 눈에 있는. 티를 보면서는.
그렇게 화를 내고. 그렇게 욕을 하다가도.
왜 내 눈에 있는 들보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한단 말인가.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더 민감한 죄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며.
그것은 도덕적/윤리적 기준을 넘어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따라서.
그분의 거룩하심과 그분의 본을 따르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께서 우리 가운데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을. 남용/오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오늘 우리 삶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과 정결함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주께서 이 땅 가운데. 악인들을 심판하시며.
불의한 자를 꺾으신다는 말씀을 믿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며.
오늘 이 땅 가운데. 불의를 행하며. 악을 행하는 자를 보면서.
그를 부러워하고. 그와 가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그들을 심판하시고. 주께서 그들을 꺾으실 날들을 소망하면서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이스라엘처럼. 무지함과 몽매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그분의 화를 발하게 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삶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돌이키고. 회개할 수 있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우리의 양심을 깨우시며.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는.
그런 은혜가 있었으면 좋겠고.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형식적인 신자/맹목적인 신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두려워 떨며. 거룩함으로 주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나의 백성이 다 겸비하여. 내게 기도하며.
나의 얼굴을 구하여서. 그 악한 길 떠나면.
하늘에서 듣고. 죄를 사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아버지여 고쳐주소서. 이 나라 주의 것 되게 하소서.
주 하나님 간절히 기도하오니. 상한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돌이키게 하시며.
주의 말씀 앞에. 두려움과 떨림으로 설 수 있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되게 하여 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나의 백성이 다 겸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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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1:1-2:3
아모스는. 남유다 드고아 지역에서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목자로서. 양들을 돌보는 일을 하였으며(암 1:1).
뽕나무를 재배하며. 거기서 나는 열매를 거두곤 하였다.
평범한 사람. 아무 것도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근데. 그랬던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된다.
오늘 본문 1절과 2절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유다 왕 웃시야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러보암이 다스리던 시대에.
하나님의 말슴이. 아모스에게 임하였다.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다 마르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라고 하는데…
이 말씀이 누구에게 임했냐면?
이스라엘 왕이나. 남유다 왕에게 임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목자 아모스>에게 임하게 된 것이다.
왜?
왜 하필 목자 아모스에게 주의 말씀이 임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의 선택/부르심이 아닐까 싶다.
그가 목자로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소임을 다해 살아갈 때.
주께서 그를 귀히 여기신 것 같고.
주께서 그를 통해. 말씀하시고 주의 뜻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왜냐하면? 아모스는.
주의 말씀 앞에. <충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도 보는 이 없다고 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대충/막 처리하지 않았으며.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충성스럽게/정직하게 감당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이 범죄하고 타락할 때에도.
주의 말씀 앞에. 정직히 살고자 하였으며.
그렇기에 그는.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올곧은 길을 걸어왔었다.
그래서 주님은. 아모스를 통해.
북이스라엘과 열강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주의 심판을 전하게 하시는데.
그 말씀 앞에. 모두 쓰러지고. 엎드려 절할 뿐이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거스를 수 없고.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임박한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말씀이 참 재밌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 당시. 고대 근동의 왕들은.
자기가 직접 신들과 소통하며. "나는 신의 아들/택함을 입은 자"라고 하였는데.
그들은 왜 아무 말씀도 받지 못하고. 아무런 계시의 말씀도 받지 못하는 걸까.
그들은 자기 나라를 세우며.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아모스가 전하는 약속(심판)의 말씀 앞에서.
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게 되는 것일까?
인간적인 눈으로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고.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이상한 것이 하나도 없는 일이다.
주님은. 사람의 겉모습/외양을 보고. 사람을 택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의 속사람/마음을 보고 사람을 택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택하시는 사람은.
금 그릇이나 은 그릇이 아니라. 깨끗한 그릇/주님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로운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고전 1:27).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자랑하고 내세울 것은.
사람의 혈통이나. 인간의 어떠함/자랑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금세 잊혀지고. 금세 사라질 것들이다.
오직 우리가 힘쓰고 자랑해야 할 것은.
주의 말씀/당신의 말씀 앞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며.
주님은 그 말씀으로. 세상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새롭게 하기 원하신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훨씬 지혜로우며.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의 강함보다. 훨씬 더 강하고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주의 말씀에 사로 잡히며.
주의 말씀 앞에 겸손히/겸허히 엎드리는 것이다.
오늘 이 땅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분이.
오직 하나님 한 분. 주의 말씀뿐임을 믿는 것이며.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리고. 주의 다스림/통치하심을 받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며.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얻게 되는. 유일한 복/영원한 복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의 삶이.
<목자 아모스>와 같은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일상의 자리에서.
주와 동행하며. 주와 더불어 사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고. 주의 통치를 받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다윗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서.
주의 말씀을 전하고. 주의 나라를 선포하였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로다(사 40:8)"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처럼.
오늘 우리 인생이. 바람에 펄럭이고. 햇빛에 시들어가는.
그런 우리 인생.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주의 말씀 앞에 뿌리를 내리고. 주의 말씀 앞에 열매를 맺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온 땅의 주인 되신 주님이. 내 이름 아시며 상한 맘 돌보네.
어둠을 밝히시는 새벽 별. 방황하는 내 맘 주의 길 비추시네.
나로 인함이 아닌 주가 행하신 일로.
나의 행함이 아닌 오직 주로 인하여.
나는 오늘 피었다 지는. 이름 없는 꽃과 같네.
바다에 이는 파도. 안개와 같지만.
주는 나를 붙드시고. 부르짖음 들으시며.
날 귀하다 하시네.
주님은 나의 죄를 보시고. 사랑의 눈으로 날 일으키시네.
바다를 잠잠하게 하시듯. 내 영혼의 폭풍 고요케 하시네.
나로 인함이 아닌 주가 행하신 일로.
나의 행함이 아닌 오직 주로 인하여.
나는 오늘 피었다 지는. 이름 없는 꽃과 같네.
바다에 이는 파도. 안개와 같지만.
주는 나를 붙드시고. 부르짖음 들으시며.
날 귀하다 하시네.
나 오직 주의 것. 나 오직 주의 것"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오늘 피었다 지는 이름 없는 꽃과 같지 아니하고.
바다에 이는 파도처럼.
쉬이 나타났다가 쉬이 사라지는. 그런 안개와 같지 아니하고.
오직 주의 음성 앞에 엎드리고. 주의 말씀 앞에 귀를 기울이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하길 원한다.
(feat. 온 땅의 주인(Who am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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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7(토) 암 3:9-4:3 (0) | 2024.12.07 |
2024.12.06(금) 암 3:1-8 (0) | 2024.12.06 |
2024.12.05(목) 암 2:4-16 (0) | 2024.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