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아모스'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24.12.12 :: 2024.12.12(목) 암 7:1-9
  2. 2024.12.11 :: 2024.12.11(수) 암 6:1-14
  3. 2024.12.10 :: 2024.12.10(화) 암 5:18-27

암 7:1-9

아모스 7장부터 9장까지. 다섯 가지 환상이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주님의 심판/진노에 관한 것이다.

오늘은 '메뚜기 떼'와. '불' 그리고 '다림줄'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부도덕함과 불의에 관한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거역하였기 때문에.
주께서 그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에게 진노를 쏟아붓고 계신 것이다.


근데. 재밌는 것은.
아모스의 중보 기도로 인하여. 하나님이 심판을 그치고. 그 마음을 돌이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주께서 메뚜기 떼를 보내어. 그 땅의 풀을 다 먹을 것이라"고 경고하는데.
이에 대해 아모스 선지자가. 이렇게 기도한다.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이에 하나님이. 그 마음을 돌이키고 뜻을 돌이키는데.
이 기도는. 그 다음 환상/불에 관한 환상에서도 똑같이 재현된다.

실제로 5절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주께서. 불을 들어. 땅 깊이 흐르는 지하수를 말리고.
농경지를 불살라 버리겠다(새번역, 4절)고 말씀하시는데.
이 일에 대해. 아모스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또 기도한다.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5절)"
앞에서는 <사하소서>라고 기도했다면.
이번에는 <그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를 그치고. 이 백성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이다.

이에 하나님이. 또 그 마음을 돌이키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시는데.
재밌는 것은/중요한 것은. 아모스 선지자의 기도가 여기까지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모스 선지가가.
더 이상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모스 선지자가.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계속된 반역과 완악함 때문에.
주께서 그 뜻을 돌이키지 않았음을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반역하고 패역함을 보면서.
주께서 이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났음을 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돌이켜야 할 주체는. 아모스 선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모스 선지자의 기도로. 이스라엘이 언제까지 연명 치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이키고. 주께 나와 와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는데.
그들이 언제까지. 무임승차/묻고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주님은. 그들이 직접 주께 돌아오기를 원하고 계신다.
아모스의 기도를 외면하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소원과 기도는 간절히 들으셨지만.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응하고. 그들이 직접 일어서야 할 때라고 말하고 계신 것이다.

이에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 조용히/홀로 기도하던 것을 멈추고.
이스라엘로 가서. <직접>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였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직접 전해주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그 잘못을 그치고.
주께 돌아오기를. 간곡히 요청하고 또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는.
남 유다 드고아 지역을 떠나. 북이스라엘 잃어버린 백성들을 향해.
전진하고 또 전진하였다.
그들이 내 말을 듣고. 돌이키고. 주께 나아올지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을 전하고.
그들을 품어야겠다는. 그 일념 하나로. 전진하고. 또 전진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이 말씀은.
불의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자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먼저.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하겠지만.
이것은 기도로만 그칠 일이 아니다.
뜻을 돌이키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자에겐.
직접적으로 주님의 뜻을 전하고.
그 귀에 분명히 주님의 심판/당신의 말씀을 전하여야 한다.

기도만 강조하게 되면.
오늘 우리의 삶이. <영적 환원주의>에 빠질 수 있는. 그런 모순을 범하게 되는 것이며.
행동만 강조하게 되면.
오늘 우리 삶이. <나의 힘과 나의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그런 착각/환상 속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릎 꿇는 기도>로. <행동하는 기도>로 나아가야 한다.
기도하며. 주님의 자비/은혜를 구해야 하며.
행동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경고하고. 또 분명히 깨닫게 해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모두 <나의 공로>라고 착각하게 될 것이며.
어떤 이들은. 감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기만 바라며.
입만 벌이고 있는.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기도하는> 공동체. <행동하는>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잘못에 대해서.
무조건 용납하고. 무조건 은혜만 바라는.
그런 침묵하는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누군가의 잘못에 대해서. 분명히 말하고. 분명히 잘못을 깨닫게 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삶이. <기도에만 취해> 있지도 않고.
<행동에만 취해> 있지도 않은.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삶이. <중심을 잡고. 균형을 잡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날이 저물어 갈 때. 빈들에서 걸을 때.
그때가 하나님의 때.
내 힘으로 안 될 때. 빈 손으로 걸을 때.
내가 고백해 여호와 이레.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우리 모인 이곳에. 주님 함께 계시네.
누리네 아버지 은혜.
적은 떡과 물고기 내 모든 걸 드릴 때.
모두 고백해 여호와 이레.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지금도 이 땅 가운데 살아 역사하시는.
우리 주님의 은혜와. 그분의 크신 능력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행동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하길 원한다.

(feat. 주가 일하시네)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아모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12.14(토) 암 8:1-14  (0) 2024.12.14
2024.12.13(금) 암 7:10-17  (0) 2024.12.13
2024.12.11(수) 암 6:1-14  (0) 2024.12.11
2024.12.10(화) 암 5:18-27  (0) 2024.12.10
2024.12.09(월) 암 5:1-17  (0) 2024.12.09
posted by The Sabbath
:

암 6:1-14

난 우리나라에. 이런 지도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백성들을 사랑하고. 소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의 형편을 돌아볼 줄 알며.
가난한 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필요와 형편을 돌보며.
그렇게 오늘 우리 사회 가운데. 안녕과 평화가 임하게 하는"
그런 지도자. 그런 백성의 리더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모스 시대. 북이스라엘의 왕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부익부 빈익빈'이 훨씬 심했던 것 같다.
이스라엘의 영토가 넓어지고. 그들이 경제적으로 부국했을지는 몰라도.
백성들의 형편과 처지는. 훨씬 더 어려워졌던 것 같다.
속 빈 강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백성들은 피눈물 흘리며. 탄식하고 있을 때.
이스라엘 왕은. 기지개를 키며. 하품을 하며 침상에서 일어난다.
아마 늦잠을 잤나 보다.
아마 아무런 걱정 근심 없이. 푹 잤나 보다.

백성들의 삶은. 폭력과 억압으로 인하여.
고단하고. 억눌린 삶을 살고 있는데.
자기 혼자 배불리 먹으며. 떵떵거리며 살았나 보다.

그러니. 백성들의 탄식 소리가. 어찌 하늘에 아니 닿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탄식하며. 소리쳐 울 뿐이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일어나 큰 소리로 외치고 계신다.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지도자인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는 어찌. 흉한 날이 멀다 하여. 포악한 자리로 스스로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이냐.
너희가 알아서 매를 버는구나.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를 키며.
양 떼와 송아지를 잡아 먹고.
비파와 수금을 키며. 노래하고 있으니.
내 너희를 도저히 참을 수 없겠구나.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해서는. 아무런 걱정 근심도 하지 않으니.
네가 어찌 백성의 지도자/리더라 할 수 있겠느냐.
너는 탐관오리일 뿐이며.
너의 배를 채우고. 목을 채우는. 악덕업자일 뿐이다.

그래서 내가. 너의 영광을 싫어하여.
그 궁을 넘기고. 그 성을 심판하게 할 것이다.
거기 남아서. 너와 희희덕거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의 심판/진노가 임하게 할 것이다.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며.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멸하게 될 것이다.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게 할 것이니.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시내까지. 너희가 악을 저지르고 포악한 삶을 살았던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똑같이 하며. 똑같이 갚아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무섭고. 또 슬프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심판을 받게 되었는데.
오늘 우리 사회/나라는 어떠할까?
오늘 우리 곁에 있는 지도자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많은 정치인/고위 관직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데.
그들은. '맛 잃은 소금'일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살아가는.
주의 백성/참된 주의 자녀일까?

바라기는. 오늘 이 땅 가운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이 땅의 지도자들이.
정말 주님을 두려워하고. 주님을 경외하는.
그런 지도자 되고. 그런 백성의 리더가 나왔으면 좋겠다.

선거 때만 되면. 그때만 굽신굽신거리고. 백성의 형편/치안을 돌아보는.
그런 이중적인 인간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고.
평상시에도 백성들의 형편과 삶을 돌아보는.
그런 백성의 지도자. 그런 백성의 리더가 나왔으면 좋겠다.

입으로 일하고. 손가락만 까딱하는 그런 지도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고.
발로 일하고. 귀로 듣는. 그런 지도자. 그런 백성의 리더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이 땅에 있는.
수많은 지도자/리더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게 된다.
정치. 경제. 사회. 안보. 교육 등.
오늘 우리 사회에. 썩어빠지고. 곪아터진 곳들이. 모두 돌아오길 소망하며.
오늘 이 땅 가운데. 주의 정의가 임하고. 주의 평화가 임하는.
그런 우리 나라. 그런 우리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나의 삶도 마찬가지다.
한 교회의 리더가 되고. 목사가 된다는 것이.
나의 자리를 탐하고. 나의 목을 굳게 하는.
그런 나의 삶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성돌의 형편과 처지를 돌아보는.
그런 나의 삶. 그런 목회자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마가복음 10장 45절 말씀이 계속 생각나는 것 같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막 10:45)"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있네. 위로를 받을 것이요.
온유한 자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겠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저희 배 부를 것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받겠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네.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자. 천국이 저희 것이라.

내게도 주소서. 내가 복을 받기 원하네.
오 내 주여 주소서"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팔복에 기록된 이 말씀이.
오늘 우리 삶의 유일한 소망. 진정한 복이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하길 원한다.

(feat. 심령이 가난한 자는)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아모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12.13(금) 암 7:10-17  (0) 2024.12.13
2024.12.12(목) 암 7:1-9  (0) 2024.12.12
2024.12.10(화) 암 5:18-27  (0) 2024.12.10
2024.12.09(월) 암 5:1-17  (0) 2024.12.09
2024.12.08(주일) 암 4:4-13  (0) 2024.12.08
posted by The Sabbath
:

암 5:18-27

이스라엘이 생각한 '여호와의 날'은.
열강이 무너지고. 이스라엘이 우뚝 서는 날.
그날을 생각했던 것 같다.
다윗 시대의 영광이 재현되고.
오늘 우리가. 세상 가운데 이름을 떨치고. 명성을 날리는 날.
그날을 고대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생각한. 여호와의 날은. 그것과 정반대였다.
하나님이 생각한 "여호와의 날"은.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그들의 죄를 드러내는 날이었으며.
이것은 이스라엘의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수치가 되고. 부끄러움이 될 것이었다.

그렇기에 주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날이 너희에게 기쁨이 될 줄 생각하였더냐.
아니라. 그날은 빛이 아니라. 어두움이요.
빛이 없는 캄캄한 밤과 같을 것이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남 같을 것이며.
벽에 손을 대었다가 뱀에 물림과 같이.
예기치 못한 일을 갑작스럽게 만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너희에게 임한. 여호와의 날이니라(18-20절)"

그런 측면에서. "여호와의 날"은. 마냥 좋은 날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즐겁고 기쁜 날. 그날을 고대하고 있었지만.
그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잔칫날>이 아니라. <초상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을까.
오늘 본문 21절과 22절이 그 이유를 제시한다.

실제로 오늘 본문 21절과 22절을 보면.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쁘게 받지 않을 것이라(21절)"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교적 외식과 형식에만 취해 있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궁 밖에서는.
백성들의 탄식 소리와 눈물이 줄을 이루는데.
어찌 궁에서는. 자기들끼리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의 공의와 정의를 세워야 할 지도자들이.
백성의 판결을 굽게 하며. 자기 배만 채우고 있는데.
주께서 그들의 제사를 어찌 기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주의 율례를 바르게 세워야 할 사람들이.
정치권과 결탁하고.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 주님은. 화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너희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니.
이것이 내가 기뻐하는 여호와의 뜻이요.
이것이 내가 바라는. 주의 정의이니라(21-24절)"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돌아보게 된다.

오늘 우리 곁에는. 탄식하며 슬퍼하는 자들이 가득 놓여져 있는데.
오늘 우리가. 어찌 우리끼리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겠는가.
오늘 우리 곁에. 역사가 무너지고. 역사를 짓밟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늘 우리가. 어찌 잠잠히 있으며. 조용히 있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것은 주님의 뜻도 아니고. 그것은 주님이 바라시는 것도 아니다.
주님은 우리끼리.
우리끼리 아웅다웅 하며 살길 바라지 않으시고.
주님은 오늘 우리 곁에.
주의 공의가 바로 서고. 주의 정의가 바르게 흐르길 원하신다.

주께서 변화산에서 영광 가운데 나타나실 때.
베드로가.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 초막 셋을 짓고 지냅시다"라고 말할 때.
우리 주님이. "산 아래로 내려가자. 거기서 할 일이 많다"라고 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 삶이. 산 아래로 내려오길 원하시며.
오늘 우리의 삶과 기도가.
삶 속에서. 구체화되고. 실체화되길 원하신다.

그렇기에 주님은. 오늘 우리의 삶이.
"살아있는 예배. 살아있는 성전"되길 원하신다.

오늘 이땅 가운데 있는. 어둠을 밝히는.
그런 촛불이 되길 원하시며.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의롭고 진실한. 그런 삶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아모스 선지자의 외침을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가. 우리만의 세계에 갇혀서.
세상과 등지고. 세상을 외면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땅의 어두움과 무질서와. 불의와 부정함을 삼키고.
이땅의 탄식과 슬픔과 눈물과 애통함을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행동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주님 앞에 행동하며 실천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내가 너희 절기를)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아모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12.12(목) 암 7:1-9  (0) 2024.12.12
2024.12.11(수) 암 6:1-14  (0) 2024.12.11
2024.12.09(월) 암 5:1-17  (0) 2024.12.09
2024.12.08(주일) 암 4:4-13  (0) 2024.12.08
2024.12.07(토) 암 3:9-4:3  (0) 2024.12.07
posted by The Sabbat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