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 1:7-17

화석류 나무.
이것은 사시사철 푸른 관목으로써.
장막절 때. 초막을 지을 수 있는 식물 가운데 하나였다.

외형적으로는 백향목처럼 크지도 않고.
상수리나무처럼 강한 힘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헌데. 독특한 특징이 하나 있다.
줄기와 잎에서 향이 나는데.
줄기가 꺾일수록. 잎이 으깨질수록.
더욱 짙은 향기가 풍겨져 나온다.

그리고.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가지를 꺾어도 이틀 정도 싱싱하게 살아있고.
죽었다 할지라도 물에 꽂으면. 다시 살아나기에.
"불멸과 영생"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마치. 이스라엘의 모습과 같다.
외형적으로는 보잘 것 없지만.
강인한 생명력과.
고초를 당할수록. 더욱 짙은 향기를 뿜내는 모습이.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새겨진. 모습과 같다.


그런. 화석류 나무 사이에.
"붉은 말을 탄 사람 하나"가 있다.

그는. 온 땅을 두루 다니며 살피는 자들의 "보고"를 받고.
주님께. 직접 말을 건내는 사람이다.

무슨 말을 하는가? 바로 이것이다.
"주님.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렵니까?
주님. 언제까지 이들을 내버려 두시렵니까?"


말씀을 읽으며.
이 모습이 우리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은. “화석류 나무” 같다.
겉으로는 볼 품 없어 보이고.
어디에도 쓸모 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겐 강인한 생명력이 있다.
하나님 나라의 신비. 부활의 능력이다.
우리는 고초를 당할수록.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새로워지는.
역설의 기쁨을 가진 자이다.

그런 우리 곁에. 주님이 계시며.
주님이 우리를 위해. 대신 탄언하신다.

"하나님. 언제까지. 이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렵니까?
하나님. 언제까지. 이들을 내버려 두시렵니까?
주님. 오셔서. 구원해 주십시오.
주님. 오셔서. 구원해 주십시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의 탄언을 듣고. 이렇게 답하신다.

"나는. 예루살렘과 시온을 무척 사랑한다.
내가 이 도성에 다시 돌아왔다.
내가 내 집을 다시 세우겠다.
내 성읍은 좋은 것들로 다시 풍성하게 될 것이며.
내가 시온을 위로하겠다.
예루살렘은 다시 내가 택한 도성이 될 것이다."

왕의 귀환이 이뤄진 것이다.


말씀을 읽으며. 오늘 우리의 삶에도.
이러한 은혜를 기도한다.

화석류 나무 사이에 계신 주님.
우리를 위해 탄언하며. 중보하시는 주님.
우리 곁으로 돌아오시며. 우리를 회복하시는 주님.

그 주님을. 우리가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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